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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보행, 왜 하는 거야? 과연 잘 될까?

 파란 불에 손을 들고 횡단보도 건너기. 웃어른께 인사 잘하기. 길에 쓰레기 버리지 않기. 유치원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우리가 공공장소에서의 예절과 바른 생활 습관에 대해 배워온 내용입니다. ‘좌측통행’ 또한 선생님들과 노란 띠를 두른 선도위원들이 빠지지 않고 언급하던 내용 중 하나였지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배운 내용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서도 꽤 성공적으로 실행해오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에 갑자기 ‘편리하고 안전한’ 우측보행에 대한 홍보물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까지는 말입니다.
 국토해양부는 작년 4월 공공시설물 및 교통시설을 우측보행에 맞게 개선하고 차도·보도에서의 우측통행 확립을 위해 도로교통법을 개정하고 교과서를 보완하는 방안을 마련했으며 올해 7월부터는 우측보행이 전면 시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측보행, 왜 하는 거야?

 우측보행 캠페인의 일차적인 목적은 물론 ‘안전하고 편리하게 걷자’는 데에 있습니다.
 국토해양부의 우측보행 홍보 홈페이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도로의 형태에 따라 통행방법이 각각 달라 보행원칙을 통일하면 교통사고의 20%를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널 때 정지해 있는 차와의 간격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어 위급상황에 차량이 급정거를 하더라도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분리·비분리 도로에서도 우측보행을 하게 되면 차를 마주보고 걷게 되어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인구의 90%가 오른손잡이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리하여 우측보행이 좌측통행보다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고 합니다. 공항 게이트나 회전문 등의 많은 시설물들이 이미 우측통행을 기준으로 설치되었기 때문에 좌측통행 시 보행자 간 충돌 등의 불편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많은 국가에서는 우측보행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글로벌 시대에 보행원칙을 국제관행에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도 우측보행을 지지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잘 되고 있는 건가?

 21일 오전 서울 지하철 2·4호선 환승역인 사당 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승객들과 반대 방향으로 갈아타는 사람들로 분주합니다. 출입 계단을 지나는 시민들은 우측보행에 대해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 모습입니다. 계단 바닥 곳곳에는 파란색 우측보행 스티커가 붙어 있고 벽에도 우측보행 포스터가 붙어 있지만 정작 우측보행을 하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보행자의 편의와 글로벌 보행문화 정착을 위해 통일된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발상은 높이 살 만합니다. 하지만 추진과정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토해양부가 우측통행이 타당하다고 제시하는 몇몇 근거의 사실성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먼저 국토해양부가 한국 교통연구원에 맡긴 ‘우측 보행의 타당성’에 대한 연구는 결론이 없는 것으로 종결되었습니다. 또한 우측보행이 글로벌 관행이라는 홍보와는 달리 많은 나라들이 좌·우측통행을 혼합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측보행만을 원칙으로 하는 나라들은 영국, 일본, 홍콩과 같이 차량 좌측운행을 실시하고 있어 우리나라와는 단순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정부 차원의 정책을 실행하면서도 관련 예산이 책정되지 않아 주요 공공시설이나 보도 등에 우측보행의 타당성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점자 포스터나 도우미 등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구조적인 문제로 우측보행이 통행 효율성을 저하시키거나 아예 우측보행이 불가능한 지하철역도 없지 않습니다. 
 사람은 습관의 동물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좌측통행의 중요성을 귀에 닳도록 들어 이미 좌측통행이 익숙한 상태에서 충분한 설명도 없이 우측보행을 강요한다면 옛 습관은 잘 고쳐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좌측통행이 오랫동안 관습화된 통행방법임을 감안한다면 보행원칙을 바꾸기 전에 충분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어야 합니다. 우측보행의 장점과 타당성에 대해서도 시간을 두고 널리 홍보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요.

이혜미 기자/서남
<mana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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