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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고시 대소동

- 국시원, 필기시험일 축소를 시도하다 학생들의 반발로 실패

 

 

의사가 되는 과정은 지난하고 긴 과정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고비를 거쳐야 하지만 그 필수과정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는 있다. 첫째는 대한민국이 그 교육과정의 합당함을 인정한 의과대학 혹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해 해당 과정을 수료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국시원이 주관하는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는 것이다.
최근 국시원이 2일간 실시되던 이 국가고시를 1일로 단축하려 했으나, 그 과정에서 준비와 의사전달이 미흡해 질타를 받고 계획을 취소하는 일이 있었다. 최근 의사 국가고시의 합격률은 전국적으로 93~95%정도를 오간다. 높은 수준이라 볼 수 있지만 이것이 시험이 쉽기 때문은 아니며, 앞서 언급했듯 의사가 되기 위한 두 필수 요소 중 한 가지이기 때문에 갑작스런 공지에 예비 의사들의 원성이 거셌다.

 

의사 국시의 역사

 

우리나라 의사 시험과 면허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총독부의 시행령과 인증을 벗어나 현대의 ‘의사 국가고시’라는 용어가 채택되고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52년의 일이다.
1952년부터 58년까지는 소위 메이저인 내외산소와 마이너 1교과를 더해 5교과를 하루에 1과목씩 5일간 시험을 치렀다. 이후 몇 년간은 3과목 체계가 되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시험과목조차 매번 달랐다고 한다. 1959년에는 내과학, 정신과학, 이비인후과학이다가 1961년에는 외과학, 소아과학, 이비인후과학 하는 식이었다.

 

표준화된 문제, 전국적 시험장소 모두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후 1990년까지 30년간이나 시험 문제 수, 시험 교과, 시험의 과락 기준, 합격 기준, 합격률, 과락 기준 모두가 중구난방으로 시행되었다. 문제가 표준화되어있지 않고 시험 방침도 제각각이니 합격률도 널뛰기였다. 1995년 국시 합격률은 64.8%로 재시험이 치러지는 초유의 사태도 있었다.
현재는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등 다양한 장소에서 국가고시 시험을 치를 수 있으나 겨우 1990년까지도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은 서울에 상경해 시험을 보아야 했다. 보안상의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다. 문제 출제의 원칙과 교육목표 없이 문제은행식 출제만 고집하니 당연히 보안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91년이 되어서야 서울 이외에 부산, 광주에 고사장이 마련된다. 

 

1997년 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설립
340문제 → 550문제 
450문제

 

중구난방의 개선을 거치다 1992년 비로소 민간 평가기관인 의사국가고시시험원이 설립되었다. 평가의 원칙을 바로 세워 비로소 문제의 질이 상향되기 시작했으며, 이 점을 인정받아 의사국가고시시험원은 1997년 의사 국가시험 외에도 한의사, 치과의사, 약사, 간호사 등 22종의 보건의료인 국가고시 시험 출제를 모두 위임받게 된다. 이 때 ‘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으로 이름도 변경되게 된다. 이것이 현재의 국시원의 시초다.
이후 문제 수와 시험시간도 급변하게 되는데, 1996년 340개 문항 400분 시험에서 꾸준히 시험문제가 늘어나 2002년에는 550문항 715분 시험이 된다. 약 12시간 정도다. 이후 문제수는 점차 줄어들어 2013년 450문제에서 400문제로 축소된 것이 현재까지 시행되었던 국가고시 마지막 문제 수 변화다.

 

2일간 시행되던 시험 1일로

급한 의견 수렴으로 파행

 

국시원은 2016년 7월, 당초 400개였던 문제를 360개로 축소함과 동시에 목요일, 금요일 시험이었던 것을 금요일, 토요일 시험으로 변경한다는 것을 고지하였다. 감독에 필요한 시도 공무원들의 업무공백 문제가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여기까지는 미리 공지된 사항이라 문제가 없었지만 토요일 모임을 가지는 일부 종교인들의 민원이 발생하자 국시원은 9월 시험일을 1일로 축소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문제는 이것이 시험일 고지에서 불과 2개월밖에 경과하지 않았으며 해당 시험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국시원은 ▲토요일 시험 반대 민원, ▲시도를 이동해 시험을 보게 되는 대학 응시자들의 1일 시험 요구, ▲출제위원들의 진료 공백, ▲감독하는 시도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응시수수료 인하가 가능하다는 것을 덧붙였지만 응시수수료 인하폭은 필기시험료 30만 2천원에서 28만 7천원으로 1만 5천원에 불과했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시험 당사자들의 의견 수렴이 없었고, 의대협 등 학생들의 반발이 일자 단 11일간의 의견수렴 과정만을 제시한 것이 문제였다. 투표에 참여한 1,752명의 학생들 중 1,103명(63%)의 학생이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투표 당시에는 응시 수수료 인하폭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에 15,000원의 차액에 대해 알았다면 반대표는 더욱 많아졌을 것으로 보인다.

 

조금씩 발전하는 국가고시 시대에 역행하는 일 없어야

 

원칙 없는 중구난방의 출제와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국가고시에서 탈피하게 된 것은 고작 2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30년 전만 해도 전국의 학생들이 서울로 상경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으며, 표준화되지 않은 문제로 인한 낙방의 고비 또한 마셔야 했다.
보건의료의 핵심인 의사를 선발하는 과정은 단순히 의학도들의 편익뿐만이 아니라 전국민의 건강과도 연결되는 문제다. 수십 년간 이뤄온 국가고시 질의 발전에는 수많은 선배 의사들의 후배를 위한 배려와 미래에 대한 고민,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시험일이 1일이냐, 2일이냐 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으나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할 것이며, 시험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 국시 일정을 결정하는 과정도 합리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준형 기자/가천
<bestofzone@gmail.com>

 

※ 국시원의 역사와 관련한 부분은 의학교육논단 2013년 15호에 수록된 백상호 교수님의 ‘의사면허 필기시험 제도의 성과와 과제’(Major Reforms and Issues of the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 Systems in Korea)의 내용을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