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아주대 앞에는 스타벅스보다 잘 나가는 카페 ‘우리동네 커피집’이 있다. 커피맛 좋고 아기자기한 내부에 친구들과 오랫동안 수다 떨기에도 좋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동네 커피집은 직원 중 한 명 이상 정신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이라는 사실을.
우리동네 커피집은 사회적기업 ‘우리동네’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대표인 정신과 전문의 안병은 씨는 카페뿐 아니라 학원, 정신과의원까지 차린 문어발식 경영가다. 예전엔 편의점과 운동화 빨래방, 세탁소도 했었다. 모두 정신장애인들이 일하고, 공부하고, 건강문제를 상담하는 생활공간이다.
마음이 아픈 이웃도
능력껏 일할 수 있는 동네
‘우리동네’는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을까.
“정신장애인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직업이 무척 중요해요.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은 고용장벽이 너무 높아요. 장애인을 뽑는다 해도 지체장애나 지적장애를 오히려 선호하지 정신장애는 꺼려요. 그렇다면 (정신장애인은) 왜 고용을 안 하느냐, 또는 고용해도 왜 유지가 안 되느냐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지요. 그럼 뭐가 어려운지 내가 한번 해보자 해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
사회적기업이란 한마디로 ‘커피를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커피를 파는 기업’이다. 기존의 복지관이나 사회복지단체처럼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지만, 외부 후원이나 펀드에 의한 운영은 최소화한다. 대신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영업활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우리동네’는 지난 2009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생산적 복지의 개념이죠. 사실 인증이라는 것 자체가 중요하진 않아요. 우리나라에서만 2007년부터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어요.”
- 그럼 개인적으로 사업하실 수도 있는데 굳이 사회적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공공성(Public)의 개념을 담고 싶었어요. 이것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릇이 현재는 사회적기업이에요. 그래서 도덕적인 문제나 재정적 부담을 제가 짊어져야 하는 상황인데도 선택을 한 거죠.
그리고 내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물론, 돈도 안 돼요. 하지만 사람들은요, 그 빈틈을 놔두지 않아요. (정신장애인을 고용한 편의점으로 첫발을 내디뎠을 당시) ‘환자 가지고 장사한다’고… 그런 게 싫었어요.”
- 의사로서 ‘진료’ 부분보다 ‘재활’이라는 분야에 집중하시게 된 계기는요?
“체 게바라는 쿠바를 혁명에 성공하게 한 혁명가이지만 결국엔 의사였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치료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약물치료, 안 되면 입원치료. 그럼 그다음에는 뭐냐는 거죠. 재활 ‘치료’예요. 치료의 연속선상이에요.
그 사람의 삶까지 보듬어야
온전한 치료
온전히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까지 치료해줘야 해요. 저는 그 삶을 배제한 치료는 공허했어요. 실제로 그들의 삶을 생각하는 치료를 하고 싶었어요. 농담으로 ‘그.삶.치’다 - 그들의 삶 속에서 치료하자? 또 영어로는 T.T.L(Treatment in Their Lives)이라면서, 허허허. 그러다 보니까 모든 것이 치료라고 생각해서 그들의 직업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동이 저평가되는 현실도 바꿔보고 싶고, 그들에게 적합한 직업군도 개발하고 싶고요. 결국 그들이 잘 살 수 있고, 잘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는 게 큰 틀이에요.”
안병은 씨는 장애인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에이블아트(Able art)’라는 곳에서도 ‘장사꾼’으로 활동 중이다. 장애인도 예술작업을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고, 장애인 예술가의 전시·공연사업을 기획하는 등 기존의 ‘곰탱이 눈깔 붙이면서’ 보호받는 일보다 좀 더 새롭고 창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 조기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동네 희망학원’을 열어 다른 아이들처럼 방과 후 공부할 곳을 마련하고, 지역주민의 정신건강문제를 다뤄보고자 최근 ‘우리동네 정신과의원’을 개업했다.
여러 일을 하느라 힘드시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지속가능 하려면 단순히 선의를 호소하기 보다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피집 가는 데 사회적기업이라는 것 땜에 가진 않잖아요. 우리의 뜻에 공유해주면 더 좋은 거지만 팔아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거죠.”
우리동네 커피집은 이런 신념 하에 홍대 앞 일대와 일본의 카페들을 직접 탐방하며 연구한 결과물이다. 반응이 좋아 현재 프랜차이즈 식으로 뻗어나간 커피집만 네 군데이고, 그 중 하나는 1호 점에서 일하던 직원이 사장님으로서 홀로서기했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 믿어주기
-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세요?
“카페가 사람들로 꽉 찼을 때?(웃음)
내가 정말 힘들게 치료한 친구가 취직하면서 무척 좋아할 때? 어제도 한 친구가 카페 채용이 결정 났는데, 일 잘한단 소리를 듣고 있지만 분명히 고비가 올 거예요, 증상을 못 이기고 그만둘 수도 있고.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우리 같이 살자’ 그래요, 힘들면 입원했다 다시 퇴원하면 되는 거에요. 그렇게 힘든 과정을 몇 번이고 넘기면서 점점 좋은 모습 보이고 날 믿어주면 고맙죠. 실제로 ‘아 선생님, 약 좀 더 올려야겠어요.’라고 하기도 해요. 이런 얘기 들어보는 의사가 몇이나 될까요? 약에 대해 서로 상의하고, 환자에게 주도권을 많이 주고, 같이 믿으면서 사는 거죠. 어찌 보면 사이비 같애, 사파죠 사파.”
- 만약 정신과가 아닌 다른 과 의사셨다면 어땠을까요.
“다른 과를 갔더라도 똑같은 삶을 살았을 거에요. 만약 의사가 아니었다면요? 문제없어요. 사람은 무엇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어느 병원에서 무슨 과를 하느냐 하는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 앞으로 꿈이나 계획이 있으시다면.
“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고, 그리고 동남아나 네팔에 가서 커피집이나 한번 해보고 싶어요. 우리도 의료선진국에서 많이 배웠잖아요, 근데 의사들은 맨날 중국 시장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가 이런 생각만 하고 있어요. 모든 것이 자본과 결탁이 되어있어요. 우리동네가 했던 모델이 동남아에서도 도움이 된다면 우리 시스템을 주어야죠. 거기에도 분명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돕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 마지막으로 의대생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합니다.
“사회에 관심을 좀 뒀으면 좋겠어요. 사람을 생각하고, 질병만 보지 말고. 이 사회가 바로 환자가 살아가는 공간이니까요.”
정다솔 기자/중앙
<astronova@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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