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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의 대한민국은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단정적인 표현이 불쾌하다면 지금 여러분이 앉은 자리 주변에서 용이 된 개천 출신자를 꼽아보라.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를 둔, 혹은 여러분의 화장실과 교실을 청소해주는 용역 청소원 어머니를 둔 의대생들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진나라 때 진승과 오광은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는가’를 외치며 정의로운 사회를 간절히 바랬다. 이 천 년이 훌쩍 넘은 지금, 이곳에서 ‘정의’를 이야기함이 무색한 것은 그들이 부르짖던 말을 여전히 힘주어 이야기해야하는 현실 때문이다. 즉, 왕후장상의 씨는 여전히 따로 있고 지금 우리는 그 대표적인 사건을 목도할 수 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이하 외통부) 장관의 딸의 외통부 계약직 특별채용 당시 특혜가 주어졌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외통부를 포함한 고위층의 특채 내역이 낱낱이 공개되고 있다. 일례로 홍정욱 의원이 발표한 ‘전현직 외통부 장차관 및 3급 이상 자녀의 외통부 및 재외공관 근무현황’을 살펴보면 외무고시 2부 시험, 즉, 재외동포 특별채용에서 외통부 고위직 자녀의 비율은 41%였다. 여기에 고위직 자녀의 범위를 국회의원, 외통부 이외 고위직 자녀 및 재벌가 자녀까지로 확대할 경우 비율은 80%로 늘어난다.
채용 당시의 특혜뿐만이 아니다. 소위 ‘로열패밀리’로 불리는 이들은 외교관이 된 이후에도 ‘평민’ 부모를 둔 외교관들은 상상할 수 없는 특혜를 누렸다. 재외동포 출신자인 2부 시험 합격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던 영어권 국가 해외연수 제도를 누리는가 하면, 로스쿨 금지령이 한시적으로 풀렸다가 다시 묶이기도 했고, 외통부 직원이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요직인 북미, 유엔, 중국, 일본대사관을 거쳐 간 비율은 100%였다.
외교가에서 이런 특혜의혹이 불거진 핵심적인 이유로 전문가들은 ‘배타적 순혈주의’를 꼽는다. 즉, 외통부 고위간부 대부분이 외무고시 출신이기 때문에 ‘엘리트적 폐쇄성’이 유발되었고, 한 번의 발령으로 온 가족이 영향을 받는 탓에 윗선에 잘 보이기 위해 부당한 지시를 받더라도 거부하기 힘들기 때문에 ‘상명하복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에 오랜 시간 국외 생활을 같이 하면서 폐쇄적인 사회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문화가 견고히 형성되었고 이것이 배타적 순혈주의를 형성했다는 지적이다.
‘로열패밀리’, ‘배타적 순혈주의’, ‘엘리트적 폐쇄성’, ‘상명하복 문화’. 이런 이야기에 익숙하지 않은 의대생은 없을 것이다. 대학병원 사회에서 이런 문제점이 지적되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까닭이다. 전공의 선발 시 자교 교수의 자녀에게 특혜가 주어지는 사례는 마치 관례처럼 당연시 되고 있는 실정이며, 교수 임용 때도 타 학과에 비해 자교 출신에 대한 선호가 월등히 높은 까닭에 결국 동종교배로 인해 혁신이 정체되는 결과를 빚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는 외통부의 특혜시비를 반면교사 삼고 진중하게 자성할 필요가 있다. 부모, 국적, 성별, 인종 같이 선택 불가한 인자들에 의해 차별 받지 않는 사회. 그것이 ‘정의로운 사회’인 까닭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의로운 사회란 다양한 선택지의 하나가 아닌, 모두가 노력하며 경주해 갈 도달점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