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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또 하나의 가족>의 ‘가족’이 되다

 

본과 2학년, 고달픈 3일간의 1쿼터 기말고사를 치르는 동안 달력의 큰 숫자는 4에서 5로 바뀌어 있었고 바깥 사람들의 옷차림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본과 2학년이 되면서 신문사도 휴직하고 합창단, 봉사단 활동도 모두 중단했던 까닭에 시험이 끝나도 작년처럼 일이 쌓여있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득 며칠 전 어느 신문사 선배의 페이스북에 뜬 “영화 보조출연 함께 가실 분, 선착순 3명”이라는 글에 충동적으로 댓글을 달아 신청한 것이 생각났다. 날짜를 찾아보니 무려 일요일. ‘아.. 시험기간에는 무슨 일인들 재미가 없어보였겠냐, 주말인데 그냥 쉴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그래도 어떤 영화인지, 어떤 배우가 출연하는지나 찾아보자’는 생각에까지 ‘겨우’ 이르렀다.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은 한 때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또 하나의 가족’은 원래 오래된 삼성의 광고카피이기도 하다. 물론 문구가 뜻하는 바는 고객들을 가족처럼 여기겠다는 것이지만, 각종 증거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교모히 피하는 대기업의 전횡 앞에서 이 문구는 무색해진다. 영화의 이런 소재 때문에 대형 자본의 투자를 바랄 수도 없었다. 때문에 제작진은 물론, 출연 배우들도 개런티 없는 촬영에 동의했다. 그리고 실제 주인공인 故 황유미 씨의 유가족들 그리고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되기를 바라는 미래의 관객들이 힘을 모아 ‘제작두레’라는 형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다. 이번 보조출연자 모집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5월 4일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원주로 가는 중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내가 영화 속의 구체적인 어떤 역할을 맡아 정말 배우처럼 영화 촬영을 해본다거나 유명한 여배우와 같은 탈의실을 쓰게 되는 것과 같은. 혹은 촬영 시작하기에 앞서 열 명 남짓한 보조출연자들 앞에서 책임 프로듀서가 이 영화의 의미를 설명해주고 참여한 우리를 향해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과 같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막장드라마’ 같은 - 실화를 다루게 되었고 그 덕에 제작과정에서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프로듀서님의 이야기에 나는 오랜만에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일개 보조 출연진에게 감독이 먼 곳에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인사하고, 어깨동무를 하고서는 어느 학교 몇 학년이냐고 물어보는 주연배우 박철민을 보면서 감히, 세상에 이런 촬영현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설렌 마음도 잠시. 지루해도 너무 지루한 영화촬영 과정 동안 나는 금방 녹초가 되었다. 지켜보기만 해도 지치는데 스텝들과 배우들은 수 개월간 이 작업을 해온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올까말까 고민했던 시간이 부끄러울 만큼 소중한 경험이었다. ‘내가 힘들다고 드러누워 의미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때에도 이렇게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여러 사람들이 땀 흘리고 있구나.’ 그리고 ‘예정대로 올 9월에 이 영화가 내가 사는 대구에서도 많이 개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사로 처음 이 사건을 접하고 그 길로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은 감독, 십 수 년 전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던 사촌동생을 비슷한 이유로 먼저 떠나보낸 촬영스텝, 같은 이유로 아내를 잃고 이 영화가 무사히 개봉되기를 바라며 자신이 판매하는 물품을 현장에 무상으로 지원하는 어느 남편,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촬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된 나 같은 보조출연자들과 제작두레에 참여한 후원자들.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은 이들이 한 숟갈 한 숟갈 모아 가득 찬, 이제 갓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기 시작한 따뜻한 고봉밥 같은 영화라 생각한다.
마음이 동하면 해야 한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으니. 학업에 쫓기고 여유가 없다는 핑계에,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하겠다고 미루기 시작하면 언제 여유가 생길 것인가? 결코 적지 않은 무게를 가진 의미 있는 일에, 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족> 제작두레’와 같은 좋은 기회를 졸고를 통해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다.


<또 하나의 가족> 제작두레 : http://anotherfam.com

 

하진경 기자/계명
<jinkyeong@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