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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나라’를 보다

77호(2010.10.11)/문화생활 2010. 10. 10. 21:38 Posted by mednews

“제 이름은 Chris이고, 이것은 제 직업이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 까지, 현지인도 관광객도, 관중들은 모두 힘껏 박수를 보냈다. “굳이 돈을 주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 쇼를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저한테 ‘Thank You'라고 한 마디만 해 주십시오. 그것이 제가 이 일을 하는 기쁨입니다.” 허리 숙여 인사하는 그를 향해, 관중들은 몰려들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곤 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미소, 그의 입가에 있었다.
런던의 한 광장에서 본 풍경이었다. 우스꽝스런 차림을 한 남자가 관객들을 불러 모으더니, 말재주와 신기한 묘기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관객을 끌어내어 놀리기도 했고, 3미터 높이의 외발자전거 위에서 칼 3자루를 저글링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사실 유럽에서는 이러한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인터라켄의 조그만 시내에서도 로마의 커다란 광장에서도, 스프레이로 풍경화를 그리는 사람도 특이한 가면 춤을 추는 그룹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광장뿐만이 아니었다. 뮌헨의 길거리엔 아름다운 목소리가 울렸고, 샹젤리제 거리의 비보이들은 관객들의 춤 본능을 자극했다. 그런데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 내 이름은 무엇이고, 이것은 내 직업이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그 행복했던 유럽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피로가 채 가시기도 전의 일이다. 나는 운 좋게 괜찮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들어간 대가로, 매년 가을마다 입시 문의 전화에 시달린다. 학교나 학원의 선생님만큼이나, ‘현장경험’이 있는 학생의 말도 중요시 하는 것이다. 우리 애가 지금 성적이 이런데 이 대학에 지원하는게 어떻겠느냐, 대개 이런 내용이다. 나도 막막하고 답답한 입시생의 마음을 겪어 보았기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려 하지만, 항상 상담 후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유럽에서 받은 충격이 컸던지라, 사실 진짜 말하고 싶은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글쎄요, 아무리 A대학이 명문대학이긴 하지만, 지금 지원하려는 B과가 학생 적성과 별로 맞지 않다면 좋은 선택 같아보이진 않습니다. 저는 유럽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들의 입가에 얼마나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지 보셨다면, 아마 제 의견에 동의하실 겁니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아마 며칠 만에 온갖 소문이 다 나겠지. ‘웬 X라이 대학생한테 전화를 했었다.’는 내용, 혹은 ‘자기는 대학 좀 갔다고 허세나 부리는 이기적인 대학생’ 정도의 평가를 받지 않을까. 그리고 꼭 그런 평가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도 그렇게 대답해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너무 ‘꿈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유럽에서 본 자유로운 영혼들이 더욱 더 떠올랐다. 행복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 어떻게 그런 ‘꿈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가능한 것일까. 내가 유럽여행을 간 것이 아니라 혼자 꿈을 꾼 걸까. 한국 사람들이 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소신껏 하며 행복하게 산다는 건 그저 꿈일 뿐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에 보면 “천국에 대한 꿈보다 더 아름다운 꿈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또 그보다 더 헛된 꿈이 뭐가 있겠습니까?”라는 말이 나온다. 어쩌면 내가 꿈꾸는 그런 사회는 아름다운 만큼이나 허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이 여행을 갔던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있지, 저런 사람들은 광장 내 자리 선정은 어떻게 할까? 좋은 시간대나 장소를 가지고 싸우지는 않을까? 아니면 누군가 개입을 하는 걸까? 영화에 보면, 포장마차 자리를 두고 불량배들에게 자릿세를 주곤 하잖아.”
그 말을 듣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실제로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꿈 속에서도 현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들이 ‘이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라고 강하게 밝히는 내면에는 스스로 확신이 부족해 그러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껏 웃다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완전히 꿈같은 세계는 없지.’
하지만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내 앨범에는 유럽행 비행기 티켓이 간직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가 유럽에서 본 세상은 꿈이 아니었다. 또한, 그 세상이 완전히 ‘꿈같은 세상’은 아니더라도, 여기 보다 더 꿈에 가까워 보였다.
1950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한국 전쟁을 보고 “이 도시를 복구하는 데에는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다.”라 했다. 우리는 세계가 감탄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한국에는 아직 복구되지 않은 이면이 남아있는게 아닐까. 원하는 일을 하며 살지 못하여 슬픈 영혼들이 존재하지 않는가. 하지만 나쁘게 생각할 것은 없다고 본다. 아직 60년 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40년 이상이 남지 않았는가.
 아직 먼 미래지만, 나는 2050년 대한민국을 기대한다. 아니, 나는 2050년 대한민국을 꿈꾼다.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