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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85호(2012.03.02)/오피니언 2012. 3. 4. 22:11 Posted by mednews

정당성 포기한 전의련의 수금계획

지난 1월 말, 각 학교 학생회장 등으로 구성된 전국의대/의학전문대학원생연합(이하 전의련) 총회에서 “의대/의전원생 한 사람당 5000원씩 회비를 걷는다.”는 내용의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친구들 사이에 돈을 빌리더라도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상식인데, 어디에 얼마나 쓸 것인지조차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걷고 알아서 좋은 데 쓰겠다고 하니 참으로 무례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요청한 적도 없는 ‘보호 제공’을 들먹이며 지역민들에게 금품을 갈취하는 불한당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신입생 때 6년간의 회비를 한꺼번에 미리 걷자는 의견까지 나왔다고 하는데,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의 신입생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돈을 내기를 종용하는 모습에는 최근 이슈가 된 우리 사회의 병폐 ‘학교폭력서클’의 향기도 묘하게 배어 있다.

총회에서의 의결 방식을 들여다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익명성이 보장된 ‘기표’ 방식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진행된 ‘거수’식 투표로 의결 과정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 아무런 합리적 근거나 믿을 만한 약속도 없이 사람마다 돈을 걷겠다는 상식 밖의 내용이 가결되었다고 하니, 이는 돌출 행동을 하는 것을 꺼려하는 의대생의 특성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전체의 40%가 넘는 기권표는 여러 학교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의 사회적 압력, 다시 말해 ‘분위기’에 눌려 유권자들이 쉽사리 반대 의견을 제기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비민주적 투표는 그 회의를 주재하고 진행한 사람이 투표 결과를 제 입맛대로 유도해 내면서 겉으로는 의결 절차를 밟았다고 내세우기 위한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

가장 큰 문제는 분위기에 휩쓸려서든 자발적으로든 돈을 낸 학생들이 충분히 그 혜택을 누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데 있다. 사실 전의련이 출범 이후 보여 온 그간의 행보는 엄밀한 의미에서 ‘학생연합단체’의 길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나마 최근 추진된 전의련의 몇 가지 사업들이 의대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 조금의 위안으로 다가오지만, ‘참여의 기회’만 열려 있는 것과 실제로 혜택이 돌아간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의 직접선거가 아닌 각 학교 대표들의 간접선거로 의장과 임원진이 정해지는 단체가 개별 회비를 걷을 정당성은 찾을 수 없다.

정말 모든 의대생들을 위하는 목적의 사업에 대한 자금이 필요해서 개인회비를 걷고자 하는 것이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건 그 기획과 예산 내역을 의대생들에게 전달하고 어떤 형태로든 의견을 수렴한 뒤여야 했다.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단지 과정상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런 태도의 밑바탕에는 ‘우리가 알아서 이끌테니 너희는 군소리 말고 시키는 대로 따라오라’는 우월의식과 독단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의대사회 내에 만연한 여러 가지 부조리를 발굴하고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의대생들의 단체가 눈에 보이는 사업에만 주력하면서 뒤로는 오히려 부조리를 만들어낸다면, 그 단체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의련은 앞뒤도 맞지 않고 정당성도 결여된 그들만의 수금계획을 포기해야 한다. 겸허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모습을 갖추기 위한 최근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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