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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생각은 지배당하고 있다

생각하는 바에 관해서는 자유롭지 못한 인간
내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은?

깨져버린 달걀의 우리 사회

 콜럼버스는 달걀을 세웠다. 비록 달걀의 밑 부분이 깨지긴 했지만 말이다. 혹자는 그것을 발상의 전환, 획기적 아이디어로 추켜세운다. 하지만 홍세화씨는 말한다. 그것은 다만 자연의 섭리에 맞선 인위적인 폭력이었다고. 그 폭력으로 인해 피식민지 사람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시작되었다고. 그리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 모양이라고.
 깨진 부분에 속한 사람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한 채 하루하루를 고통과 불행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고민할 시간도 불만할 여력도 없다. 그보다 조금 위에 있는 중산층 사람들은 자신도 깨진 부분으로 내려가지 않을까 항상 불안해한다. 그들에게 물적 소유는 최대의 관심사이고 자본 앞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그 위를 차지하는 사람은 우리 사회의 20%뿐이지만, 그들은 우리 사회의 80%를 지배하고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왜 민주주의 사회에서 80%의 사람이 20%의 사람에게 지배당하고 있는가? 어떻게 민주주의 하에서 20%가 80%를 소유하는 일이 일어났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당신의 생각은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트릭스, 그것은 현실세계다

 몇 년 전 이랜드 어머니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 홍세화씨는 직접 질문을 던졌다. 그 동안 어느 정당에 표를 던져왔느냐. 그들의 시위를 도와주던 민주 노총을 비롯한 진보 정당에 표를 던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지지한 당은 지금 그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나라당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 80%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문제에 직면하기 전까지 20%를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에 무엇을 생각하는가? ‘왜 파업을 일으켰을까?’라고 생각하는가. 혹은 ‘파업=무질서=불안’이라는 공식에 의거해 ‘웬 파업이야! 괜히 불편하겠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한겨례 신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운동권 신문, 편파적 신문 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가. 그렇다면 그 생각은 당신이 직접 한겨례 신문을 구독해 보고 스스로 내린 판단인가.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칸트가 지적했듯이 인간은 ‘생각하는 바에 관해서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생각해 보라. 당신의 생각은 어떻게 당신의 생각이 되었는가? 폭넓은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직접 견문, 혹은 성찰. 이 경로들을 통하여 형성된 것인가?



제도교육과 미디어, 그리고 ‘왜?’의 죽음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하는가, 존치되어야 하는가. 다양한 의견이 있었고 활발한 토론이 있어 왔다. 하지만 답은 없다. 인문 사회과학의 모든 문제가 그렇다. 생각과 논리를 요구하는 정답이 없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해 이러한 문제를 낸다. ‘다음 나라들 중에 실질적으로 사형제가 폐지된 나라는?’ 이 문제를 맞힌 학생은 사형제에 대해 얼마나 생각을 해봤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미디어는 많은 지식을 준다. 어떤 책을 읽지 않아도 그 내용을 알 것 같이 해 주고, 어떤 대상을 조사해 보지 않아도 그에 대한 정보를 준다. 그 덕에 우리는 많이 유식한 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실제로 무지하다는 자각은 물론 무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 그 문제는 둘째 치고 그렇다면 과연 그 정보들을 필터링하고 가공한 자를 믿을 수는 있을까?
 아기들이 ‘엄마’라는 단어 다음으로 많이 쓰는 단어는 ‘왜?’이다. 아기들은 모든 게 궁금할 수밖에 없다. 하늘은 왜 파랗고 비는 왜 오는가, 손가락은 왜 다섯 개인가. 그러나 우리가 들어온 대답은 이러한 것들이었다. “그건 원래 그런 거야.”, “몰라도 돼.”, “크면 다 알아.” 그리고 그 아기들이 사회에 나가 비정상적인 현실과 마주했을 때, ‘왜?’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왜 내 생각이 되었는가?

 그 동안 머릿속에서 아무 의심 없이 머무르던 생각을 깨끗이 지우기란 불가능 하다. 그 생각들을 뒤엎고 새로운 생각들로 덮어 쓰는 것 또한 한계가 있다. 생각이 많이 바뀌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홍세화 씨는 항상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것을 요구한다. ‘내 생각은 왜 내 생각이 되었는가?’ 어떤 존재에 대한 판단을 했다면 무슨 근거로 그렇게 한 것인가, 그 근거는 옳은 것인가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물어야 한다.
 매트릭스의 세계, 하루 빨리 모피어스를 만나야 하고 빨간 약을 선택해야 한다.

※ 본 기사는 홍세화 씨의 ‘생각의 좌표’를 읽고, ‘2010보건의료진보포럼’에서 홍세화씨의 강연 ‘생각의 좌표-내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을 듣고 작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

 

'74호(2010.04.19.)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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