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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74호(2010.04.19.)/오피니언 2010. 4. 30. 10:20 Posted by mednews

 

김예슬을 지지한다

 시계 바늘은 벌써 새벽 세 시를 가르키고 있었습니다. 3월 12일 산부인과 시험 날.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 뜬눈으로 지샜던 수많은 밤들과 별다를 것도 없는 날이었지만 그날은 왜 그리도 힘들었을까요. 내려앉는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뜨며,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눈을 좀 붙여야 하나... 아니야, 공부해야지.’
 그런데, 의과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누구나 한 번 쯤은 하게 되는 이 고민의 근원을 생각해보면, 슬프기가 짝이 없습니다. 바깥에서 본다면 한 사람의 환자라도 더 살리기 위해 열심히 정진하는 예비 의료인들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이 그렇지 못함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요. 시험 전날의 그 밤은,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서로가 서로를 밟고 일어서기 위한 각축장일 뿐입니다.

 그 이틀 전, 고려대학교 김예슬양이 교정에 대자보 한 장을 남기고 자퇴했습니다. 그녀는 경쟁만을 부추기는 대학과 사회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대학 교정에 붙은 한 장의 대자보는 적지 않은 울림을 일으켰지요. 그 파장만으로도 김예슬씨의 이야기는 그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20대, 모든 대학생의 것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입학과 동시에 ‘의사’로서의 미래가 보장되는 우리에게는 그들의 고민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의과대학도 역시 목적 없이 달리는 경주마들의 경연장의 축소판이 아닐까요. 바깥의 친구들이 수만명과 경쟁하며 ‘스펙’을 쌓는다면, 의과대학에서는 50명 100명의 동기 사이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학교마다 분위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서로 도와주고 챙겨주는 분위기의 학교도 있고, 족보 때문에 서로 싸우고 얼굴을 붉히는 학교도 있지요. 하지만 그 밑에 깔린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의사가 되겠다는 철학은 없이, 유급과 재시를 피하고 성적표에 찍히는 알파벳을 결정하기 위해 바둥댈 뿐입니다.
 
 김예슬씨의 결정에 대해 소설가 공지영씨는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386세대의 방법인 대자보를 택한 점은 아쉽다. 지금의 20대 만의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김예슬 선언’이후 많은 대학생들이 인터넷 까페 등에 모여 지지를 보내는 한 편 새로운 행동을 취할 방법을 강구중입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 1%’라고 자부하는 우리 의대생들은 어떤가요. 방법론에 접근하기는커녕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관심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의사’로서의 길이 보장된다고 해서, ‘88만원 세대’로 대변되는 우리 세대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로서, 같은 대학생으로서의 책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의 고민과 우리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더욱 그렇지요. 게다가 지금과 같은 분위기로 의료 민영화와 원격 진료 등이 진행된다면 졸업 후 우리가 처할 의료환경도 엄청난 경쟁의 장이 될 것이 뻔해 보입니다.

 한 달음에 현실에서 이상으로 달리기는 힘이 듭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김예슬씨에게 지지를 보내는 일 뿐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드디어 기성세대에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이 때, 그저 방관자로만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편집장 김민재
<edito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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