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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2010.10.11)/문화생활'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0.10.10 의학서의 저자들 : 5회 - 프랑크 네터
  2. 2010.10.10 예술, 한 입 드셔 보실래요?

해리슨, 사비스톤, 가이튼...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봐야 하는 교과서들의 제목을 장식한 이 분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의대생신문에서는 올 해 6회에 걸쳐 의학교과서의 저자들의 생애와 업적을 파헤칩니다. 가이톤, 해리슨, 홍창의, 그래이에 이은 다섯 번째 순서는 눈이 호강하는 책 ‘네터 컬렉션’의 저자, 프랑크 네터입니다.

의학계의 미켈란젤로, 프랑크 네터

예술계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있다면 의학계에는 프랑크 네터의 네터 컬렉션(The Netter Collec-tion)이 있다. 처음에 시바(CIBA) 컬렉션으로 출판되었다가 판권이 ELISIVER로 넘어가면서 이름이 바뀌었는데, 13권으로 시작했던 컬렉션이 이제는 수십권에 달한다. 또한 온라인 버전, 3D 버전, 스마트폰 어플 등 계속해서 다양한 컨텐츠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의사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환상적인 그림 실력을 갖춘 저자, 프랑크 네터(Frank Netter)에 대해 알아보았다.

미술가 or 의사?

1906년 뉴욕에서 태어난 프랑크 네터(1906-1991)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 뉴욕 대에 다닐 때에도 오후에는 만사 다 제쳐두고 국립 디자인 아카데미에 미술을 배우러 다녔다. 당연히 학교 성적은 점점 곤두박질쳤고 결국 부모님께 미술공부를 하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씀 드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미술가라면 그저 방탕한 생활을 해대는 방랑자들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노발대발하시며 의사 같이 존경받는 직업을 선택하라고 간곡히 부탁하셨다. 하지만 네터는 어떠한 설득도 완강히 뿌리치고 미술가의 길을 선택했다.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꽤 성공적인 상업 미술가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끝까지 모른 체하며 살아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결국 몇 년 못가서 어머니 소원대로 뉴욕대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입학 후에도 계속해서 그림을 그렸다. 남들이 부리나케 필기를 해댈 때 그는 강의내용을 그림으로 쓱싹 스케치하곤 했다. 한 눈에 들어오는 그림 정리가 동기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교수님들께도 알려졌고, 그때부터 강의 자료나 교과서 삽화 일을 도우면서 용돈을 벌기도 했다.
1931년 의과대학 졸업 후, 벨뷰 병원(bellevue)에서 인턴을 수료하고 맨하튼에서 외과의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1933년, 당시 세계 경제 대공황으로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부수적으로 삽화 알바를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림 다섯 폭에 $1500을 요구한 일에 $7500를 받게 되면서 (그림 하나당 $1500으로 쳐준 것이다!) 그때부터 아예 임상의사로서의 직업을 그만두고 전업 의학전문 삽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미술가 and 의사!

1938년 제약회사 시바(CIBA, 1997년 합병되어 현재는 세계 1위 제약회사 노바티스)에 고용되어 회사 홍보용 그림들을 그리게 된다. 첫 작품은 화일을 심장 모양으로 자르고 그 위에 그린 것이었는데, 많은 의사들이 홍보문구를 빼고 제작해 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다른 장기들에 대한 호응도도 마찬가지였다.
치솟는 인기에 힘입어 13권짜리 시바 컬렉션을 편찬하게 되었다. 총 4,000개가 넘는 그림이 삽입되었으며 인체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조직학 등을 각각 계통 별로 정리되어있다. 의학계의 큰 센세이션이었으며 1988년 뉴욕 타임즈가 ‘전세계 대부분의 해부학 교수들 다 합쳐놓은 것보다 의학교육에 더 많이 기여한 회가’라고 했을 정도로 수많은 기관, 평론가, 독자들에게 칭송받는 책으로 꼽히고 있다.
꼽을 수 없이 많은 표창과 영예 뒤에는 그만큼 쏟아 부은 노력이 있었다. 네터는 심혈을 기울여 시바 컬렉션을 완성하였고 집필 도중에 수많은 전문의들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을 지식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료 수집을 위한 여행도 수없이 다녔다. 1980년 초 세계 최초 심장 이식 수술을 참관하고 그 모든 과정을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다. 물론, CT 스캔이나 MRI 같은 첨단 영상의학 자료들도 배제하지 않았다.
이 책의 큰 특징은 환자들의 표정, 안색, 몸짓 등에서 개개인의 인격이 묻어날 정도로 사실적이라는 점이다. 사람의 다양성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자하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우리가 고장 난 텔레비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음을 상기시켜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환자를 대할 때 하나의 독립적인 사고력 퀴즈로 보지 않고 환자 개인이 겪고 있는 복합적인 어려움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의사의 길을 포기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나는 의학의 모든 분야를 다 어우르는 전공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물보다도 사진보다도 더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유져 프렌들리한, 네터 컬렉션이야말로 진정으로 이 시대의 최고 학습서라고 생각한다. 의학이 제아무리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나간다 해도 미켈란젤로의 전지창조가 반 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받듯이 네터가 남긴 4,000여종의 걸작들도 고이고이 만년야마로 내려올 것이다.

문정민 기자/중앙
<moon_jm@e-mednews.com>

2010 광주 비엔날레 <만인보>전

유난히 뜨거웠던 여름날도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고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파란 하늘과 함께 가을이 돌아왔다. 무더운 날씨에 밖으로 나가기도 두려웠던 과거는 접어두고 쾌청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예술의 세계로 꿈같은 일탈을 해보는 건 어떨까. 
지금 전라남도 광주에선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광주비엔날레’가 한창이다. 이번 2010 광주비엔날레의 주제어는 바로 <만인보-1000Lives>. 이 주제어는 고은 시인이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여한 혐의로 투옥생활을 하던 중에 쓴 연작시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4000여개의 시로 구성된 이 작품 속에는 시인이 살아오면서 현실에서건 문학에서건 역사 속에서건 그가 마주쳤던 모든 인물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번 <만인보>전에서는 현대인들이 광적으로 갈구하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미지,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물에 초점을 맞춘 예술작품들이 주제의 맥을 관통하고 있다.
전시회는 비엔날레관, 광주 시립 미술관 그리고 광주 시립 민속 박물관에서 각각 펼쳐지고 있다. 먼저 주전시관인 비엔날레관에서는 5개의 전시실이 따로 또 같이 이미지에 대한 화려한 변주곡을 울리고 있다. 제 1 전시실은 사진을 이용한 여러 가지 시도를 보여주며, 이미지의 재활용 혹은 차용을 통한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고찰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야 이베코비츠의 <바리케이드 위에서>(2010)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기존의 도상학적 틀에서 벗어난 초상사진-인물의 눈이 감긴-을 통해 새로운 형식으로 기리고 있다. 또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사진작가 워커 에반스의 대표작들과 신세대 사진작가 셰리 레빈이 똑같은 그 대표작을 다시 찍어 나란히 전시해 놓은 것도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지며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제 2 전시실은 실험적인 테크놀로지에 매료된 아티스트들이 추구하는 이미지들과 환영, 혼돈을 심도 있게 나타내는 드로잉과 콜라주※, 비디오 작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카르슈텐 휠러는 어두운 방안에 적외선 카메라(cctv)와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고 제이콥 케세이는 캔버스에 은도금 작업을 했다. 이들은 관람객 스스로가 작품의 주인공이 되게 함으로써 전시관 내에 존재하는 ‘나 자신’을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또 아르쿠르 즈미예브스키는 청각 장애인 학생들에게 합창을 시키고 시각 장애인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영상을 찍어 예술계에 큰 논란거리를 낳았는데 이는 과연 이러한 작업들이 창조적인 이미지를 갈구하는 행위를 넘어서 일종의 폭력으로까지 변질되는 것은 아닌가 고찰해보게 한다. 
이제 옆 건물로 넘어가 제 3 전시실로 들어가면 전쟁과 압제의 비극적이고 처절한 장면들이 예술로 승화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올해 광주 비엔날레 총 예술 감독을 맡은 마시밀리아노 지오니가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복합적인 이미지’ 라고 말한 바 있는 <뚜얼슬랭 수용소 초상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한다. 1975년부터 약 5년간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일어난 끔찍한 대학살의 희생양이 된 이들의 마지막 기록. 이 기록과 예술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작품은 우리에게 증오라는 감정이 얼마나 허공에 쏜 화살과도 같은 허무하고도 위험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다.
거대한 오브제들과 아카이브※를 연상시키는 작품들로 시각적인 흥미를 돋우는 제 4 전시관은 ‘은유’로서의 이미지를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눈에 관람객의 발길을 이끄는 이데사 헨델레스의 <테디베어 프로젝트>(2002)에서는 테디베어와 관련된 사진 3천 여 장이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따뜻한 노스텔지어로서의 은유로 작용한다.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검열을 피해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헤르만 글뢰크너는 언젠가는 큰 오브제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작고 보잘 것 없는 재료들로 아쌍블라주※를 제작했다. 하얀 테이블 위에 전시된 그 작은 오브제들이 내뿜는 아우라에는 그 시절에 어떠한 압제에도 꺼지지 않았던 작가의 열정이 그대로 담겨있다.
저우 샤오 후의 기발한 비디오 아트가 상영되고 있는 제 5전시관까지 관람을 다 했다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생각이 트이고 눈이 뜨이는 창작물들의 향연이 막을 내린 것에 아쉬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아쉬워하기 전에 비엔날레관에서 도보 5분 거리에 광주 시립 미술관과 광주 시립 민속 박물관이 있다는 걸 상기시켜 보자. 광주 시립 미술관에서는 그동안 쉬이 접할 수 없었던 앤디워홀이 모아둔 잡동사니와 기념품들을 볼 수 있고 사진을 좋아하는 이라면 관심 있게 볼만한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의 1000장에 달하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디저트’라는 컨셉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기발한 전시회도 마련되어 있다.  
아직도 예술을 그저 감상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야 있을까 만은 이번 2010 광주 비엔날레에서도 관람객은 직접 예술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도 있고 그저 그 존재 자체로도 예술이 될 수 도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신발을 벗고 거대한 방수천 속으로 기어 들어가 대형 사진을 보며 사진 속 인물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고 셀프 포토샷을 찍은 후 전시실 벽에 걸어 관람객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작품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또한 광주 지역 대학생 예술인 창작집단 ‘잉여인간 프로젝트’가 무료로 그려주는 초상화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쏠쏠한 재미까지 있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상에 앉아 똑같은 책을 보며 똑같은 지식을 흡수하고... 사실 어찌 보면 우리는 참 비인간적인 일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도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달콤한 디저트를 맛볼 수 있다. 그 디저트 속에는 우리와는 조금 다른 시공간에서 세상속의 질서와 혼돈에 항거하고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의 활화산과도 같은 혼이 녹아있다. 그 맛은 깊고 진하여 길을 걷다가도 문득 생각날 듯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맛이었다.

+) 2010 광주 비엔날레는 11월 7일까지 광주 비엔날레관에서 열린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 참조.

이선민 기자/을지
<god0763@e-mednews.com>

※ 콜라주 : 풀로 붙인다는 뜻으로 1912년경 입체파 화가들이 유화의 한 부분에 신문지나 벽지 등의 인쇄물을 풀로 붙인 기법에서 유래.
※ 아카이브 : 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둔 일종의 정보창고.
※ 아쌍블라주 : (미술에서) 일상용품 따위를 조합시키는 기법 또는 그러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