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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대의 교육개혁이 혁신이 되려면

 

연세의대가 수십 년간 이어오던 상대평가제도를 폐지하고 새로운 교육 평가 방식을 도입한다. 개혁안의 골자는 모든 과목 성적에서 학점제를 폐지하고 ‘Pass or Non-pass’로 평가하자는 것이다. 임상실습교육도 강화하여 의학과 1학년부터 모형 환자를 활용한 교육을 실시한다. 학생의 연구활동에도 지원을 대폭 늘리며, 학생들은 이 모든 교육과정을 수료하면서 포트폴리오에 스스로의 학습에 관한 보고서를 남겨야 한다.  높은 성취도를 유도하기 위해 특정 과목에서 상위 25% 성적을 받은 학생에게 해당 과목에 ‘Honor’ 등급을 부여한다. 학생들의 가장 큰 우려인 대량 유급 사태의 발생을 막기 위한 제도도 마련했다. 2개 이하의 과목에서 ‘Non-pass’ 등급을 받은 학생은 재교육을 통해 다시 ‘Pass’ 등급을 받을 수 있다. 일종의 계절학기와 유사한 구제(救濟)제도인 것이다. 또 이미 유급한 학생의 경우에는 ‘Non-pass’ 등급을 받은 과목만 재수강하고, 남는 시간에는 상위 학년의 과목을 미리 이수할 수 있는 선이수제도(Advanced Placement)를 통해 학습 적응력을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예상되는 어려운 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 점이 인상깊다. 이러한 제도는 연세의대의 교육과정개발사업단이 3년의 연구 끝에 만들었다. 사업단의 연구진만 60여명에 달한다고 하니, 과연 연세의대의 교육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전국에서 최초로 시행하는 교육제도인 만큼 여전히 걱정의 목소리는 많다. 첫 번째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Pass’하는 것에 안주해버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 현재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실시하는 선택실습제도도 많은 학생들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연구 활동 확대와 포트폴리오 작성 등이 제대로 자리를 잡겠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의학교육을 주도하는 현직 의대 교수들부터 의대 학생들 중 일부까지 보수적인 의대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많다.

미국 상위 25개 중 대다수의 의과대학과 일본의 도쿄의대, 오사카의대, 교토의대에서는 이미 절대평가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실제 연세의대도 이러한 학교들을 직접 찾아가 보고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연세의대의 교육 제도가 국내 최초라고는 해도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유별난 제도는 아니란 것이다. 다만 국내에 41개 의과대학이 거의 흡사한 교육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세의대의 행보는 돋보일 수밖에 없다. 의료계 전반에 걸친 보수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러한 제도 개혁은 이미 준비과정에서부터 혁신(革新)이라고 볼 수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을 불러일으킬만한 혁신을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절대평가제도라는 혁신의 깃발을 들고 나선 연세의대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이다. 연세의대가 논란을 불식시키고 수십 년째 답보 상태인 의학교육에 교육 제도 발전의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