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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86호(2012.04.16)/오피니언 2012. 4. 18. 18:53 Posted by mednews

의료분쟁조정법, 유연한 대처로 ‘윈윈’ 꾀해야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의료분쟁의 수는 연간 1만5천 건에서 많게는 3만 건까지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동안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관행상 환자와 의사 사이의 합의에 따라 해결하거나 법정싸움으로 번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양측 모두에게 발생하는 시간적?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고통을 줄이기 위한 장치가 마련됐다. 지난 4월 8일자로 시행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분쟁조정법)에 따라, 의료사고에 있어 발생한 피해의 정도와 의료인의 과실 여부, 그리고 환자 측의 귀책사유 등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감정기구가 발족된 것이다. 의료, 법, 소비자권익 등에 각각 식견이 풍부한 사람들로 구성된 이 감정기구에 의료분쟁 해결을 의뢰하면 평균 26개월이 넘게 걸리던 소송 기간에 비해 4개월 이내라는 짧은 기간에, 통상적인 변호사 선임료의 10분의 1 수준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의료사고를 겪은 환자와 그 가족이 적은 비용으로 신속하고 공정하게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게 됐으니 환자를 위한 제도임이 분명하나, 사실 의료분쟁 조정기구의 필요성을 처음 주장한 쪽은 24년 전의 대한의사협회였다. 최근 판례에서는 의사측이 과실이 없음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지만, 당시 정보 불균형 상태에 놓인 환자들이 의사의 과실을 밝혀내야 하는 의료소송에서 승소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던 정황을 고려한다면 분쟁조정기구의 설치는 오히려 의료인이 분쟁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진료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에도 적지 않은 무게가 실려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처럼 의료인과 환자 측 모두에게 도움이 될 법한 제도인데 그 출발이 매끄럽지 않다. 산부인과의사회를 필두로 의협, 병협 등 각급 의사단체들이 조정신청에 불응하기로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다. 논란의 핵심은 이 법이 포함하고 있는 한 가지 독소조항이다. 이는 산모나 신생아의 출산 과정에서 발생한 뇌성마비와 같은 분만 관련 의료사고에 있어서 의사의 과실이 없더라도 그 피해에 대해 일정 부분을 보상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는 민사상의 대전제 중 하나인 과실책임주의에 명백히 위배될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산부인과 기피현상을 심화시킬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수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강경하게 시행령을 통과시키는 것은 정부가 의료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반영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의료계는 ‘기브앤테이크’라는 협상의 기본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부분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포함하는 전체를 통째로 거부한다면 이는 협상테이블을 깨겠다는 뜻이 된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는 의사들의 보이콧으로 의료분쟁조정제도가 잘 정착되지 않더라도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다. 오히려 ‘전적 반대’ 입장만을 고수함으로써 고립되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은 의료계다. 이 독소조항을 일부 수용하는 조건으로 다른 것, 더 큰 것을 챙겨야 한다. 정부가 내놓은 방침을 수용하는 대신 분만수가를 현실화하여 손익의 균형도 맞추고, 뜻하지 않게 발생한 사고에 대해 과실이 없더라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의사집단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얻어야 한다. 사실 관행적으로는 사산 등과 관련해 ‘위로금’도 건네지 않았던가. 더 나아가 원가 수준에도 못 미치는 각종 의료 수가들을 현실적으로 개선되도록 해야 한다. 의료계에 정상적인 진료환경이 제공될 때에야 의사들의 진료행태도, 환자-의사 사이의 신뢰관계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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