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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영화를 통해 바라본 진정한 아름다움 찾기

 영화 <시>는 비가 내리는 오전의 습한 공기와 닮았다. 그만큼 조용하지만 무언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잔잔한 음악이 느껴지고, 그럼으로써 인간을 침묵케 하는 기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등으로 이미 전 세계의 인정을 받고 있는 이창동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 <시>는 한 편의 시처럼 여백이 만들어내는 깊은 울림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빚어진 영화이다.
 경기도 외곽의 작은 마을, 작고 오래된 아파트에는 ‘미자’라는 이름의 소녀같이 맑고 순수한 할머니가 외손자 ‘종욱’과 단둘이 살고 있다. 약간의 정부보조금과 거동이 불편한 치매 노인을 돌보며 받는 수당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가는 처지이지만 그녀는 늘 주위에서 멋쟁이 소리를 들을 정도로 화사하다. 감수성 또한 풍부한 그녀는 마음속에 시 창작에 대한 열정을 가득 품고 있다. 마을 문화회관에서 주최하는 시 강좌를 들으며 언젠가는 꼭 시 한 편을 완성하겠노라, 그녀의 두 눈은 맑은 의지로 빛난다.
 강사인 시인은 말했다.
 “시를 쓰는 것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행위입니다. 사물을 관찰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끄집어내야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사물을 관찰하며 시상을 찾던 어느 날, 그녀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며칠 전 동네의 한 여중생이 자살을 한 이유가 자신의 외손자와 그 친구들 때문이라는 기가 막히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그 때부터 그녀의 일상에는 수면에 떠오르지 않는 소용돌이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인지 묘연해진 ‘시’의 행방

“시? 시조 창 배우신다는 말씀이세요?”
“아니요, 시요 시.”
“아~ 근데 시는 왜 쓰세요?”
 소녀를 범한 무리의 보호자들이 합의금 문제로 모이기로 한 날, 약속장소로 가는 차안에서 한 아버지가 미자에게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남자는 빠르고 복잡하고 또 때때로 추악한 현실에서 일인 다역의 책임을 다하느라 ‘시’를 한 번에 알아듣지도 못하게 된 걸까. 3000만원의 합의금을 다 모았을 때 사건이 일단락 됐다며 시원하게 웃는 남자에게 ‘시’란 무엇일까. 바쁜 일상의 하루하루를 좇기도 힘든 마당에 그들에게 시는 사치일 수도 있고 낭비일 수도 있다. 그리고 말 그대로 ‘쓸 데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선생님. 시는 어떻게 쓸 수 있나요? 너무 어려워요. 도무지 시상이 떠오르지가 않아요.”
 미자는 여전히 소녀 같은 얼굴로 미간을 찌푸린 채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시를 쓰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너무 힘들지 않느냐고. 아무리 둘러봐도 꽃과 나무는 아름답고 햇빛은 반짝일 뿐 그녀의 인생에 빛이 되어주진 않는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시를 써나간다.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을 들었을 지라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버려야 할 때 일지라도, 누군가가 시를 음담패설과 함께 모독한다 할지라도 시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식지 않는다.

용서를 구하는 법

 미자는 손자의 잘못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그것은 엄마와 아들간의 애증 관계 속에서 피어난 것과는 성질이 달라 그녀의 감정은 더 깊고 애잔하다. 그녀는 분노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서 손자를 바라본다. 둘 사이의 여백은 허전해 보이지만 실은 꽉 채워져 있다. 소년이 비록 사할 수 없는 죄를 졌음에도 그가 순수해보이기까지 하는 것은 미자의 끊임없는 내리사랑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인생의 황혼기마저 지난 노년에게는 그 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 있다. 미자는 손자 못지않게 죽은 소녀를 생각하고 그리워한다. 죽음이 머나먼 일이 아니게 되어 실은 무섭기만 한 인생의 끝 무렵에서 그녀에게는 이르게 져버린 생명이 그 누구보다 아깝고 안타까울 것이다. 그래서 미자는 철없고 속을 알 수 없는 손자를 대신해서 소녀에게 용서를 구하려 한다.
 그녀는 이제야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이 행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시를 쓰는 것이 그렇게 힘들기만 했던 그녀가 마치 아기가 첫 걸음마를 떼듯 무엇이 '진정한 아름다움'인가에 대해 눈을 뜬 것이다. 그것은 쉬이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과 나비이기 보다는 어둡고 추악한 현실 속에서 더욱 밝게 그 가치를 빛내는 어떤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으로 다가오기가 힘들고 때로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미자의 시에서 그것은 소녀의 죽음이다. 소녀의 죽음으로 미자는 순수하지만은 않은 세상을 느꼈고 그런 현실 속에서 느끼는 죄의식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시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녀의 빈자리를 조용히 한 뜸 한 뜸 메운다. 그것은 합의금 같은 물질로는 다 치유될 수 없는 상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이제는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땀방울이 스민 진정성이다.
 시상은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소녀에 대한 죄의식에서 우러나왔지만 종국에는 소녀를 미자 자신과 일치시킴으로써 시가 완성된다. 자신도 이제 곧 부재하는 존재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미자는 소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녀가 생전에 못 다한 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으며, 남은 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나는 당신을 축복하고 우리의 다음 생 또한 따뜻하기를...’

내가 당신의 아픔을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그것은 내 것일지도 모릅니다

 감독은 말했다.
 “나와 큰 상관이 없게 여겨지는 일들이 사실은 어떠한 관계가 지어져 있다. 내 발 밑의 물이 연결되어 있듯이 따지고 보면 그게 팔레스타인까지도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에 미자가 병원 로비에 우두커니 앉아 tv를 본다. tv화면 속에는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자기 아들이 죽었다며 울부짖고 있다. 그것은 퍽 안쓰럽지만 먼 나라에 살고 있는 남의 일일뿐, 미자는 곧 잊을 수밖에 없다. 병원을 나오는 길에 그녀는 또 한 명의 자식을 잃고 실성한 채 바닥에 주저앉는 여인을 본다. 직접 느끼는 슬픔의 파장은 tv에서 본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고 그 일은 그녀의 가슴 한 켠에 묵직하게 자리 잡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자식을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내몬 당사자가 자신의 손자임을 알게 된다.
 슬픔과 고통은 ‘나’라고 해서 빗겨가지 않는다. 그것들이 나에게로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것이 그렇게 큰 파도와 같은 위력을 지닌 줄 모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낭떠러지 끝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영화 ‘시’는 낭떠러지 끝에서도 침착하고 담담하게 대처하는 한 작은 노년을 보여줌으로써 그 숨은 힘을 드러낸다.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될 줄은 모르고 있었지만 이제 그 아픔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라져가는 ‘시’의 숨결을 세상 속으로 불어넣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선민 기자/을지
<god0763@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