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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보기, 다짐하기

 75호. 제게는 통산 6번째 신문입니다. 신문이 한 학기에 3번 발행되니, 제가 신문사에 들어온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셈입니다. 원로(?)기자분들에 비하면 아직 매우 어리고 매 호마다 어떤 큰일을 맡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만, 1년이란 숫자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설렘은 ‘돌아다봄’으로 이어집니다. 신문사의, 신문사에 의한, 신문사를 위한 나의 1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가만히 떠올려보면 참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릅니다. 첫 기획회의나 제 자신이 쓴 첫 기사가 실린 신문, 몇몇 기자 분들과 같이 들었던 기사쓰기 강좌, 스터디 모임..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인터뷰입니다.
 저는 대한의사협회의 공보이사님과 첫 인터뷰를 했습니다. 인터뷰 주제는 원격의료 사업과 관련된 의한 의협의 입장이었는데, 인터뷰 요청부터가 그리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름 정중한 인터뷰요청이 담긴 이메일을 의협에 보냈는데 좀처럼 답장이  오지 않더군요. 한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답장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메일에 표시된 인터뷰 날짜가 메일을 받은 바로 다음날이더군요. 발등에 불이 떨어져 정말 정신없게 인터뷰 준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가지도 않던 인근 구내 도서관에 가서 대출증을 만드는가 하면, 필사적인 구글링으로 원격의료에 관련된 자료와 인터뷰이에 관한 정보를 긁어모으고 암기하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 워크샵에서 나온 인터뷰 방법론 자료를 활용해서 질문지를 작성하거나 주의할 점도 정리했었네요. 설상가상으로 인터뷰 당일 오전에는 동생의 중학교 졸업식이 있었는데, 저는 졸업식장에 가서도 인터뷰 자료를 읽고 있어야 했습니다. 인터뷰 시간과 아슬아슬하게 겹칠 것 같아 결국 동생에게 꽃만 안겨주고, 점심은 같이 먹지 못한 채 후닥닥 뛰쳐나와 의협건물로 향해야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직도 동생한테 미안하네요. 인터뷰 시간에 늦진 않을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택시에 몸을 실었는데 다행히 좀 빨리 도착했습니다. 의협 건물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거나, 딱딱하게 생긴 편은 아니었습니다. 안쪽은 일반 회사의 사무실 비스무리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사무실에 고개를 비죽 내밀자, 사무직원들과 인터뷰이인 이사님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며 가구를 옮기고 계시더군요. 사무직원들이 식상한 내부구조를 바꾸자고 했는데 이사님이 적극찬성하시면서 새로운 인테리어(?)를 위해 작은 소도구나 책상 등을 손수 옮기고 계셨습니다. 공식석상에서 강하게 목소리를 내시던 것과는 또 다른 친근한 모습도 있으시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편안해지기도 했네요. 이사가 끝난 뒤 이사님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과일음료수를 하나 가져다주시고, 인터뷰가 시작되었습니다.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니 만들어간 질문지의 순서와는 영 다르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질문의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고, 한 질문에 다른 질문이 포함되는가 하면 잘못 알고 있는 개념도 간혹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사님은 제가 초짜 기자라는 걸 아셨는지, 질문내용 정리도 해주시고 좀 어려운 개념에 대해선 차근차근 보충설명을 덧붙이시면서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이렇게  치러진 인터뷰는 약 1시간 만에 끝이 났습니다. 그리 짧지만은 않은, 하지만 실제로 느끼기에는 매우 짧았던 1시간 이었습니다. 첫 인터뷰를 무사히(?) 마쳤다는 홀가분함을 안고 의협건물을 걸어 나왔지요. 하지만 계단을 다 내려선 순간, 무언가 아쉬운 생각이 스쳤습니다 - 낙후된 의사협회 건물이, 왜 그렇게 슬프게 보였을까요.
 군데군데 페인트 칠이 벗겨지고, 뼈대만 유지하고 있는 듯 한 의협의 건물. 마치 오늘날의 의료계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 기사에서 보았던 구절 - ‘현대사회에서 의료행위의 전반을 좌우하는 것은 의사나 환자가 아닌, 제약업계나 정부, 보험회사, 즉 자본이다’ - 이 날카롭게 스쳐지나 갔습니다. 의협의 건물은 저로 하여금 자본이 빠져나간 뒤 앙상하게 뼈만 남은, 힘 없는 의사들의 모습을 연상시켰지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사님이 마지막에 하신 말씀, ‘의료계가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이 왠지 모르게 필사적으로 들렸던 것은 저만의 착각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재 의료에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현안들에 대해 의료계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부나 제약회사 혹은 시민단체의 함성에 푹 묻혔다가, 가끔 조그맣게 소리를 내면 석연찮은 눈총만 받고 말지요. 우리의 목소리가 옳든 그르든 간에, 소리 자체를 내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목청을 키워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과 입문을 반년 남짓 남겨놓은 지금, 나의 본과생활은 어떠할 것인가, 그 와중에 기자활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상념이 드는 때가 많습니다. 본과 4년간 의학공부에 매진하는 것은 의학도로서 가장 중요한 의무이지만 그 와중에 혹여나 장님이 되진 않을지, 목소리를 잃지는 않을지 걱정이 듭니다.
 지금의 저에게 있어 기자활동이란 ‘바깥’으로의  시선 통하는 몇 안 되는 통로 중 하나입니다. 본과생이 되어서도 예과 때보다 더 매진할 자신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놓아 버리지는 않으려 합니다. 머리가 찌뿌둥하고 눈이 침침해지는 느낌이 든다 싶을 때는 신문을 보면서 목청을 가다듬어보겠다고 조심스레 다짐해 봅니다. 1주년 기념으로요.

김정화 기자/한림
<eudaimonia89@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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