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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81호(2011.06.08)/오피니언 2011. 6. 10. 01:04 Posted by mednews

의대생의, 의대생에 의한, 모두를 위한

우리말의 관용적인 표현들 중에 “병원 신세를 진다”, “의술을 베푼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사를 부를 때에는 나이가 자기보다 어리더라도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모든 직종에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렇게 실천하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보편적인 용례에 비추어 볼 때 선생님이나 신세, 베풂 등은 의사가 단지 과학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채 몸의 병을 고치는 기술적 서비스만을 제공하는 사람이라면 썩 어울리지 않을 표현들입니다.

비록 허구적인 환상에 일부 기인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의료인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함축적 의미는 그렇게 단순한 것 같지 않습니다. 우월주의로 흐르는 것은 위험하지만, 또 다소 부담스럽기도 한 요구이지만, 의사에게는 직업적인 공간을 벗어나서도 인품과 소양을 갖추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기대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의사를 양성하는 시스템은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꼭 적합해 보이지 않습니다. 병원과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힘든 제한된 생활반경, 방대한 학습량에 질식되어 친구들은 물론 자신과도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버거운 시간적 제약, 선택폭도 숨쉴 틈도 없이 채워져 나오는 시간표,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답답한 공기, …….

공감이나 유대를 형성하는 능력은 퇴보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자아를 확인하지 못한 위태로운 영혼은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소모적인 만족에 탐닉하기 쉽습니다. 취향이나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학문에 젊은 열정을 바친다고 아름답게만 이야기하기에는 부수적으로 희생시켜야 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이번 지면에서 의대의 문화나 대학 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을 담고, 나아가 새로운 가치들을 시도하는 다양한 활동과 역할을 소개한 것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의대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즈음, 예비의료인의 전반적인 자질에 대한 원로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소양이라든가 일상의 안녕감은 어느 정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당시 강의 내용의 골자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자유를 만끽 중인 예과 1학년의 귀에 썩 깊이 와 닿을 내용은 아니었던 만큼,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들어넘긴 채 다시 신입생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놀기에 집중했었지요.
본격적인 의학 공부가 시작되고 다소간 적응이 필요하던 시기를 거치면서 그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새삼 이해되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는 정말 그렇기만 할까 하는 막연한 의구심이 떠나지 않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유방암 환자의 생존곡선을 보여준 강의슬라이드에서 온갖 신약과 첨단 의료의 적용보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정서적 지지가 생존 기간 연장에 훨씬 더 큰 효과를 갖고 있다는 결과를 만나고서 의구심은 더 이상 의구심만으로 남지 않게 되었고요. 병동과 진료실에서 환자나 보호자를 만나며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요즘은 그 의문부호가 틀리지만은 않았다는, 어쩌면 순진할지도 모를 믿음을 쌓아가는 중입니다. 환자와의 관계에서나 사회와의 관계에서나 의사에게 주어질 역할을 생각한다면 의대생이 어떤 삶의 양식을 추구하도록 권장되어야하는지 한 번쯤 고민이 필요합니다.

편집장 최성욱
<editor@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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