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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적 환자와 레비나스적 의사의 만남
『어느 의사의 고백』

 의학과 철학. 정말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어떤 의사가 이 두 학문 사이에 슬금슬금 다리를 놓으려 하네요. 여기에 ‘아니 의학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이고, 철학은 머리만 굴리는 주관적인 학문인데 무슨 연관이 있느냐’며 반문하실 분도 많겠지만, 과연 그럴까요?
 『어느 의사의 고백』은 철학적인 관점에서 의학을 바라본 책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의학에 있어 윤리적인 토대를 마련해 보려는 노력이 담긴 책이지요. 저자인 알프레드 토버는 의사이자 철학자입니다. 토버는 과학에 삼켜진 현대의학이 환자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을 잃어가는 것을 매우 염려했습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대안으로, 그는 대인관계에서의 윤리가 의료의 기초로 확립되어야 하며, 임상과학은 의학의 도구로써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대인관계의 윤리-여기서는 의사-환자간 윤리-를 세우는 데에 있어, 토버는 니체와 레비나스를 롤모델로 제시했습니다. 이번 스터디에서는 이 두 철학자의 사유가 어떠한 것이며, 이것이 어떻게 의사-환자 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레비나스의 얼굴

 레비나스는 1905년 리투아니아의 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유태인에 대한 박해를 경험했고, 세계 1,2차 대전을 겪는 와중에는 가족을 잃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로부터, 레비나스는 어째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는 그 원인을 ‘타자에 대한 진정한 존중의 부재’에서 찾았습니다. 당시 유럽사회에 만연해 있던 전체주의적 사고는 타자를 자신의 마음대로 이해되는 대상- 즉 내 자신의 사고체계로 ‘환원된’ 대상-으로 간주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는 타자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이뤄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에 대한 대항으로, 레비나스는 타자를 올바르게 존중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그의 관념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얼굴의 현현’이라는 개념입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우리는 타자와 마주할 때 ‘얼굴의 현현’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얼굴은 타자에게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때 타자는 고통스러운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노숙자나 집을 철거당한 철거민들, 가난해서 밥을 굶는 어린학생들을 볼 때 ‘불쌍하다’ 혹은 ‘저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떠올리는 데는 논리적인 사고과정이 필요하지 않지요. 따라서 얼굴이란 ‘고통 받고 있는 사람에게서 내 자신이 느끼는 어떤 감정’과 비슷합니다. 또한 그런 약자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마음속 한 구석에는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얼굴의 현현은 일종의 윤리적인 명령이며, 연민이나 동정과 같은 감정보다 나와 타자 간의 윤리적 관계를 훨씬 더 견고하게 엮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째서 이런 타자의 철학을 강조했을까요? 실증주의적 과학에 기반한 현대의학은 종종 환자를 ‘질병’으로 환원시켜 연구의 대상으로 여기곤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세태에 반감을 표합니다. 그는 레비나스를 통해서 의사가 환자와 마주할 때 보아야 할 것은 질병이 아닌, ‘얼굴’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특히 관계 설정에 있어 타인의 고통을 큰 요인으로 여긴 것을 감안하면,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은 의사-환자 관계의 윤리모델의 적절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니체의 자아, 니체의 몸

 이제 저자가 주목한 또 다른 관념 - 니체의 자아에 대해 알아봅시다. 니체의 자아관념은 참 특이합니다. 근대까지만 해도 자아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나 자신의 배후에는 어떤 일관된 자아가 존재하며, 이 자아가 나의 말과 행동, 삶 전체를 좌우한다고 보았지요. 니체는 이러한 전통적인 자아 관념을 부정합니다. 그가 생각했던 자아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의식과 의지, 혹은 감정들의 복합적 활동에 대한 개념적 총합’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기분 좋을 때의 나, 나쁜 생각을 하는 나, 분노하는 나 등 다양하지요. 하지만 이들은 나의 자아를 구성하는 한 조각들일 뿐, 그 중 어느 것도 참다운 ‘나’는 아닙니다. 바꿔 말하면 니체는 어떤 행위나 현상을 만들어내는 일관된 자아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쯤 되면, 이런 의문점이 생겨날 것 같습니다 - 그렇다면 주체란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주체는 소멸되어 버린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 니체는 ‘몸’을 제시합니다. 니체는 있어서 몸이란,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힘들 간의 내면적 투쟁과 경쟁이 발현된 결과물입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힘들 간의 투쟁과 경쟁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그는 ‘건강하다’라고 말했지요.
 이러한 니체의 자아관념에는 타자에 대한 설명, 특히 상호 간 윤리적 책임에 대한 요소가 빠져있습니다. 때문에 그의 자아관념을 의사-환자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이것을 의료윤리와 관련짓기 위해서는 좀 다른 길을 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니체의 건강

 위에 언급했던 니체의 몸 개념을 건강과 관련지어서 확장해봅시다. 니체의 몸은 다양한 행위를 유발하는 힘들의 복합체입니다. 이런 다양한 힘들을 적절히 조절하느냐는 몸의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치지요. 니체는 그 힘들 간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 혹은 그렇게 노력함으로써 다양한 균형의 형태를 만들어나가는 것을 건강으로 정의합니다. 그는 ‘병이 있다’거나 ‘병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질병과 건강 모두 어떤 균형점을 찾아가는 선상에 놓인 것으로 간주하고,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보았던 것이지요. 이러한 니체적 관점에서는 환자가 질병을 지닌 객체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다만 잠시 몸이 평정을 잃었을 뿐, 자기 자신의 의지로써 다시 조화로운 몸으로 돌아 갈 수 있는 ‘다소 불균형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이러한 건강개념은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요즘 환자들의 인식과 잘 맞아들어가는 면이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자율성을 이유로 니체의 관념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환자는 스스로의 컨트롤의 부재로 인한 발병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올바르지 못한 식습관이나 방탕한 생활, 건강유지를 위한 노력의 부재 등에 대해 환자에게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거나, 특히 전염병 환자의 경우 벌을 받은 사람, 즉 죄인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니체와 레비나스, 환자와 의사

 그런데 이 시점이 바로 니체의 주체적인 건강개념과 레비나스의 관계론이 융합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스스로의 몸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환자의 자율성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 자율성을 빌미로 질병의 책임을 전적으로 환자에게 지우는 것은 타인, 즉 환자의 ‘얼굴’을 무시하는 일입니다. 레비나스가 제시한 다른 모든 자아-타자의 관계에서처럼, 의사가 환자의 ‘얼굴’을 보는 것은 환자에게 어떤 책임을 묻는 것에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니체적 건강을 잃은 환자가 레비나스적 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니체의 ‘주체의 해체’ 개념은 의사-환자 관계의 전제(건강과 질병의 정의)를, 레비나스의 타자 철학은 의사-환자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틀을 제시해주는데, 결국 둘 다 의료윤리의 기반으로써 중요한 구성요소라 할 수 있겠지요.

 니체와 레비나스. 언뜻 보면 의학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두 사람을 끌어들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인간적인 의학을 위해서이지요. 환자를 단순히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질병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는 현대의학은 의학의 본질-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에 도전장을 내밀음으로써 스스로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넘게 의사로 살아온 저자 역시 이를 절실하게 느껴왔겠지요. 의학의 윤리적 토대를 마련해 보려는 그의 노력은 비인간적인 의학에 대한 대항입니다. 의학의 핵심 중 하나인 의사-환자 관계가 어떠한 철학에 기반 하여야 하는가에 대해, 그는 니체와 레비나스라는 원석(原石)을 조심스레 내어놓았습니다. 매우 거친 형태이긴 하지만, 의학의 윤리적 기반으로써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원석 그 자체로는 단단한 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돌을 균형에 맞추어 수많은 각도로 깎았을 때에야 비로소 눈부신 빛을 발하게 되지요. 글을 읽으시는 모든 독자 분들께 엄숙하고 아름다운 세공을 부탁드리면서 스터디를 마칩니다. 

■ 포럼 참가자_ 김정화(한림), 정세용(연세), 이예나(순천향), 김민재(순천향)
■ 포럼 일시 및 장소_ 3월 28일 강남역 유익한 공간   ■ 정리_ 김정화 기자/한림 <eudimonia89@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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