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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스토리_ 호들갑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호들갑 3 _ 새내기 의사되기>


학생 끝, 의사 시작!

2009년 의사국가시험, 그 생생한 현장을 찾다

 2009년 1월 8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아침 7시, 2009년 의사국가시험이 치러지는 전국 7개 시험장 중 하나인 송파구 가락중학교를 찾았다. 2009년 의사국가시험은 총 550문제에 538점 만점으로 치러졌으며, R type 문제 비율의 증가로 시험 시간이 예년에 비해 다소 조정되었다. 올 국가시험은 OSCE시험이 없는 마지막 시험이었고, 의학전문대학원생들이 치르는 첫 의사국가시험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겨울의 한 가운데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체감온도는 그리 추운 편은 아니었다. 6년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될 선배들을 축하라도 하듯 시험장 앞은 벌써부터 마치 축제인양 들뜬 분위기였다.
교문부터 운동장, 시험장 앞까지 학교별로 늘어선 응원행렬은 수능시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마다 선배들의 ‘대박’과 ‘만점’을 기원하는 현수막과 플랫카드를 들고, 선배들이 나타나면 목청껏 응원하는 모습이었다. 또 새벽의 추위를 녹여줄 따뜻한 차 한잔과, 초콜렛, 손난로 등 시험 때 필요한 소소한 물건들을 나눠주는 모습도 수능시험장을 연상케 했다. 학교에 따라 교수님들이 나오셔서 수험생들을 직접 격려해 주시기도 하였다.
 
시험장 입실 시간인 8시 30분까지는 아직 1시간 반이나 남았지만 일찍부터 시험장을 찾은 수험생들도 간간히 보였다. 수험생들의 본격적인 행렬은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 7시 30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수험생들이 들어올 때 마다 응원단의 환호가 이어지는 탓에, 수험생들의 출신학교를 바로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독특한 응원 구호와 율동을 준비해 온 이화여대와 가천의대의 응원이 사람들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끌었다. 가천의대의 경우 쉬지 않는 응원으로 수험생들뿐 만 아니라 다른 학교 응원단들 까지 즐겁게 해주었다. 동아리 단위로 응원을 온 한 학생들은, 개인별로 플랫카드를 만들어 수험장 까지 따라가는 등 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피켓이나 현수막 등에 재치있는 구호도 많았다. '왔노라, 보았노라, 붙었노라!', '난 중앙대 다니고 있고... 국시 만점 받았을 뿐이고..', '정답과 싱크로율 100%' 등이 눈에 띄었다.


 
수험생들은 대부분 시험기간 때처럼 청바지나 츄리닝 등의 편안한 차림이었다. 공부할 거리를 많이 가져오기보다는 간단한 가방 하나정도에 필기구 등 필요한 물건 정도만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시험장이 서울 외곽 지역에 위치해서인지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버스를 대절해 교통이 불편한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교문 쪽에 대부분의 응원단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버스는 운동장에 주차해 학생들을 내려준 탓에, 선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 한편 이대목동병원의 버스가 들어오자 모든 학교의 응원단이 한목소리로 환호를 보내 웃음을 자아냈다.
 
입실 마감시간 10분 전인 8시 20분 경이 되자 수험생들의 행렬이 뜸해지고, 응원하던 학생들도 하나 둘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몇 학교에서는 수험생들의 점심 도시락도 준비해, 점심시간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밤새 자리를 잡고 응원을 하느라 지친 학생들은 선배들이 시험을 치르는 동안 단잠을 청하기도 하였다.

점심 도시락을 받아 든 수험생들은 버스 안이나 수험장 교정 곳곳에서 식사를 하였다.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지만,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한 수험생은 의료법규 문제 중 하나가 문제집과 똑같았지만 문제집의 답이 틀린 것이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험생들이 다시 수험장으로 들어간 후에야 응원단 학생들은 한숨 돌린 모습이었다. 이틀 모두 응원에 참가했다는 박상민 학생은 ‘며칠간 밤을 새다 시피 해 힘들지만, 선배들의 시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 것 같아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김민재 기자/ 순천향
<telemax@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