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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사이, 글 쓰는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페북 스타’, ‘글 쓰는 의사’ 그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붙는다. 응급의학과 전문의인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응급실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팩션(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재구성한 작품)에세이를 얼마 전에 펴냈다. 그의 책 《만약은 없다》는 출간 한 달여 만에 5쇄를 찍었다. 그는 현재 충남 소방본부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중이며 작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Q. 얼마 전에 책을 내서 정신없을 것 같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A. 책이 나온 지 50일 정도 되었다. 얼마 전에는 북 콘서트 형식으로 독자들과의 만남이 있었고 다양한 매체를 통한 인터뷰 및 행사들이 잡혀있다. 책을 알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취지에서 한 주에 한 번씩 스토리 펀딩도 하고 있다.  

Q. 글을 언제부터 쓰게 되었는가? 글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A. 원래 문과를 지망했다. 글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나 감정들이 좋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쓰고 문예지 활동을 했고 의대에 온 이후로도 꾸준히 문학회 활동을 했다. 일상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나 사소한 것들을 적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노력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하는 것이 좋았고 쓰고 나서 보는 것이 좋았다. 더불어 글을 쓰다보면 많이 읽게 되었고 많이 읽다 보니 많이 쓰게 되었다. 특별한 계기랄 것은 없었지만 언제부턴가 계속 글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Q. 의사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은가?
A. 의사는 일반인이 경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는 직업이다. “의사 한 명의 경험은 일반인 세 배 경험에 준한다. 그리고 이것을 겪어내지 못하면 의사가 되지 못한다” 는 말이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이러한 경험들을 놓치지 않고 잊지 않게 해주는 도구인 것 같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문학적으로 각색되면 어떤 스토리보다 더 리얼하면서도 흥미롭다. 그러한 글을 쓰면서 느끼는 문학적인 쾌감을 위해서도 글을 쓴 것 같다.

Q. 책 제목 ‘만약은 없다’는 어떻게 지은 것인가?
A. 이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처음 실었던 원고의 제목 중에 ‘만약은 없다’ 라는 글이 있었다. 그 글에서는 어떤 할머니가 우연에 우연들이 겹쳐 결국은 돌아가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수술방도 없었고, 감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바이탈(vital sign: 활력 징후)도 잡히지 않았다. 만약이 하나라도 어긋났더라면 환자는 살 수 있었는데 당시 상황을 자책하다가 생각을 갈무리해 쓴 단편이었다.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항상 최선을 다해서 만약이 없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이 이 책의 주제를 관통한다고 생각해서 만약이 없다를 제목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Q. 책 안에서 ‘최선을 다한다’라는 말이 꽤 자주 등장한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한다 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A. 이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느냐 다하지 않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현재 상황, 의학적 지식 등 내가 가진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죽었으면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정말 죄책감이 든다.
예를 들어, ‘어레스트(arrest: 심정지)가 나서 콜(call: 호출)이 났을 때 가봤어야 했는데’ 라든지, 내가 직접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인데 이를 간과했을 경우에는 정말 죄책감이 든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의사로서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Q. 본인은 응급의학과를 선택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내가 응급의학과를 선택할 때는 정말 상황이 좋지 않았다. 2010년도에 1년차로 들어갔는데 그 당시에는 흉부외과 급이었다. 고려대학교에는 3개 병원이 있는데 3개 병원을 다 합쳐서 레지던트가 5명이었다. 거의 1명이 1개 병원을 커버하는 셈이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레지던트와 펠로우, 과장님까지도 24시간씩 번갈아가면서 섰다. 스스로가 호랑이굴로 들어간 셈이다. 때로는 힘들기도 했지만 응급실일이 재미있었던 것 같다.

Q. 후회하지는 않는가?
A. 후회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면서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자아가 확실해진 것 같다. 사람들이 자꾸 물어봐줘서 대답하다 보니 오히려 확실해지는 것 같다. 응급의학과의가 생각보다 잡학에 가까운 다양한 일들을 많이 한다. 손에 낀 낚싯줄을 빼주기도 하고 귀의 면봉을 빼주는 일 등도 해 보았는데 재미있었다.

Q. 후배들에게 응급의학과를 추천하겠는가?
A. 요즘에는 경쟁도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말리지는 않겠지만 한 번 다시 생각해보라고는 하겠다.(웃음)

Q. 응급의학과 의사로서의 삶이 가장 보람있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인가?
A. 응급실로 오는 사람 중에서 살아서 돌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2%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다. 열심히 해서 건강하게 걸어 나가시는 분을 보면 의사로서 보람을 느낀다.
또 이물 흡인으로 응급실로 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코나 귀나 입 등에 온갖 다양한 종류의 이물이 들어가서 그것만 빼주면 되는데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귀에서 바퀴 벌레, 귀뚜라미, 콩벌레 등 온갖 종류의 벌레를 다 빼본 것 같다. 한번은 귀뚜라미가 귀에 들어가서 귀에 소독약을 발라서 귀뚜라미를 질식시켜서 빼본 적도 있다. 다리 하나가 남아서 좀 난감했는데 환자에게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Q.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는가?
A. 환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하고 기억에 남는다. 책의 글 중에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부쳐’ 라는 글이 있다. 보통은 일을 겪고 나서 묵혀 놓고 글을 쓰기도 하는데 그 일은 겪고 나서 너무 힘들어서 그 일을 그대로 기록하려고 다음 날 바로 울면서 글을 썼다.
보통은 환자나 보호자들이 한 말들을 조금 각색해서 쓰는데 이번에는 보호자가 한 말이 비수처럼 꿰뚫어 잊히지가 않아서 정말 글로 그대로 옮기기만 했다. 환자의 남편이 아내를 마지막으로 보내기 전에 “어서 눈을 감고 이 저주받은 병을 버리라”는 말이 시적이면서도 너무 슬펐다.  

Q.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보고 익숙해진다고 해도 삶과 죽음을 다루는 일이 무섭지는 않은가?
A. 처음에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실습하면서도 누가 어레스트를 봤다고 하면 화제가 된다. 실제로 의사가 되어서 일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담담해지는 것 같다. 다른 의사 동료들도 담담하게 잘 하는 것 같다. 점차 익숙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괜찮다.

Q. 무뎌지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편하기는 하지만 좋은 것일까?
A. 그래서 무뎌지지 않기 위해 글을 쓴 것이다. 환자들의 감정적인 면 또한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이성과 감성을 모두 지키고자 하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Q.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중간 지점은 없을까?
A. 기본적으로 의사들은 냉철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의사는 보호자나 환자 앞에서는 울면 안 된다. 한편 가장 간과하기 쉬운 일이지만 한번만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의사는 누구보다도 환자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때로는 냉철해야 한다. 그것만 신경 써도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삶과 죽음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환자를 조금이라도 죽음에서부터 삶으로 붙들어 오는 것이 의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병원에 있다 보면 죽음은 참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로서는 죽음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 이러한 의사로서의 냉철한 경계와 작가로서의 인문학적 경계에서 평생을 고민하는 것이 의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Q. 글 전반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본인이 원래 그런 성격인가 아니면 의사를 하면서 그런 성격이 된 것 같은가?  
A. 원래 좀 착했다(웃음). 옛날부터 글을 쓰다 보니 타인의 입장에서 자주 생각하려는 편이었다. 연민이라는 것이 딱히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더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Q. 본인이 쓴 책에 대해 주변 동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옆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이 그 일들을 책으로 냈으니 웃기고 어이없어 하기는 하다. 생각보다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진짜로 글을 열심히 써서 출판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없는 부분을 하는 것이니 높이 사주시기는 하는 것 같기는 하다.

Q. 의사로서 일을 하면서 주로 언제 글을 썼나?
A. 근무 중에도 중간 중간 메모를 하기는 했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는 식이었는데 쉴 때 잠깐 자고 일어나서 글을 썼다. 대부분의 글은 공보의(공중보건의) 때 다시 갈아엎고 많이 썼다.

Q. 본인은 나중에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가? 본인이 원하는 이상적인 의사상이 있나?
A.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생각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사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A. 일단 가능성을 많이 열어 두고 있다. 내년 4월이면 복무 완료이다. 진료실로 돌아가고 싶지만 작가로서의 커리어에 관련된 다양한 제의들을 많이 받고 있다. 스스로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다른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작가 관련 일을 열심히 하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정창희 기자/이화
<patty903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