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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
여전히 진행 중인 용산 참사, 그 현장에서 

 


1월 20일 새벽, 용산은 불탔다. 세간에서 불법 농성자라고 부르던 하지만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였을 뿐인 다섯 분이 현장에서 명을 달리 했다.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 특공대 한 명도 사망했다. 20일 뒤 발표된 검찰의 수사는 경찰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다. 대신 불법 폭력집회를 벌인 혐의로 농성 가담자 5명이 구속 기소되었다. 나머지 15명은 불구속기소 되었다.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어 갔다. 그러나 유족들에게 사건은 여전히 미종결 상태다. 2월 25일, 기자는 희생자들의 빈소가 마련된 한남동 순천향 병원을 찾았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여가 흐른 아직도 현장의 ‘참극’은 여전히 진행 중 이었다.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순천향 병원, 긴장감 감돌아  


 기자가 찾은 순천향 병원 주위는 삼엄했다. 병원 정문 앞 도로에는 전경버스와 순찰차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병원으로 들어오는 입구 곳곳엔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다. 병원을 드나드는 차량은 경찰의 검문을 받아야 지나갈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은신 중인 전국철거민연합 남경남 의장을 검거하기 위해서다. 장례식 장 앞에는 여러 단체에서 보내온 화환과 ‘근조’라고 쓰인 검은 플랜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노점노동조합연대’, ‘전국 금속 노동조합’이 쓰인 플랜 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각종 노동조합들이 연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장례식장 바깥에는 유족들과 전철연 회원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보이는 대형천막이 여럿 설치되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기자에게 사람들은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어디에서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를 물었다. 경찰의 경비가 삼엄한 만큼 유족들의 경계심에도 날이 서 있었다.  
 

유족 측, 진상 규명 전까지 장례식 무기한 연기 

 희생자들의 빈소는 장례식장 4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유족 및 철거민 관계자들은 장례식장 4층 전체를 사용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낯선 이의 접근을 꺼려했다. 조문을 하려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외부의 조문은 받지 않는다.”는 차가운 대답만이 돌아왔다. 사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희생자들의 장례식은 무기한 연기 중이었다. 용산 철거민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는 ▲화재 원인 및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 ▲경찰 책임자 문책 ▲대통령 사과 및 구속자 석방의 요구가 관철될 때 까지 장례를 연기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찰과 유족들과의 대치 상태에서 정작 난처한 측은 병원이다. 현재 희생자들의 장례가 무기한 연기된 상태에서 병원비를 포함한 장례식장 사용료가 1억 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순천향 병원 관계자는 “사태가 해결되면 장례비를 청구할 예정” 이라고 밝혔지만 사태해결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철거민과 경찰사이, 몇 발자국이었을 뿐  

기자는 무거운 발걸음을 용산으로 돌렸다. 용산 참사 현장도 한 달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경찰과 전철연 회원들과의 대치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신용산역 3번 출구. 지하철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로변에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이 있다. 대로변이라는 위치가 무색하게 건물은 흉물스럽게 변해있었다. 유리창은 모두 깨져있었고, 벽은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현장을 지키는 전철연 회원들이 때우는 불 때문인지 주위의 공기에도 화마의 냄새가 묻어나는 듯 했다. 건물 옆 편에는 당시 진압에 쓰였던 것으로 보이는 경찰 버스가 놓여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난 한 달 동안 시민들이 만든 각종 작품과 추모의 메시지들이 경찰버스를 뒤덮고 있었다. 이 곳에도 희생자 합동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빈소를 지키던 관계자는 “일이 처리될 때 까지는 계속 분향소를 유지할 것” 이라고 밝혔다. 현장 앞에서는 구속자 석방 및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민 서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분향소에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엔 경찰 병력이 이열 종대로 대오를 맞추고 있었다. 경찰은 건물 안에도 배치되어 있었다. 건물 사진을 찍으려는 기자에게 경찰은 사진을 찍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조문을 마치고 뒤돌아 오는 길, 신용산역에 가까워질수록 건물들은 높아지고 화려해진다. 그럴수록 반대편 재개발 지역의 빛바랜 건물들이 유난히 더 퇴색되어 보이는 건 왜일까. 남일당 건물 이층에 걸려있던 분홍색 간판의 문구가 문득 떠올랐다.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라는.  

이예나 기자 / 순천향
<lynar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