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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89호(2012.10.22)/오피니언 2012. 10. 29. 17:17 Posted by mednews

시계태엽 우리 인생

 

바쁜 현대인들에게 정확한 시간 확인은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농담 섞인 수식어가 붙은 ‘원자시계보다 더 정확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간간히 손목시계를 보고는 합니다. 또 그 중 대부분은 전자식 시계가 차지합니다. 그런데 아주 간혹, 태엽을 감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기계식 시계를 착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손목시계 안에 수백 가지의 부품들을 집어넣기도 어려울 텐데, 거기다가 또 신묘한 기술들을 접목시키기도 합니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먼저 미닛 리피터(Minute Repeater)라는 기술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벨 소리를 나게 하는 기술입니다. 다음으로는 퍼페츄얼 캘린더(Perpetual Calender)라는 기술인데 이는 윤년, 윤달 등을 완벽히 계산하여 2100년까지도 따로 날짜 조정을 할 필요가 없게끔 하는 것입니다. 전자식 시계에서야 그다지 어려운 기술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를 순전히 태엽과 나사 등의 기계로만 구현하려면 얼마나 힘들까요?
또 스플릿 세컨드(Split Second)라는 기술은 초침 뒤에 또 다른 초침이 같이 있어 스톱워치를 정지시키면 뒤에 초침은 계속 돌아가 두 개의 시간을 잴 수 있는 기술입니다. 사실 웬만한 전자식 스톱워치에서는 당연한 기능이지만, 역시 이쯤 되면 기능의 탁월함보다는 그 기능을 접목시킬 수 있다는 능력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그 외 뚜르비옹(Tourbillon)이라는 기술도 있는데 이는 중력으로 인한 시계 오차를 줄여주는 기술이라고 하네요.
저는 인생이 시계태엽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지하철 노선도와 시간표를 보며 집에서 나와 역까지 걷는데 걸리는 시간, 또 환승하는 거리, 가장 출구와 가까운 열차번호 등을 봐가며 최대한 빠르게, 태엽이 헛돌지 않게 하는 것처럼 다리를 바쁘게 움직이죠. 심지어 버스 배차 간격, 신호등 순서 등도 익혀두곤 합니다. 하나의 태엽이 돌아가면 그 다음 태엽이 돌아가고, 역으로 작은 태엽 하나의 움직임이 전체의 움직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먼저 가는 버스를 놓치고 그 다음 버스를 타면 오랫동안 못 봤던 지인을 우연히 만나기도 합니다. 시계 기술보다 더 신기한, 설계도가 없는 삶의 기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 더 작게 오늘의 한 시간은 과연 수십 년이 넘는 인간 삶의 전체의 움직임에 어떻게 영향을 줄까요? 너무나 작은 움직임이라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조금 더 큰 톱니가 돌아간 것인지 무게감 있는 움직임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떤 일 혹은 사람은 톱니에 이물질을 넣기도 하고 윤활유를 넣어 주기도 합니다.
시계 기술에는 장인(匠人)이 있지만, 인생 기술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실험도 없이 세상에 나와 실전을 치루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다보면 어느새 핵심 부품이 작동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겠죠. 또 모를 일입니다. 언젠간 조력자가 나타나 힘을 실어 줄 지도요.


한중원 편집장
<edito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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