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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의 가면을 쓴 ‘액터스,’ 의사가 없는 의학드라마

 

 

 

“브이텍이예요!”
의료계에 종사하지 않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의학 용어 중 하나가 아닐까. 이는 2007년 12월 MBC에서 방영된 TV 드라마 ‘뉴하트’의 명대사이다. ‘해바라기’부터 ‘하얀거탑’, 오늘의 ‘닥터스’까지 우리나라에서 의학드라마는 나올 때마다 어느 정도의 흥행을 보장하는 가장 핫한 주제이다. 얼마 전 SBS에서 종영한 ‘닥터스’도 시청률 20%를 꾸준히 넘기며 국민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의학드라마의 이런 뜨거운 인기는 의학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의사가 비춰지는 이미지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얼마 전 순항하던 ‘닥터스’에 작은 사고(?)가 하나 생겼다. 여자 주인공 유혜정 역을 맡은 박신혜가 네일아트를 한 맨손으로 환자를 촉진하는 장면이 잡힌 것이다. 클로즈업 된 박신혜의 손톱은 네일아트가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손가락 끝을 훨씬 넘는 길이로 길러져 있었다.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리얼리티가 떨어져 극 몰입에 방해 된다’ ‘아무리 드라마지만 의사로서 너무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드라마 측은 캐릭터 상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를 화려한 치장으로 가리려는 설정으로 사전 협의된 내용이었다고 주장했고, 박신혜는 개인 SNS에 “저의 콤플렉스를 감추고자 선택한 결정이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굴 만큼 보시는 분들 눈에 불편하게 보였다면 지워야죠. 지우면 됩니다.”라는 글을 남겨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제작진과 배우의 이러한 반응은 네티즌 수사대를 특별 소집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논란 직후 역대 의학드라마 여자 주인공들의 네일아트 여부를 하나하나 캡처하여 조사한 글이 올라왔다. 총 17개 드라마의 21개 배역 중 네일아트를 한 의사는 박신혜를 포함하여 2명에 불과했다. 다른 한 명(‘뷰티풀마인드’ 박세영)은 네일아트를 한 장면이 잡혔지만 진료를 하거나 수술에 참여하는 장면이 없었고 배역 상 수술을 하는 의사가 아니었다. 이뿐만 아니라 초커를 비롯한 화려한 액세서리, 풀어헤친 가운 안에 늘어진 리본, 하이힐 등 극중 여의사들의 과할 수 있는 패션들도 뒤따라 지적당했다. 특히 화려한 옷을 입을 때마다 약속한 듯이 가운을 절대 잠그지 않는 극중 의사들은 시청자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병원에서 의사들의 손톱 길이나 네일아트에 대해 제재를 가하지는 않지만 여러 이유에서 의사들은 당연하게 손톱을 짧고 무늬 없이 유지하고 있다. 우리 몸에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세균이 살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손톱 밑이다. 손톱을 길게 놔두면 환자들과 직접 접촉하고 여러 도구들을 이용하면서 이러한 균에 의한 감염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거기에다 네일아트까지 한다면 손을 소독하거나 처치를 할 때 네일아트가 벗겨져 환자의 몸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액세서리를 금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원내감염(nosocomial infection)이란 병원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질병의 감염을 뜻한다. 병원에 입원해있거나 방문하는 환자들의 상당수는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이다. 얼마 전 서울 한 병원에서 약 2년간 C형 간염 양성 환자가 500명 이상 발생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메르스(MERS) 사태에서 배웠듯이 원내감염은 세계적으로 관리가 필요한 심각한 문제이고,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청결 관리가 최우선시되어야 한다.
물론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모습이 실제 병원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닥터스’에 대해서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뉴스와 다큐멘터리 속 진짜 의사보다 작품 속 가짜 의사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응급실에 가보면 어딘가 구석에서 브이텍을 외치고 있을 것만 같고, 처음 의대에 입학하면 ‘흉부외과야말로 진정으로 소명을 가진 의사의 길일까?’라고 다들 한 번씩 생각하는 것이다. 드라마의 작품성은 극에 대해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정도에 달려있다. 드라마 내에서 의사를 그릴 때 캐릭터의 개성을 유지하는 것은 좋지만,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을 해치는 정도의 설정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의학드라마가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며 그를 통해 환자들이 의사들에 대해 안 좋은 선입견을 버리게 되는 창이 되길 기대해본다.

 

 

 

이치원 기자/중앙
<1inamillion_@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