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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미달에 내과학회는 수수방관인가

 

내과는 의학의 꽃이요 왕도다. 대학병원에는 내과 교수가 가장 많기 마련이다. 많다고 하여 그들이 한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항상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 존재감이 약한 것도 아니다. 내과 교수에게는 다른 분과 교수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다. 그건 아마도 스스로에 대한 깊은 자부심일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의학의 축이라는 자부심, 온갖 병태생리와 약물에 대한 깊은 이해가 그들을 빛나는 길로 이끄는 듯 하다.
그리고 그 빛나는 길 주변에는 전공의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심하면 혼자서 30명 이상의 환자를 담당하며 쪽잠을 자다가 깨어났다가를 반복하고, 백 일 동안을 집에도 가지 못하며 일하는 내과 전공의들이 환자들 앞에서 미소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언젠가 자신도 스텝으로서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한 사람의 전문의로서 참여하거나, 미래에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기대, 혹은 그 둘 모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요성에 걸맞게 내과가 전통의 강자로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적어도 위의 둘 중 하나는 기대해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늘구멍과도 같아진 임용의 길이야 없었던 셈 치더라도 적어도 개원과 봉직 둘 모두를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수술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인턴들에게 내과는 참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의대 공부의 절반 이상이 내과인데, 누군들 배운 것을 업으로 당당하게 바이탈을 잡고 싶지 않겠는가.
2010년, 내과는 1.42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리고 2011년 1.39대 1, 2012년 1.34대 1, 2013년 1.29대 1로 점점 미미하게 감소하다가 마침내 2014년에는 1.09대 1, 2015년에는 0.92대 1로 정원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내과 전공의 모집 이래 최초로 있는 일이다. 내과의 미달사태는 심각한 문제다. 대학병원은 모든 분과간의 컨설트를 통해 유기적으로 작용한다. 내과 전공의의 부족은 내과 병동의 혼돈을 불러일으킬뿐만 아니라 나아가 병원 전체의 무질서를 불러온다.
올해초 이 사상초유의 내과 전공의 미달 사태는 많은 의사들, 그리고 병원 구성원들의 가십거리였다. 정원이 모두 있어도 심각한 격무는 진정 ‘살인적인’수준이 되었고, 상반기 많은 병원의 내과 레지던트들이 단체 파업을 해 관심을 끌었지만 그 당시 뿐이었다.  어떤 전공의들도 갑인 병원 앞에서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왔고, 그렇게 반 년이 지났다.
지난 8월 11일, 대한병원협회는 후반기 전공의 모집 인원을 확정하고 14일부터 접수를 받았다. 당시 전공의 모집을 공고한 병원은 104곳, 그 중 내과 전공의 자리는 125석에 달했다. 많은 기대를 품었던 모집 결과, 뚜껑을 열어보니 21명에 불과했다. 그 중 서울대 2명, 서울삼성병원 1명이 초과지원이므로 모두 합격처리된다 해도 실제 충원되는 전공의는 18명에 불과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전반기 모집 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는데 기회를 한 번 더 만든다고 해서 다른 결과가 나올 리가 없다. 근거 없이 기대한 핑크빛 전망은 허황된 망상에 불과했다. 오히려 메르스 사태 때 호언장담과는 달리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고 폐업하는 병원들을 바라보며 의지가 더 꺾였을 것이다.
사실 이런 사태에 대해 분노하거나 곱씹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반년 이상 충분히 논의된 사항이며, 문제가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형적인 수가체계와 그에 따른 개원가의 몰락 때문이다. 원격의료에 대한 불안감도 한 술 거든다.
수가체계와 같이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토는 문제 당사자들을 허무하게 만들기 쉽다. 결국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관계없이 문제제기는 꾸준히 해야 언젠가 의료의 정상화를 이룰 수 있겠지만, 당장은 의사와 병원이 시도할 수 있는 해결책에 대해 논해보고 싶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과거 외과의 많은 영역들이 내과로 옮겨왔다. 대표적인 예가 내시경이다. 최소한의 침습적 시술로 환자들을 진단하고 치료까지 할 수 있게 됨으로써 내과의 지위는 더욱 상승했다. 그러나 이는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신식 술기들을 할 수 없는 내과의사는 결국 그 권위를 누리지 못하는 반쪽짜리로 전락할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학생들에게 신체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경우 영상이나 술기를 통해야만 결정적인 진단이나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형적인 수련 환경은 갑인 병원이 반쪽짜리 의사를 찍어내게 만들었다. 결국 술기는 내과 전공의들에게 ‘완전’해지기 위한 하나의 퍼즐이 되었다. 분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정적인 것을 인질로 삼는다면 그것을 얻기 전까지는 수련을 마쳐도 결국 미생에 불과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올 상반기 파업한 내과 전공의들의 요구사항은 ‘일을 줄여달라'가 아닌, ‘제대로 된 교육환경을 보장해달라’라는 것이었다. 병원의 말대로 전공의가 완전한 직업이 아닌, 교육생이라는 이유로 처우와 급여를 보장해줄수 없다면 교육환경은 확실히 보장해주는 것이 맞지 않는가. 가끔 파업한 이들에게 딱지처럼 붙이는 ‘환자를 버린 사람들’이라는 꼬리표, 과연 병원측에서 붙일 수 있는 것일까. 
내과는 분명히 의학의 가장 중요한 축이다. 그리고 그 축이 흔들리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비단 내과 구성원만의 문제로 끝날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비뇨기과는 3년간 정원을 50%이상 줄이는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후반기 모집도 실패는 변화 없이 요행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내과학회도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을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