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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87호(2012.06.07)/오피니언 2012. 6. 11. 18:41 Posted by mednews

자아비판의 글

 

얼마 전, 한 후배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대 본과생 인증글’을 올렸었습니다. 심장순환기학 시간표를 올리며 자신의 하루 일과를 말하며 순전히 ‘힘들다’라는 글이었습니다. 시간표를 볼 수 있는 학교 웹사이트를 캡쳐해서 올렸었는데요, 학교 마크가 남아 쉽게 어느 학교인지 유추가 가능했습니다. 물론 동창생들은 더 쉽게 알아봤죠. 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종종 그런 글들이 올라오는 반면, 실제 ‘신상이 털리면’ 그 자체를 웃음의 근원으로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랬던 것인지, 그 글을 처음 본 저도, 대다수의 모교 학생들도 글의 내용보다는 ‘누가 썼어?’가 첫 반응이었습니다. 한창 그런 반응을 보이며 또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과연 왜 이런 비난의 화살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그 커뮤니티가 저급한 곳이라 그런 글을 올리면 안된다’라는 근거를 든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커뮤니티에 같은 글을 올렸어도 반응은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주로 ‘우는 소리 하지 마라’가 핵심 논조였고 더 나아가 ‘외부에 우리 학교 출신으로서 그런 글을 쓰면 망신이다’라는 논조도 많았습니다. 첫 번째가 논조라면 포용과 격려가 원칙일 텐데요. ‘다들 힘드니 그 정도는 혼자 이겨내라, 힘내라’라는 말보다는 ‘대놓고 징징거리다니 쯧쯧’과도 같은 반응이 많았던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학교 출신으로서’ 부분은 더욱 이해가 안되더군요. 우리 학생들 내부를 제외한 다른 소통 공간을 외부라고 칭했을 때, 우리 학교 학생, 나아가 의대생은 외부에 힘들어도 묵묵히 다 해내는 철인과도 같은 존재로 보여야 하는 것일까요?
생각은 생각을 낳아, 저는 이를 폐쇄성에 기인한 현상이라고 봤습니다. 또 어쩌면 내재된 선민의식의 발현이라고까지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국의 200만명이 넘는 대학생 중 2만명의 의대생, 특히나 저는 한 학년 40명, 총 240여명의 소(小)의대에 다니고 있으니만큼 폐쇄성은 더욱 크겠지요. 학교에서도 보편적인 학생만을 지향하고 있으니 만큼 개개인의 독특함은 자의로 또 타의로 깎여 나가며 아주 약간의 돌출로만 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와중에 외부에 자신의 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학생은 보편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그 개성을, 독특함의 발로를 깎아서 다시금 내부로 가둬야 할 대상이 되지 않을까요.
만약 더 많은 학생이 있는 학과였다면 어떤 반응이었을지도 궁금합니다. 기껏해야 240명 중 한 명, 혹은 2만명 중 한 명이 아닌 더 큰 수 중 한 명이었다면 조금 더 객관화가 가능하진 않았을까요? ‘나만 힘들어하는게 아니구나, 혹은 저게 힘든 부분일 수 있구나’와 같은 반응은 없었을지요. ‘우리는 엘리트이기에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 또 소수이기에 나 자신에게 선망의 시선이 아닌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글은 자제하라’라는 글이 없었기에 다행입니다.
글을 쓴 학생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아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 학생이 트집잡을 거리라도 있었으면, 학교 내에서 발언권이 약했다면 더 무슨 모습을 봤어야만 할지 무섭네요. 슈퍼키드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어쨌든, ‘잘 살고 볼 일입니다’

 

한중원 편집장
<edito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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