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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88호(2012.09.10)/오피니언 2012. 9. 10. 15:17 Posted by mednews

논쟁의 대전제

 

얼마 전 법과대학에 다니는 형과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절대적인 미의 기준은 존재하는가’에 대해 밤새가며 논쟁을 했었습니다. 그보다 더 전에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고귀해야하는 것인가’에 관해 논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요새 들어 논쟁, 논리력 싸움이라는 것에 매우 관심이 갑니다. 며칠 전엔 우연찮게 들어갔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똑같이 ‘미의 기준’에 관해서 논쟁하는 글을 봤는데요, 댓글이 수백개였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논쟁에 있어 중요한 것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중에서도 기본 전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초점을 두고 참여하거나 지켜보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라던지 법은 언제나 지켜야 된다던지 하는 대명제같은 것들이 있겠죠. 또 세상사 모든 사안들이 다 논쟁이라고 보는 관점에 있어서, 사건 하나 혹은 기사 하나의 기저들을 살펴보려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기본 전제들은 보통 도덕, 윤리 교과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편적으로 살아왔다면 자신의 가치관을 투영시킨 대전제가 있을 텐데, 영화에나 나오는 악당이 아닌 이상 전제가 ‘틀릴 수는’ 없겠지요. 그렇기에 왜곡, 비방 등이 없다면 논쟁의 종결은 마침표가 아닌 말줄임표로 끝나기 십상입니다. 서로의 전제를 알아듣고 그 선에서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을 이해한다면 그 때부터는 딱히 얼굴 붉힐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격렬했지만 잘 된 토론 이후 패널들이 웃는 얼굴로 악수하는 것을 가식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겠지요.
위의 이야기는 사실 다 이상적인 말들이고 실제로는 보통 멱살 잡고 욕설이 오고가는 것이 보통의 논쟁입니다. 상대방의 전제가 틀렸다고 주장 혹은 착각하거나 실제로 한 쪽의 전제가 틀렸을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상식선에서는 그 중에서도 상대방이 틀렸다고 착각 혹은 고집해서 생긴 갈등이 더 많을 것입니다. 반면, 기사를 쓰고 고치고 또 그만큼 많이 접하고 보니 제3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어 그나마 객관적으로 사안들을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갈등을 살펴보면 의외로 전제부터가 틀린 주장이나 행동이 꽤나 많이 보입니다. 문제는 이를 알려줘도 방어 기제 작동으로 인해 애써 무시하는 태도일까요?
조금 더 논리의 기저들을 파헤치고, 옳고 그름이 판단되는 것은 그 판단을 제시해주는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데 쉽지 않네요. 지금까지는 우리 신문을 애써 그 자체의 색처럼 회색빛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제 스스로 겁을 먹어 그랬던 것이 아닌가, 반성합니다. 피펫으로 한 방울만 진한 색을 넣어볼까 합니다. 암묵적이라고 그냥 넘어갔던 것들, 또 구조상 약할 수 밖에 없는 의대생들이라고 자조하며 넘겨왔던 일들이 있다면 조명탑을 켜고 재조명해보겠습니다. 공상에 그치지 않기를 스스로 기도합니다.

 

한중원 편집장
<edito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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