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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펴 내려놓아야 할 때


서울 양천구 D의원에서 C형 간염 집단 발병 사태가 일어난 지 3개월이다. 당시 K원장과 그 부인의 주사기 반복 사용, 주사액 재사용 등의 행태로 K원장 본인을 포함해 60여명이 C형 간염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의료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도 큰 파장을 일으켰다. D의원 방문자 중 C형 간염 발병자 수는 16년 3월 현재 97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일부 환자는 B형 간염에도 감염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지 두 달도 안 되어 원주의 H 정형외과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이번엔 규모도 더 커서 현재 217명의 감염자가 있다고 하며, 무려 주사 시술을 받은 환자 10명 중 3명에 이르는 높은 감염률을 보였다. 겨우 두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시민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을 것으로 생각된다.

D의원에 대한 조사는 D의원에 방문한 적이 있는 2,266명의 환자들에 대한 전수조사로 이루어졌다. 그 중 검사가 완료된 환자가 1,672명이니 이환된 환자의 수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원주의 경우도 가장 위험한 PRP 시술을 받은 이들 중 2/3만이 검사를 받은 상황이라 백 명이 넘는 환자가 더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충북 제천에서도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이에 정부는 이 사건들이 모두 내부자의 신고에 의해 적발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의료기관 내 종사자 혹은 환자에게 재사용 관련 공익신고를 요청하는 동시에 포상금을 제시하고 있으며, 건보공단과 심평원 내 자료를 통하여 의심기관을 정해 3~5월 사이에 현장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구체적의로는 의료법 36조 의료기관 개설자 준수사항에 ‘감염관리에 관한 사항’을 추가해 1회용품 재사용으로 인해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경우 의료기관 개설자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나아가 면허 취소에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2천만원 이하의 벌금 규정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계에서는 의사의 과실이라는 점은 분명히 인정하지만, 해법이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로만 진행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은 2월 17일 상임이사회를 열어 치료재료에 대한 적정 수준의 수가 보전도 함께 강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100원도 되지 않는 주사기까지 아끼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현행 수가 체계가 기형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의료용 소모품들에 대한 수가는 원가보다도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가체계 탓이 있다는 것이 정말 합리적인 주장일까? 몇몇 비싼 수술용이나 고급 술기용 소모품의 경우에는 한 번에 2~3만원 이상의 적자가 나는 물품들도 분명히 있지만, 일회용 주사기를 재사용하여 D의원 측에서 얻었을 이익은 많아도 하루에 2천원을 넘지 못 했을 것이다. 수익이 섭섭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D의원 측에서 금전적인 이유로 주사기를 재사용했으며, 본인과 본인의 부인까지 C형간염에 감염되도록 했다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추후에 발각된 두 사례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입장 표명에는 의사들 사이의 견고한 카르텔이라는 배경이 숨어 있다. 고대의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현대의 제네바 선언에는 모두 의료인으로서의 명예와 위엄있는 전통을 지킬 것이며, 의료인 동료 모두는 형제며 자매라는 내용이 있다. 이 부분은 의사들의 선서 내용들 중 가장 잘 지켜지는 항목이다. 한국과 같은 기형적인 의료시장에서는 이 따뜻한 형제애가 더 강력한 힘을 가진다. 안 그래도 다 같이 힘든데,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니 어지간히 심각한 것이 아니면 서로를 건들지 말자는 것이다. 이런 풍조 아래 묵인되는 윤리적이지 않지만, 불법은 아닌 일들이 어디 하나 둘인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면 당연히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의사들의 당연한 추론이 있다. 그래서 처음 이 주사기 사용 문제 제보가 나왔을 때 의사들의 반응은 ‘소설 쓰지 말라’였다. 합당하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전제가 맞다면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렇지 못 한 주체에 의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D의원에서 왜 이런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미궁 속에 있다. 금전적 추론도, 타인을 해치려는 의도도 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는 와중 3월 4일, 원주의 H 의원 원장이 59세의 나이로 끝내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2월 29일 10시간에 달하는 경찰 수사를 받았고, 사체로 발견된 당일에 2차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또 하나의 비극이다. 원인은 밝혀지지 않을 것이고, C형 간염을 얻은 환자들에겐 더 이상 피해보상을 요구할 주체가 없다.

상자 속 주먹 하나 겨우 들어갈 구멍에 손을 넣어 사탕을 가득 쥐게 되면 손을 꺼낼 수 없게 된다. 다 내려놓지는 못 하더라도, 적어도 조금은 내려놓아야 여유가 생긴다. 지금 의료계가 마주한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 오랜 노력으로 얻은 전문직의 권위와 명망을 몇 명의 이유도 모를 기행으로 포기해야 한다거나, 처벌이 강화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그래서 의사들 스스로 자정 작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으면 어떨까? 의사의 처벌에만 집중되는 정부의 대처가 부조리하고 납득할 수 없다면,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대안을 의료계에서 직접 내 놓는 것이 더 좋은 길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미래의 한 의사의 비극적인 결말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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