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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강연 스케치

- 이재명 성남시장 : 복분자(복지·분권 ·자치)를 말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의료민영화와 원격의료는 대한민국 의료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었다. 의료관련 정책·사회에 대해 관심 없는 의대생들 혹은 현재 자신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의대생들에게도 이 문제가 어떻게 다루어지냐에 따라 의사로서 활동하게 될 자신들의 미래가 영향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지는 제6회 ‘젊은의사 포럼’의 강연자로 참석한 이재명 성남시장의 ‘복분자를 말하다’의 강연내용을 실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직업에는 3대 프로페셔널한 영역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 한 사람이 하던 일이었다. 재판을 하는 것, 몸을 치료하는 것, 영혼을 치료하는 것. 이 세 가지가 원래는 무당이 하던 일이었다. 판단의 영역이라 기계가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일의 특징이다.
오늘 아침에 신문을 보니, 요즘 중요한 의제 중 하나인 백남기 씨 관련 이야기가 있었다. 우리 의료계가 ‘병사냐 외인사냐?’의 판단 문제로 끌려들어갔다. 사인을 병사로 기입해서 논란이 있는 것이다. 진단서 작성과정 중에 실수가 있었느니, 없었느니 말이 많았다. 이 모든 것이 의료 행위가 ‘전문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을 하게 되니까 그런 것이다. 의대생 여러분들은 젊은 사람들이고, 선택 받은 사람들이다. 여러분 또래가 겪는 고통과 약간은 다른 고통을 겪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청년수당 안 받으면 큰일 나고, 그러나? 아닐 것이다.

내가 시장이 된, 정치인이 된 이유가 있다. 나는 변호사인데,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3대 프로페셔널 중 하나이다. 처음에는 인권운동,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열심히 사회운동을 하다가 어느 날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바로 여러분들이 하는 활동과 관련되어있다. ‘공공의료 확보 활동’이 그것이다. 누군가가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책임져 줘야 하는 분야였다. 의식주, 그리고 인간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의식주에 관해서는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한다. 건강한 사람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체육관 짓는 등 각종 시설을 짓고, 몇 억 이상이 그렇게 들어간다. 성남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적자가 나는 영역이지만 연간 30억 이상씩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투자를 한다. 조경관리, 시설관리, 도로포장, 산책로 조성 등에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간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영역에 돈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반론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건강을 해쳤을 때,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것에는 공공이 투자하면 안 된다는 묘한 고정관념이 있다. 결국은 의료를 어떤 ‘상품을 생산해서 팔아내는 영리 활동의 영역’으로 생각할 것이냐, 아니면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최소한의 서비스’로 생각할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다. 생각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민주공화국의 가치다. 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공공의료 수가는 5.5% 밖에 안 된다. 의료 병실수로 하면 9.8%다. 이 수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유럽, 멕시코, 미국 대부분은 공공의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30%는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계속 10% 미만에서 머물고 더 떨어지고 있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남병원, 인하병원 두 병원 모두 성남시에 있었다. 2003년 여름에 동시에 폐업을 했다. 이유는 장사가 안 되어서였다. 1차 진료를 봐주는 곳인데 성남시민들이 응급진료를 받아야 할 곳이 없어졌다. 병원을 다시 만들라는 운동이 있었지만 만들면 망하는데, 개인이 절대 할 리가 없다. 시에서 부지를 제공하겠다, 뭐든 하겠다, 열심히 홍보 했지만 장기적으로 수입이 나지 않으니까 아무도 안 하려고 했다. 그래서 성남시민들 사이에서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에게 병원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세금을 들여서라도 공공의료원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첫 시작은 폐업으로 직업을 잃은 병원노동자들이었다. 거기에 시민들이 가세했고, 거기에 시민운동을 하고 있던 이재명이 참여했다. 중간에 내 개인적인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공공의료 설립운동을 보고 이게 진짜 맞는 말이다, 싶어서 다시 시작했다. 주민발의 조례를 만들었는데, (조례는 시의원만 내지만 주민수 일정이상이 사인하면 발의가 된다. 가결이 되면 넘어간다.) “상장합니다”, 한 후에 47초만에  “부결합니다.” 하고 나가버렸다. 날치기하고 도망가버린 것이다. 1년 넘게 진행해서 10만명이 넘게 서명했는데. 방청객들이 열 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나는 그 사건이 터지고 교회 지하실에 숨어 있었다. 어느 날 보건의료 운동하시던 선배가 찾아왔다. 수배되어서 불쌍했는지 초밥을 사들고 와서, 둘이 앉아서 이야기했다. 억울하다, 이거 진짜 우리가 아무리 해도 안 되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 하다가 ‘그냥 우리가 시장하자. 수만 명 수십만 명 서명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으니 우리가 시장을 해서 직접 이 일 하자.’라는 말이 나왔다.  그 날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에 딱 결정했다. 내가 시장을 해서 이걸 짓고 만다, 그런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나는 2010년에 당선되었고 내년에 성남시립병원 완공이다.
공공의료가 모든 민영의료를 대체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꼭 필요하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분야에서 누가 의료를 책임질 것 인가. 그것을 선택하지 않는 개인이 나쁜 것인가? 아니다. 그런 선택을 불가피하게 만든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 것을 해소하라고 만든 것이 권력인데 권력을 행사하는 행정당국과 정부가 제대로 된 몫을 하지 못하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온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공공의료 영역은 적정한 선에서 필수적이다. 의료란 ‘공공서비스다.’라는 생각 자체를 지속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히포크라테스도 그런 선서가 아닌가. 고도의 도덕성과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원격진료와 의료 민영화. 기업이 개인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려고 하고 있다. 실제로 건강 증진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돈벌이를 위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다. 이래서야 되겠나? 3대 프로페셔널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존중해야 한다. 보수로도 예후로도, 존재로도, 법적으로도. 개원의들 중에도 폐업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의료인력이 남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영역에서 특정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경제적 영역에서는 부가 소수의 재벌가에게 집중된다. 모 호텔은 지분이 0%인데 실제로는 중소기업을 지배하여 100%를 선점하고 있다. 점점 집중화가 심해져서 자금력을 가지고 있는 소수에게 대다수가 흡수될 것이다. 원격진료, 영리법, 이런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집중을 막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사람들과 독립 되어 존재하는 지배기구가 아니다. 국민의 안정과 복리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도구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이 사회에는 많은 구성원들이 있다. 사람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이 욕망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각각의 개인은 좀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집중 하는 거다. 그것을 나쁘다고 하면 안 된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이 가진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누군가가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와 행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소수가 많이 가지려고 하는 사례가 아주 많다. 그것을 정치와 행정이 막아줘야 한다. ‘좀 그만 가져. 그만 뺏어. 여기 좀 도와줘.’
같이 살아가게 하면 그것이 잘 사는 사회이다. 어느 날 이것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사회적 권력을 가진 집단이 어느 순간부터 욕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자원이 유한한데 특정소수가 그것을 과하게 독점하기 시작하면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일어난다. 그 사회가 가진 기회와 희망이 사라진다. 그리고 나서 열정이 사라진다. 될 대로 되라. 케세라세라. 그 사회에 위기가 온다. 심하면 폭동이 일어나고 체제가 뒤집혀 진다. 엄청난 에너지를 들여서 기득권자들의 과도한 소유를 억제 시킨다? 그런 방법이 있지만 굉장히 어렵다. 누가 가진 것을 내놓으려 하겠나. 엄청난 기득권의 저항을 뚫어서 자원과 기회가 공평해지면 그 세대가 다시 흥하게 된다. 그러나 이게 실패하면 체제변환이 온다. 새로운 왕조가 생기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뒤집어 진다. 체제변환이라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기 때문에 가급적 그러면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좀 비슷한 상황에 와 있고, 이것이 지금 우리 청년세대가 처한 상황이다. 여러분은 좀 더 낫겠지만, 굉장히 불안할 것이다.

내가 살던 시대는 과도하게 집중된 시대였다. 여러분은 앞으로 더 험악한 독점의 시대, 불평등한 시대를 살게 된다. 좀 더 우월한 입장에 있는 것이 맞지만 그 사회 안에서도 여러분은 다시 소수에게 억압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어쩌자는 것이냐. 그래서 나는 우리사회가 좀 더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로 유턴을 해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지나친 불평등 때문에 다수의 대중들이 드디어 ‘도저히 못 견디겠다.’ 하는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에 비해 다수가 갖는 기회와 불평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생긴 현상들 중 하나가 미국 대선이다.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공화당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후보가 되어버렸다. 영국 브렉시트 문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사회로도 곧 넘어 올 수 있는 문제다. 전에는 대중들이 정치인들에게 조종당해왔다. 모범 답안 몇 개만 던져주면, 싫지만 그 중에서 어쩔 수 없이 욕하면서 선택했다. 정치와 대중은 괴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적인 삶’이 나빠졌다. 개인들의 절대적인 삶은 좋아졌지만, 내가 쌀밥을 먹어도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잘 먹고 있으면 화가 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리고 대중이 서로 교감할 수 있게 되면서 국민들끼리 횡적 연대가 가능해졌다. 개인이 정보를 만들고 생산하고 공유하여 국민이 정치를 조종하게 되는 상태까지 왔다. 그걸 정확하게 판 사람이 샌더스와 트럼프였다. 박탈감을 느꼈던 백인노동자들을 연구하고 정확하게 공략한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도 곧 그렇게 변할 것이다. 난 여러분이 기득권 그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상태가 지속되면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신윤경 기자/조선
<psyche12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