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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91호(2013.03.06)/오피니언 2013. 3. 18. 21:52 Posted by mednews

편집장의 자격, PK의 자격 

 

자격(資格).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 혹은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이르는 말입니다. 2013년 저는 두 개의 자격 - 의대생 신문사의 편집장과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의 PK -을 갖게 되었습니다.

편집장 임기는 1월1일부터입니다. 1,2월은 신문사일로 상당히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각종 거래처와 기자, 신문 컨텐츠 등등 안팎의 살림을 마련하느라 분주했죠. 지난주부터는 PK실습이 시작됐습니다. 어서와 병원은 처음이지? 라는 스텝선생님들의 눈초리와 학생의사보다 진짜의사를 좋아하는 환자들 앞에서 한층 과묵해지는 PK는 오늘도 눈칫밥을 배부르게 먹습니다.

이 와중에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과연 자격이 있을까? 내가 편집장 명함과 학생의사 명찰을 받을만한 사람인가? 편집장 맡기 직전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업무량도 그렇거니와, 신문사 식구들을 챙겨 신문 만드는 작업을 진심으로 유익하고 즐겁게 만드는 아우라가 내게 있을지 걱정이었죠.

PK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학생‘의사’라니! 어떤 선배의사는 이렇게도 표현하시더군요. 의대생은 셜록 홈즈의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이지만, 인턴부터는 그 자신이 셜록 홈즈가 되어야 한다고. (아마도)인턴제 폐지 첫 시행세대, 09학번인 저로써는 이 말이 진하게 와 닿았습니다. 1년 반의 실습은 직접 환자를 대면하여 질병을 추리하는 연습의 기간, 셜록으로서의 자격을 가늠하는 시간이 되겠죠.

한동안 고민하던 차, 서점에 들렀는데 우연히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자서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세계 5대 발레단 중 하나인 슈투트가르트의 45세 현역 수석 단원이고 한국에선 ‘강수진의 발’ 사진으로도 유명한 세기의 발레리나가, 발레리나로서의 자격을 논한 대목.

‘누구든 최고의 발레리나가 될 자격이 충분해서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자격 이전에 먼저 자리를 맡는 것이 보통이다. 감사함과 겸손함으로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발레리나는 자신이 맡은 역에 빠져들어 혼신을 다해 자신을 불태우고 손끝하나부터 발끝 연기까지 완벽하게 해내고 무대를 내려올 때 비로소 자격을 얻는 것이다.
...누군가 ‘나는 자격이 충분하니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많은 사람에게 무한한 고통을 주게 될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으로 무대에 오른 적이 없다. 무슨 작품이든지 심지어 백 번 이상 이미 공연했던 작품도 다시 무대에 오르기 전 150%이상의 노력을 쏟아붓는다...그렇게 노력을 해도 관객에게 100% 만족을 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나는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낸다.‘

자격을 얻는 건, ‘무대에 내려오고 난 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약간의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다소 굳어있던 가슴을 뜨겁게 데우는 구절. 조급한 미망(迷妄)을 떨치고 겸손과 감사함으로 편집장, PK라는 무대에 올라 그 역할에 온 힘을 쏟는 것이 지금 당장 내가 할 일 이라는 걸 알게됐습니다. 완벽한 편집장, 완벽한 PK는 조금 어색해서 완벽 대신 ‘최선’을 집어넣고 2013년의 모든 하루에 열정을 다하기로 다짐하려고요. 최선을 다한 하루가 모두 모이는 계사년 12월의 마지막 날 무대에서 내려오는 나에게 진짜 편집장, 진짜 PK의 자격이 주어지길 기대하면서요.

의대생신문 독자분들도 올해 얻고픈 ‘자격’을 남몰래 하나씩 가지고 있겠죠? 각자의 자격을 위해 열심히 뛰어봅시다. 그 일 년의 여정에 의대생신문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김정화 편집장
<edito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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