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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가 ‘장마당’을 세울 때까지

 

최근 닥터브릿지라는 커뮤니티가 이슈가 되고 있다. 오픈 5일만에 회원 1,000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인 듯 하지만, 가장 이슈가 되는 서비스이자 창립처 측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최초의, 전공의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수련병원 평가사이트’라는 점이다.


다른 한 편에서는 전공의를 둘러싼 천태만상이 있다. 과도한 업무에 내과 전공의들이 ‘환자를 버린 의사놈들’이라는 무지한 비난까지 감수하며 전국 병원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파업했고, 전공의 당직비를 정상화하라는 지시에 기본급을 낮춰 총액을 맞추는 시트콤 같은 일도 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전공의간 폭행이 벌어지고, 병원의 업무가 바쁘다는 이유로 가해자를 옹호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이번 닥터브릿지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으면 북한의 현실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온다. 북한 주민들은 고난의 행군 이래 정부가 자신들의 생활을 책임져 줄 전망이 보이지 않자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섰다. 그것이 바로 현재 북한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장마당’이다. 사회주의 경제에서 사유물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어 북한 내에서는 태생적으로 불법이지만, 결국 북한은 2003년 이를 합법화했다. 자신들 스스로 주민들을 먹여살릴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북의 주민들에게 요구하는 자세는 너희들이 힘든 것은 알겠지만, 당과 수령을 위해 충성하는 주체사상을 몸에 다시 새겨서 해야 할 일을 다 해내라는 것이다. 물론 해내지 못하면 당에 충성하지 않는, 주체사상을 배신한 역적이 된다.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과 수령’을 ‘국민의 생명’으로, ‘주체사상’을 ‘히포크라테스 선서’ 정도로만 바꿔주면 충분하다.


우리나라는 의료정책을 국가에서 통제하는 나라다. 공산주의 국가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처럼 자비로 수학하는 의료 교육과정을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비슷한 수준의 공공의료 통제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종사하는 의사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업무를 수행하는 전공의, 수련의들의 처우에 대해서도 적절히 개입해 줄 책무가 있다.


물론 지금도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 제한, 당직비 현실화 등 전공의들을 위한 여러가지 법안들이 존재하지만 저수가로 수익을 유지해야 하는 병원의 현실으로는 이를 지켜주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보면 병원도 피해자임을 보면 정부는 피해자 둘을 만들어 둘이 서로의 탓을 하며 싸우게 만드는 가장 치졸한 방식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 건강은 국가를 위해 가장 먼저 지켜줘야 하는 목적이지, 의사들에게 죄책감을 부여해 마음대로 쥐고 흔들 수 있는 목줄이 아니다. 사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조건이나 보수없이 후학들에게 의학을 가르치겠다는 내용은 있어도, 조건이나 보수없이 책임감만으로도 행복하게 일하겠다는 언급은 없다. 물론 전공의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어떤 집단에 확실히 속하지 못하면 양쪽 모두에게 배척받게 된다. 전공의들이 그렇다. 학생도, 전문의도 아닌 입장에서 교육과 합당한 보상 어느 한 쪽도 보장받지 못하는 그들이 만들어낸 ‘장마당’이 큰 파문이 되어 북의 그것이 그랬던 것처럼 큰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인지 기대가 된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될 때까지 정말 아무런 방책이 없었을까 하는 씁쓸함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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