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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는 의사가 부리고 생색은 정부가? 


대한의사협회가 발표한 ‘2014 한국의 의사상’에는 ‘사회적 책무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의료는 공공성을 가집니다. 의사는 봉사해야 하고, 때로는 희생도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선의는 이용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공의 책임을 민간의사의 희생에 떠넘기는 것은 우리에게 퍽 익숙한 풍경이지만, 최근 의사의 도덕성을 볼모로 한 지도층의 선심쓰기성 공약의 남발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 지면을 빌어 최근 이슈가 된 사건들을 되짚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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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덴만의 여명, 그리고 그늘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덴만의 여명’ 작전에 대한 기록을 건조하게 돌이켜본다. 2011년 1월 15일, 화물선 삼호 주얼리호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당한다. 납치 6일 후 대한민국 해군은 청해부대 UDT/SEAL팀의 급습으로 해적 8명 사살, 5명 생포 후 인질 21명 전원을 구출하는 성과를 냈다. 당시 군과 정부는 이를 훌륭한 안보 홍보 수단으로 삼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분명 좋은 성과를 낸 작전이지만, 국민들은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항로를 지그재그로 설정해 시간을 끌고, 해적들 몰래 한글 통신으로 배의 상황을 알려 작전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석해균 선장이 작전 중 총알 6발을 맞아 중태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석 선장이 치료받던 오만에 급파된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는 에어 앰뷸런스 긴급 이송을 주장, 석 선장은 국내 이송 후 4일간의 대수술 끝에 의식을 회복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아주대병원에 방문하여 ‘석 선장이 걸어 나와야 아덴만 여명 작전이 종료된다’고 그를 격려했고, 8개월간의 기나긴 회복기간을 거치고야 석 선장은 마침내 건강을 회복해 퇴원했다. 여기까지가 팍팍한 세상에 부족했던 영웅담을 더해준 아덴만 여명 작전의 밝은 부분, 즉 여명이다.


여명에 드리운 그림자


치열한 수술실에는 무영등이 구비되어 있지만 바깥세상에는 빛이 있으면 그만큼의 그림자가 있다. 4년의 세월동안 뉘엿뉘엿 진 해는 석양의 그것마냥 특히 더 긴 그림자를 남겼다. 지난 2월 26일, 학교법인 대우학원은 아주대병원의 대손상각 2억 4천만 원을 승인했다. 그 중 석해균 선장의 치료비가 2억 2천만 원이다. 아주대병원은 4년간이나 치료비를 지급받지 못했고, 결국 회수가 불가능한 채권으로 분류해 회계상 손실처리를 한 것이다. 

이송 비용은 한 술 더 뜬다. 이국종 교수가 오만에서 ‘내 돈이라도 낼 테니 석 선장의 이송을 서두르자’고 강력히 주장할 때, 청와대와 외교부는 이국종 교수의 명의로 에어 앰뷸런스를 대여하되 대한민국 외교부가 비용지급 보증을 서는 것으로 일을 진행했다. 이 비용은 치료비보다도 많은 4억 4천만 원에 이른다. 그러나 외교부에서는 이 돈을 지급하지 않았고, 스위스의 앰뷸런스 대여업체는 이국종 교수에게 비용 결제 독촉장까지 발송했다고 한다. 결국 그 비용은 한국선주협회에서 지불했다.

요즘 만화나 영화를 보면 옛날처럼 초인적인 육체와 초인적인 정신을 겸비한 무적의 영웅은 별로 없다. 딜레마에 빠져 고뇌하는 영웅이나, 영웅의 세계 뒤에 펼쳐진 어두운 정치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인기다. 그런데 현실은 한 술 더 뜬다. 당시 이 교수가 ‘자신의 돈이라도 낼 것’이라고 했을 때, 그리고 수술의 좋은 경과에 환호하던 국민들 어느 누구라도 정말 그가 그 돈을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물론 정부가 모든 것을 지원해줄 수는 없다. 분명 이 교수는 ‘자신의 돈이라도 낼 것’이라고 말했으니, 정부는 보증을 서되 그것을 꼭 지급할 의무는 없는 것이 맞다. 그러나 당시 군과 정부는 아덴만 여명 작전을 대대적인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고, 대통령은 ‘그가 걸어 나와야 작전이 종료된다’는 아주 멋들어진 말로 그가 퇴원하기까지 8개월 동안 많은 반사이익을 얻었다. 

국제적인 사고가 있을 때마다 국비를 지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집권당과 성질은 다르지만 김선일씨 피랍, 샘물교회 사건 등에서 국민은 지키지도 못하고 호구처럼 돈만 쓴다는 무능한 군과 정부의 이미지를, 외세로부터 국민을 믿음직하게 보호하는 방패로 바꾸어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석 선장과 아주대병원측에 최소한의 성의는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의사의 사기에 관련한 것이다.


메스에 마지막 남은 명예까지


요즘 정부는 권역외상센터 지정을 지원하고 있다. 2012년 가천대 길병원, 경북대병원, 단국대병원, 목포한국병원, 연세대 원주기독병원을 권역외상센터 기관으로 지정한 뒤 2013년 아주대병원, 을지대병원, 전남대병원, 2014년 경북 안동병원을 차례로 지정했고 2016년까지 2,000억원을 투입해 17개까지 권역외상센터를 늘릴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각 권역 외상센터에는 시설 및 장비 설치에 80억원을 지원하고, 매년 의사 23명까지 최대 27억원의 인건비를 지급한다. 

유럽에서 성공한 모델인 권역외상센터를 국내에 도입하면 보다 많은 환자들의 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니 참 좋은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근무할 외상 전문의가 없다는 것이다. 2015년 현재까지 대한외상학회가 배출한 전국의 외상 전문의는 201명인데, 앞으로는 2년간의 추가 수련을 거쳐야 외상 전문의 자격을 부여할 예정이므로 전공자가 더 늘어날 것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또한 모든 외상 전문의들이 골고루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외상센터에 근무해 주는 것이 아니므로, 17개 권역외상센터의 전문의 TO를 모두 채우기도 긴 시간이 필요한 실정이다. 

무엇이 200명의 외상 전문의조차 제대로 수급할 수 없게 만드는가? 비정상적인 수가에 대한 이야기는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적어도 한동안, 그리고 아마도 오래도록 개선을 기대하기가 힘들 것이니 다른 측면을 보고자 한다. 필자는 이번 아주대병원의 대손상각 처리에서 그 원인을 본다. 메스를 잡은 이에게 돈은 줄 수 없으니 ‘의사로서의 도리’ ‘명예’같은 것을 강조하지만, 그마저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15년 전, 법원은 보라매 병원의 평범한 집도의들을 죄인으로 만들었다. 15년이 지나 정부는 자신들의 홍보에 활용한 유능한 외과의사를 빚 독촉장에 고뇌하게 하는 빚쟁이로 전락시켰다. 척박한 환경에 억척스레 피어난 영웅담을 더 빛내주지는 못할망정, 굳이 구질구질한 이야기로 만들어버려야 할 이유를 상상하기 어렵다.

어쩌면 미담에 취해 메스를 쥘 사람들이 부조리한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수가를 정상화할 의지가 없으니, 도전할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 따뜻한 배려. 그것마저도 다 좋으니 다만, 의로운 일을 해낸 이들이 비참한 기분만은 들지 않게 해 주도록, 자부심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명예를 먹고 살라 할 것이면, 명예는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이준형 기자/가천

<bestofzone@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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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청년의사, 중동으로




“대한민국에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냐고, 다 중동 갔다고” 3월 19일 열린 청와대에서 진행된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문제와 관련되어 위 같은 ‘깨알 지시’를 내렸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국내에 국한하여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청년들이 해외에서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라는 주문이다.


중동 진출의 선두는 의료계


젊은 의사들도 ‘중동으로 가는 청년들’에 포함되었다. 정부는 ‘전문인력의 현지정착’이라는 타이틀 아래 IT, 금융, 항공 분야와 함께 보건·의료 분야 인력을 중동에 보내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정부가 가장 먼저 손을 쓰기 시작한 부분은 보건·의료 분야다.

이에 이어서 지난달 27일 정부는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의 참여아래 ‘청년인력 해외진출 전담팀’을 꾸렸다. 제2의 중동 붐을 일으켜 경제재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박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엿보이는 후속대책이다. 전담팀의 추진내용으로는 언어교육, 정착지원, 교육비 및 정착지원금에 대한 인센티브 등이 있다.

박 대통령은 3월 초 중동 순방 당시 의료 분야에 관한 논의를 상당 부분 마무리 짓고 돌아왔다. UAE와 가장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데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UAE는 한국 의사면허를 소지한 사람이 중동에서 별도의 자격인증 필요 없이 의료 활동을 펼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한국의 의료 인력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20년까지 국가적으로 병원의 수를 현재보다 두 배 가까이 늘릴 계획이기 때문이다. 간호 인력은 일정 수가 이미 파견된 상태이다. 3월 25일 9명의 간호사를 처음으로 파견한 데에 이어 조만간 4명을 더 파견할 방침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여성들이 일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여성 간호사가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의료 환경 고려 안한 

시기상조 대책.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아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중동 정책을 두고 국내의 의료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성급한 정책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가뜩이나 외과 계열로 진출하는 젊은 의사들의 수가 턱없이 적은데 전부 중동으로 보내버리면 우리나라에서 수술은 누가 하겠냐는 것이다.

또 다른 의견으로 어느 누가 중동으로 가고 싶어 하겠냐는 이야기도 있다. 중동으로 파견될 시 보수가 한국에 비해 1.5배에서 2배 정도 많기는 하나 현장 물가가 비싼 만큼 한국에서의 생활수준보다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경력을 위해서 간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지원자수를 채울 수 있을까 염려스럽다는 의견이다.


현재 중동진출은 순항 중


여러 걱정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사들의 중동 진출은 단계별로 착실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대병원은 미국 유럽 등지의 세계적 병원들을 제치고 UAE 셰이크 칼리파 병원의 위탁 운영권을 따냈고 올해 2월부터 정식진료를 시작했다. 현재 의사 35명을 포함해 간호사, 보건직, 사무직 등의 보건·의료 인력 170명이 파견되어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지역에 2016년 개원 목표로 150병상 규모의 병원을 건립 중이다. 서울 성모병원도 UAE 현지에 한국형 선진 건강검진센터 설립해 선발대로 22명의 의료진이 나가있는 상태이다.

올해 4월에는 순천향대병원이 한화와 손잡고 이라크 비스마야 지역에 5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 계획을 밝혔다. 2018년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약 150명의 의료진이 파견된다.


윤명기 기자/한림

<zzangny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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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옆집의사는 ‘5분대기조’



서울시가 내년까지 응급환자나 재난이 발생할 경우에 이용할 수 있는 ‘통합자원관리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 재난 분야 교수, 전직 소방관 등 전문가 인력풀과 포크레인 등 중장비 정보를 전산망에 입력해 위급 시 한 번만의 연락으로 주위에서 신속히 도울 수 있도록 하는 민간 자원 관리시스템이다.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통합시스템을 통해 ‘옆집 의사’에게 응급상황을 알릴 수 있으면 면 구급대원보다 심폐소생술을 빨리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계, 우리가 노예냐


그러나 의료계는 응급상황 발생 시 도의적인 차원에서 의료인이 자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민간자원 활용 방안을 제도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의사는 24시간 365일 응급대기를 해야 하냐’ 등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의사 A씨는 “탁상행정의 끝이다. 응급환자 발생 시 옆집에 의사가 산다는 이유로 이 사람에게 응급환자를 맡기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의료행위를 했을 때 법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응급환자까지 커버해야 한다는 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의사나 간호사, 소방관의 개인정보가 노출될 염려가 있고 오히려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CPR 교육 및 재난교육을 강화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울시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통합자원관리시스템에 대해 민간과 일절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서울시의 관치독재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서울시의사회는 이 시스템이 군사 독재 시절 민간 자원을 국가 마음대로 ‘징발’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민간 자원을 공무원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약탈하고 휘두르겠다는 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통합자원관리시스템 방안을 즉각 폐기할 것을 촉구하는 것은 물론 방안을 제안한 해당 공무원에 대한 징계도 요구했다. 

전국의사총연합도 서울시의 ‘통합자원관리시스템’ 계획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헌법의 근본정신을 훼손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으로서 즉각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의총은 “서울시의 이번 계획은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을 반강제적으로 민간인에게 떠넘기려는 몰염치한 발상”이라며 “세계 그 어디에서도 민간인을 강제 동원해 응급의료와 재난구호에 나서도록 하는 국가는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인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주거의 자유와 개인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며 “서울시가 도시형보건지소에 쏟아붓고 있는 많은 돈을 응급의료센터에 투입하고 상시 대기하고 있는 응급의료인력과 장비를 확충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 자발적 모집임을 강조


하지만 서울시는 이 사업의 목적은 1차적으로 재난상황 및 응급상황 발생 시 그 피해를 낮추는데 있으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행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그 대상 중 의료인을 포함한 전문가가 포함되는 것은 희망자를 중심으로 통합자원관리시스템 가입 동의서를 받고 시행하겠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의사나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부각된 것 같은데 1차적으로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며 “의사나 간호사 등 의료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전문가를 대상으로 자발적으로 모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응급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초기 대처 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안이라며 재난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사람을 대상으로 소정의 교육을 시킨 후 동의를 얻어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기자/을지

<kim_je@e-mednew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