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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갑골의 형태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종속이론’이라고 하면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느끼는 우리들. 호염기성구보다 호중성구가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실물 무역량보다 금융자본 이동양이 천 배 가까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무지한 우리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낯설어 하고, 모르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그래서 올해 의대생신문에서는‘의학과 인문사회학 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6권의 책을 선정해 연구모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그 네 번째 시간으로‘국제적 또라이’였던 고집스런 의학자이자 철학자인 빌헬름 라이히의 과학적 자서전을 탐독해보겠습니다.


“나는 섹스가 좋아!”

 상상해봅시다. 강의실에서 옆자리에 앉은 동기와 정신없이 수다를 떨다가 너무 큰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을 때를 말입니다. 아마도 주변의 공기가 어색해질 겁니다. 이어지는‘쟤 뭐냐?’는 식의 시선. 별 생각 없이 큰 소리로 말했다가 낭패를 본 자신은 한 없이 소심해져 자리를 피해 매점을 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문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통계상으로 대한민국 이 십 대는 네 명 중 두세 명 이 월 2회 이상 그것을 합니다.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유희를 즐기는 것에 대해 단지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좀 이상한 일 아닌가요? 의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건강한 일상을 불건 전하게 여기도록 만드는 사회적 장치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도‘나는 섹스가 좋아!’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난히 책을 다 읽어 온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죠. 이유를 들어보니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감히‘오.르.가.즘.’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책을 꺼내들 용기가나지않아서그랬다고들하더군요. 또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섹스가 좋아’라며 떠드는 것에 대해 스스로 수치를 느끼거나, <오르가즘의 기능>이라는 제목 때문에 대중교통 안에서 마음 놓고 책을 보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라이히가 이렇게 대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성억압과 오르가즘 불안의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게 그렇게 문제냐?’고 충분히 물어보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주 문제가 많습니다.

성억압이 빚어내는 사회적 질병 : 파시즘

 성억압과 오르가즘 불안이 어떤 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한국의 일반적인 가족이 있습니다. 이런 권위주의적인 가족관계에서 아이의 성적 행동이나 관심은 금기시 됩니다. 동시에 모성은 신성시되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가족 내 여성은 쾌락을 느끼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되고, 아동은 성이라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성은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되죠. 이렇게 성적 욕구를 억압하는 기전은 권위주의 사회가 일궈 놓은‘도덕과 윤리’를 내면화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기존의 가치관에 대해서 도전하지도 않게 됩니다. 라이히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 개인이‘자유’를 택하는 대신 '국가'나 '민족'이란 권위에 자신을 내맡기 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연단에 선 히틀러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있는 독일인들



 이전까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의 하부구조가 인격을 형성한다고 설명하는 데서 그쳤습니다. 하지만 라이히는 사회가 성격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형성된 성격은 다시 사회 이데올로기로 재생산되고, 이데올로기는 다시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는 순환을 주장합니다. 결국 이런 순환이 이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생동하는 건강한 삶을 부정하게 되
고 자기 자신을 다시 억압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만 없어지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우리 사회가 점차 파시즘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파시즘이라는 허위관념을 주입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몸과 마음에도 이명박 정부의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단단한 틀이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4대강에 대운하를 파는 것과 똑같이 우리들은 우리들의 마음에 필요 이상의 물질적 성공에 대한 욕망과, 신의에 대한 불신과, 남을 밟고 올라서는 경쟁을 아름답게 여기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대운하를 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스스로 우리를 옥죄는 가치들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지도층이 모두 물갈이 된다고 해도 우리 안에 남아있는 파시
즘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남은 대운하는 다시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또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대운하를 파는 일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이히가 줄기차게‘그들에게 오르가즘을 허하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조차 죄악시되는 사회에서 생성된 파시즘이 죄없는 목숨을 숱하게 앗아가는 현장에서 자란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그 참혹을 본 라이히는 자신이 마땅히 가져야할 자연스러움을 스스로 부정하는 이들로 이루어진 사회에 대해서 이
렇게 이야기합니다.

 “만일 어떤 사회질서가 결정적인 질문들을 제기하는 것, 관례적이지 않은 답을 찾는 것, 그리고 그런 질문들과 대답들에 대해 논쟁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 사회질서는 민주주의라고 불릴 수 없다. 그런 경우 그 사회질서는 독재의 후보자들이 제도에 가하는 아주 작은 공격에도 파괴된다.”

의과대학이라는 권위주의 사회와 성억압

 20세기 초, 예과 2학년생인 라이히는 성학 세미나를 조직하고 이후 평생 동안 애증의 대상이 되는 프로이트를 처음으로 찾아가 자문을 구합니다. 한 세기가 훌쩍 지난 한국 땅에서 같은 의대생인 우리들은 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껄끄러워합니다. 설령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오히려 생식기에 대해서 전혀 배우지 않는 학생들보다 더욱 왜곡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쉽게 음담패설을 하거나, 여성비하적인 발언을 공공연히 하게 되죠. 우리는 여기에 대해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의대생이 가진 성왜곡의 기저에는 의대 사회에 엄격한 권위주의가 잔존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의대라는 권위적인 사회 역시 권위의 유지를 위해 계율을 부여합니다. 우리는 의대생이니깐 머리 기르지 마라. 슬리퍼 신지 마라. 반바지 입지마라 등등.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권위주의 사회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계율에 복종합니다. 이에 억압된 학생들은 체제의 규율을 내면화하면서 틀을 만들게 됩니다. 틀이 생성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가치보다는‘의과대학’이라는 성전이 가진 권위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에 열중합니다‘. 얌마. 나 의대생이야.’이런식으로말이죠.

모두 하고 있습니까?

 파시즘과 같은 사회적 질병을 건강한 성생활로 치유할 수 있다는 라이히의 이론은 일면 황당해 보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오르가즘 에너지인 오르곤에 둘러싸여 있다고 믿었던 라이히는 말년에 이르러 오르곤을 이용하면 날씨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적으로 망명을 한 미국에서도 그는 수상한 짓을 하고 있다고 간주되어 당국의 감시를 받았고, 결국 사소한 일로 감옥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실제로 라이히의 일생은 <W. R: 유기체의 신비>라는 전위적인 영화로 재구성 되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사회는‘또라이’라 불렸던 선각자의 죽음을 바탕으로 진보를 거듭해왔습니다. 라이히가 믿었던‘자연스러운 성’이란‘사랑’과 ‘평화’임을 이제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럽, 소련, 미국 할 것 없이 체제는 라이히를 풍기문란사범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죄가 있다면 인간이 자연스러운 삶을 되찾아 체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과 가치를 믿을 수 있는 통로를 개방한 죄일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스스로의 가능성과 가치 대신 다른 것에 의존하고 있다면 저는 기타노 타케시의 영화 제목을 빌려서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모두 하고 있습니까?”


■ 포 럼 장 소 : 2009년 8월 9일 신촌 프린스턴스퀘어
■ 포럼참가자 : 김민재, 박준하, 이현석, 이예나
■ 정 리 : 이현석 기자/영남 <vandalite@ne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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