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은 요소가 아닌 배치에 있다
새로움은 요소가 아닌 배치에 있다.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 모던 예술가들이 한 말입니다. 조물주가 아닌 이상에야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존재물을 탄생시키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과학의 발전과 예술의 번영은 모두 요소의 생산이 아닌 그 요소들의 재배치의 결과입니다. 화학에서는 자연에 존재하는 각종 원자들을 이용하여 더 복잡한 구조의 화합물을 생산해냅니다. 같은 요소들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조합 비율과 순서에 따라 다양한 화합물이 나옵니다. 같은 탄소(C)만 이용하더라도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값싼 흑연이 되기도 하고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합니다. 꿈의 나노 물질이라 불리며 영국 가임(Andre Geim)과 노보셀로프(Konstantin Novoselov) 연구팀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준 그래핀은 심지어 흑연의 일부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악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요소는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의 7개 음과 샵(#), 플랫(♭) 뿐입니다. 몇 안 되는 이 요소들을 이용하여 베토벤은 그 유명한‘운명 교향곡’을 작곡한 것입니다.
딱딱하기 만한 의학을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배치를 할 수 있겠냐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두 발은 땅에 단단히 고정시켜놓되 두 눈은 언제나 저 높은 하늘을 바라보라. 의대에 온 이상 의학 공부에 소홀함은 없게 하되, 이리저리 다른 것들에도 관심을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의학 하나만 가지고는 힘듭니다. 의학의 테두리 안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기가 쉬운 일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학의 풍미를 돋구어줄 색다른 요소입니다. 의학과 함께할만한 요소들은 많습니다. IT, 공학을 비롯하여 경영학, 경제학과 같은 학문들은 의학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기에 적합한 요소들입니다.
다른 많은 요소들과 함께 의학을 놓고 본다면 이전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경우의 수가 보일 것입니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은 “좋은 아이디어를 얻는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의학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다른 학문들과 함께라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의학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교과서 암기가 아닌 창조성입니다. 우리나라 의료계가 처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도 창조성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사용해왔던 구시대적인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발상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한국 의료계의 치즈는 오래전부터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일부러 치즈를 옮기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찰나의 번영에 취해 그 추세를 읽지 못한 것입니다.
필요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창고 한 구석에 치워 둔 운동화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두렵기도 하겠지만 새로운 치즈를 찾아 달려야 할 때입니다. 방법은 요소들의 새로운 배치입니다. 그것이 변화를 일으킵니다.
변화(change)는 아무도 모르게 기회(chance)를 낚는 법입니다.
윤명기 편집장
<medschooledit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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