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우리에겐 요람이 필요하다


지난 해 한국의 출산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통계청이 지난 22일 발표한 ‘2016년 출생·사망통계’에 의하면 작년 출생아 수는 40만6천300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소치라고 한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전망되는 지표인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1.17명으로 1년 전보다 0.07명 줄었다. 합계 출산율이 줄어든 것은 2013년 이후 3년 만으로, 합계 출산율 자체는 2009년(1.15명) 이후 최저치다.

한국은 OECD 기준 초저출산 국가다. OECD 기준 합계 출산율 1.30미만을 초저출산 국가로 본다. 2001년 초저출산국가가 된 이후 2012년(1.30명)을 제외하고는 내내 초저출산 국가에 머무르고 있다.

이미 정부는 저출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06년부터 5개년마다 저출산·고령사회 중장기 정책목표와 기본방향을 담은 계획을 발표 및 시행해왔다. 10년동안 쏟은 예산만도 80조원에 달하지만 여전히 초저출산국이란 타이틀을 떼어내지 못하였다. 당연히 정부의 저출산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고 정부 역시 지난 1월 25일 ‘인구구조 변화에 대한 중장기 정책대응방향’을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정부의 출산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실패한 대책들 중 하나로 작년 12월 행정자치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라는 이름의 웹페이지를 공개했다.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결혼·임신·출산 관련 통계 및 지원서비스 정보를 모은 것으로 전국 243개 지자체의 가임기여성인구수와 평균 출산연령을 비롯하여 결혼·임신·출산 통계치의 최근 10년간 변화와 흐름을 통계와 그래프로 조회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지난 24일 정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원)은 ‘인구포럼’에서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사원의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혼인율 하락이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인 만큼 혼인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고학력·고소득 여성이 배우자를 하향 선택하고 교육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는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대한민국 출산지도’는 생긴 당일 바로 없어졌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지자체별 가임기 여성이 얼마나 거주하는지를 볼 수 있는 ‘가임기 여성 수’ 항목이었다. 해당 항목에 대한 비난 여론과 규탄 시위가 이어졌고 해당 페이지는 수정 공지문만 띄워진 상태이다. 보사원의 보고서 또한 국민의 공분을 사 원 위원은 현재 보직 해임된 상태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정부가 ‘왜 사람들이 결혼을 못하거나 안하는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 인식 없이 단순히 혼인율만 높이려고 하는 근시안적인 대책을 세우는 등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집 마련, 연애, 결혼 등을 포기한 ‘N포 세대’라는 말이 오늘날의 사회 현실을 설명해 주듯이, 생존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출산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여성에게 출산의 책임을 전가하고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육아 및 보육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대부분 요구하는 오늘날 한국의 상황에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결혼· 출산 이후에도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책은 아이를 낳도록 강요, 그 이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특히 보사원이 내놓은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제안은 우리사회가 바라보고 있는 출산 대책의 단면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제안들 가운데는 여성들이 유학이나 연수를 갔을 때 채용에 불이익이라는 점을 고지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여성의 자발적인 혼인 및 출산 유도를 위한 제안이라기 보다는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가임기간동안 여성들이 결혼을 빨리하도록하여 더 많은 아이를 낳도록 하는, 사실상 강요에 가까운 제안을 대책으로 제시하였다. 즉, 출산과 육아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는, 남녀불평등한 현 상황의 개선이 무엇보다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선진국들도 경제성장에 따라 혼인율이 감소하고 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었다. 경제성장으로 인한 저출산 도래는 사회현상이자 일종의 법칙으로 모든 나라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이들 국가 중 일부는 제도 정비로 출산율을 회복하거나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앞서 우리와 똑같은 초저출산의 문제를 겪고 있던 이웃나라 일본의 출산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최근 발표한 ‘1억 총활약 사회’ 로드맵에는 보육시설 확보와 최저임금 인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출산율이 2명에 육박하는 프랑스와 스웨덴 또한 국가에서 육아 휴직과 보육 서비스를 보장하고 있다. 

출산을 기피하는 사람들의 기저에는 나와 지금 세대의 고통을 다음 세대가 대물림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사회가 나와 내 아이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뒷받침되어야 기꺼이 새로운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게 될 것이다. 단기간 성과에 연연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도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출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연결고리의 악순환은 되풀이 될 것이며 앞으로 미래세대에게 들이닥칠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져 출산기피를 더욱 부채질 할 것 이다.   

임신과 출산은 다양한 생리적 변화를 수반한다. 임신을 하게 되면 아이에게 열량이 많이 공급되도록 당 신진대사가 변한다. 자궁 안에서 아이가 자라기 때문에 자궁이 방광을 압박하여 감염에 더 취약해지기도 한다. 흔히 임신중독증이라고 말하는 자간전증이라는 고혈압과 단백뇨(proteinuria: 소변에 단백질이 섞여 나오는 것)를 동반한 임신 특이적 질환도 흔하게 발생한다. 출산 이후에도 후유증이 남아 그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그 후에는 아이를 기르기 위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임신과 출산은 산모와 아이, 그 가족의 삶에 지각변동과도 같은 변화를 가져온다.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잦은 임신과 출산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지만 출산 직후 어머니와 아이가 첫 만남을 가질 때 나누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기쁨을 이어나가기 위해 우리는 우리사회가 아이에게 요람을 제공할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행동으로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115호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집자가 독자에게  (0) 2017.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