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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사랑의 찬가>를 선물합니다

 

얼마 전 아는 선배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청첩장을 받고서 조금 걱정(?)됐던 것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성당 결혼식이라는 점. 전에도 몇 번 보았지만 평소 엄마 따라 다니던 절에 더 익숙한지라 성당의 높은 천장과 하얀 면사포는 여전히 생소했고 주례보는 신부님의 은색 옷에도 눈이 갔습니다. 물론 가장 신기했던 건 언제나 개구지던 선배가 의젓한 신랑이 돼서 예쁜 신부와 손잡고 방글방글 웃고 있는 모습이었구요.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던 저는 신부님이 주례를 보는 동안 절차에 맞춰 축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앉고 일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슬슬 종아리가 붓고 집중도가 떨어지려는 즈음에, 자비로운 하느님이 용케 아시고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찬미>를 제 귀에 넣어주셨습니다.  결혼식에서 자주 쓰이는 성경구절인데, 그 날 만은 참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언도 없어지고
신령한 언어도 그치고
지식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코린 13,1-8)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설령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 수 천 번 든 생각들이진 않은가, 정말 참기 어려운 순간에도 모든 걸 덮고 믿고 견딘 적이 있었던가. 바오로 찬가의 사랑은 제가 들어본 여느 사랑보다도 크고 본질에 가까웠습니다. 단순한 남녀 간 사랑을 넘어 보편적인 사랑의 본질을 묘사한 바오로는 온갖 예언과 신비스런 말들, 지식은 유한하고 부분적이지만 사람에 대한 사랑은 무한한 ‘전체’임을 역설합니다.
이래저래 복잡한 세상, 수많은 정보와 갖은 관념과 현란한 말과 글에 둘러싸여 종종 본질을 놓치는 자아에게 바오로의 찬가를 선물합니다. 가장 쉬워서 가장 잃어버리기 쉬운 이정표를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김정화 편집장
<editor@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