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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냐 족보냐 그것이 문제로다



얼마전 의대 생활을 시작한 K씨 30세는 요즘들어 고민이 하나 생겼다. 감당하기 버거운 학과수업 분량으로 녹초가 되기 직전인데 잦은 시험으로 매 시험마다 textbook 한번 제대로 못보고 중요한 내용만 암기한 채 시험장에 들어가기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래서야 의사가 되어 환자를 제대로 볼수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고 한다. 이런 고민은 의대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성격이라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시험 직전 모든 내용을 샅샅이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탓에 시험범위를 1회1독도 하지 못하고 시험장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의대에서는 시험을 못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급’ 이라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기초부실이냐 튼실한 뼈대냐

 유리잔에 반만 채워진 물을 두고도 ‘반밖에 남지 않았네’ 혹은 ‘반이나 남았네’ 라고 시각을 달리 해볼수 있다. 족보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르다. 본과 4학년인 J(29)씨 “고층건물을 지을 때 튼실한 철제 프레임을 먼저 짓고 그 다음에 차근차근 지어가잖아요. 족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해요. 중요한 것을 먼저 정리하고 난 다음에 주변의 것을 알아 가는게 제가 보기엔 비슷한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textbook도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해요” 라며 족보를 중시하는 이유에 대해 말했다. 한편 졸업생인 K씨는 “학창시절 시험 점수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죠. 하지만 의대 공부라는 것이 단순히 그 순간만 모면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쌓여져 가는 학문이에요. 자신이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결여되면 그 바닥이 환자 앞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죠. 그럴 땐 참 당혹스러워요. 임상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기초가 끝나고 내과 같은 과목을 시작하면 마냥 외는 것 보다 생리적인 이해가 동반되면 특정 질환의 치료에 대해 예상해 볼 수도 있고 공부가 재미있어 지기까지 한답니다” 위 두 사람의 이야기가 특정 견해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자신은 두사람의 의견 중 어느 쪽에 더 공감하는지 생각해 보자.

기초튼실 K씨의 공부법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강의록이나 textbook을 한번 훑어보고 시작한다. 자신이 지금 어느 부분을 공부하고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지 생각해 본다. 중요한 내용이나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표시도 해본다. 물론 시간이 만만치가 않다. 모든 과목을 이렇게 할 수는 없지만 할수록 요령이 생겨 조금씩 시간이 줄어들게 된다. 주변의 친구들은 그렇게 하다가는 나중에 시험 볼 때 엄청 고생 한다며 한마디씩 하곤 한다. 가끔은 이런 공부방법이 정말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 론 족보를 안 보는 것은 아니지만 내용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족보를 보는 편인 K씨는 시험 막판에도 textbook까지는 아니더라도 강의록은 한번 더 훑어보고 간다. 족보만 암기해서 수험장에 들어가는 경우에 비해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 있어 문제가 변형되어도 나름의 생각 후 답안을 작성할 수 있고 시험을 마친 후에도 오랫동안 기억이 남는다. 한가지 덤으로 얻어지는 것은 수업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용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공부를 진행할 수 있는 K씨로서는 혼자서 전전긍긍하며 textbook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 보다 강의를 집중해서 들으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니 졸음과의 싸움에서도 상당한 우위를 가지게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수업에 대한 목적의식 덕분에 수업이 다소 지루하더라도 좀 더 참을 수 있고 화창한 날씨의 유혹에 흔들려 수업시간에 강의실이 아닌 공원에 가는 일도 줄일 수 있다고 살짝 귀띔해 주었다.

튼실한 골격형 J씨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족보나 시중에서 판매되는 의학 관련 참고서를 선호하는 J씨는 생소한 의학 공부에 위와 같은 책들이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낯선 지역을 여행할 때 지도나 인터넷 네비게이션을 이용하면 큰 어려움 없이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의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접하면서 선배들의 정리집이나 textbook 요약내용을 참고 한다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textbook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엔 간극이 존재하기에 이를 직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의대의 공부 분량이 작다면 문제가 안되겠지만 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업량을 모두 감당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모든 것을 하나하나 이해해 가면서 textbook을 읽기란 웬만해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J씨는 족보를 이용해 수업내용의 중요 가지와 잔 가지를 분류하고 족보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반복학습을 한다. “어차피 의대공부라는 것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금 교실에서 수업 한 것을 실습 때 다시 반복하고 국가고사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보고 임 상에 나가서도 또 보고 하잖아요. 지금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과목도 공부해가고 의학에 대한 경험도 쌓여가면서 이해가 저절로 되는 것 같아요. 조급하게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중요한 점은 이런거구나 하고 넘어가는 것도 그리 나쁜 방법은 아니라 생각해요” 라고 말했다. 특히나 긴박한 응급 의료상황에서는 내용이 바로 나와야 하므로 중요한 점은 반복해서 숙지하고 있는 편이 낫다는 말도 덧붙였다.


 두 경우 모두 의대생활을 헤쳐나가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이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두 의견 중 어느 하나가 맞고 나머지 하나는 틀리다고 하기보다는 서로 다르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서로 다른 방식의 학습법 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택해 훌륭한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 의대의 학사 일정은 빠듯하게 진행되고 분량도 방대해 많은 의대생들은 잦은 시험과 함께 스트레스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게다가 유급이라는 무서운 칼날 앞에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을 찾기보다는 매 시험을 넘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중국고서 중 하나인 예기의 중용 편에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는 마음을 미덕으로 소개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두 가지의 자습법은 사실 엄격하게 구별되는 것이 아닐 수 있고 혼용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다. 두쪽다 장단점을 갖고 있기에 자신에게 맞는 학습법으로 의대의 학습과정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면 어떨까 싶다.


이진영 기자 전북
<hanlji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