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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인 자법인 설립 허용, 계속되는 논란

- “재정 위기 겪는 중소 병원을 위한 방안” vs “금융자본의 희생양, 사무장 병원의 확대 등 불 보듯 뻔한 부작용”

 

지난해 정부는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보건의료단체 및 시민단체들은 의료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두고 의료 민영화라 할 수 없다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허용뿐만 아니라 원격의료, 건강보험제도 개선, 관치의료 등 산재해있는 의료계의 문제점들을 개혁하기 위해 지난 12월 15일 여의도에서 전국의사궐기대회를 열었다. 이에 더해 의협은 3월 총파업 투쟁을 예고했고, 사태의 진화에 나선 정부는 의협과 ‘의료발전협의회(이하 협의회)’를 구성하여 수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했다. 2월 19일에는 협의회에서 원격의료 및 자회사 설립 허용과 관련한 의료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먼저 의결한 후 국회에 심의요청 하기로 합의하기로 결론을 냈다. 협의결과가 발표되자 보건의료노조, 간호사협회, 한의사협회, 치과의사협회, 약사협회는 일제히 이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의협은 협의회에서 결정한 사항은 의료민영화 저지를 위해 관련단체들이 뜻을 하나로 모아 형성한 공조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처사라며 비난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 현안을 해결하는 자리에서 리더역할을 자처했다가 도리어 의료 민영화에 동의한 역적으로 몰린 것이다. 의협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기는 마찬가지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협의내용에 불복하여 의협 내에서 대(對)정부투쟁을 위해 설치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찬성 측과 반대의 논리 싸움이 팽팽하다. 의료시스템을 흔들 수 있는 덩치가 큰 사안이라 여러 집단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복잡한 양상의 갈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허용 ▲ 시장의 진, 출입 및 영업규제 개선 ▲ 해외환자 유치 촉진 ▲ U-health 활성화

 

민영화냐, 아니냐 정부와 반대 진영 간 공방

 

정부는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더라도 건강보험제도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 허용은 민영화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건강보험제도 당연지정제가 우리나라 의료의 공공성을 지키는 기둥이라 보고 있는데 이 기둥이 건재하기 때문에 민영화와는 거리가 먼 정책이라는 것이다.
반면, 반대진영에서는 민영화란 그동안 국가가 책임지고 운영해왔던 것을 시장의 영역에 있는 자본을 끌어와 그들의 영리추구 활동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동안 의료법인은 모두 비영리법인이었다. 여기서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은 영리추구를 하냐 마냐의 문제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의료법인에서 발생한 수익을 병원의 외부로 돌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자법인 설립을 허용하게 되면 의료법인의 수익을 외부자본에 배당하는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의료법인이 영리법인이 될 수 있는 합법적인 루트가 생기는 셈이다. 의료법인의 경제적 손실을 메우고 수익을 보장하기 위해 외부자본의 투자에 기대는 것이 그동안 있었던 민영화의 큰 틀에 부합한다. 반대 측에서는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건강보험제도, 당연지정제와 더불어 영리법인 불허를 통해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공공성이 지켜진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정부의 자법인 설립 허용은 의료영역의 공공성을 보장해주는 ‘영리법인 금지’라는 중요한 축을 무너뜨리는 조치라는 것이다.


악화된 병원의 재정상태 개선이 시급

 

정부가 4차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이유는 현재 자법인 설립과 부대사업 범위가 제한되어 있어 병원 경영의 효율성과 수익성이 저하되어 있다고 판단해서다. 현재는 의료인이 의료사업 뿐만 아니라 장례식장, 주차장 등의 부대사업을 직접 경영해야 한다. 경영지식이 없는 의료인이 이러한 사업을 운영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의료법인과 학교법인 사이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 되었다. 의료법인은 자법인을 설립할 수 없지만 학교법인인 서울대학교 병원의 경우는 ㈜헬스커넥트 와 같은 자법인을 통해 체계적인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며 수익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의료법인과 학교법인간의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자법인 설립 허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병원의 폐업률이 증가하는 등 병원의 수익구조 악화로 인한 의료법인의 경영난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의료서비스 질 저하 우려되므로 하루빨리 경영난을 개선할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

그러나 반대 측은 대다수 병원들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이유는 비정상적인 수가구조 및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등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가인상이나 체계정비 등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을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미봉책으로 현재의 문제를 봉합하려고만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진단명은 나와 있는데 엉뚱한 치료법으로 환자를 치료해봤자 그 환자가 좋아질리 없다는 것.

 

금융자본 개입으로 의료법인은 더욱 궁핍해질 것

 

또한 정부가 제시한 부대사업의 독립법인화 계획을 살펴보면, SOC 민자사업자의 전형적인 수익 빼돌리기 모형(그림1 참고)을 빼닮았다고 지적한다. 자법인이 의료법인에 주는 배당금을 축소하기 위해 투자자에게 일부러 고금리로 돈을 빌려 오히려 의료법인의 재정을 더 악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서울시의 지하철 9호선 대주주였던 맥쿼리인프라투자융자는 필요하지 않은 부채를 고금리로 빌려쓰며 투자회사는 자본잠식이 되면서도 투자자에게는 이익을 보장해주는 기형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이와 같이 고금리 부채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을 요금인상을 통해 메우려하다가 서울시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패소하고 지하철 사업에서 철수한 바 있다. 정부가 제시한 ‘독립법인화 계획’에 투자자로 명시되어 있는 자산운용사, 벤처캐피탈 등 국적불명의 소위 투기자본은 단기수익을 추구하는 금융자본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러한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애매한 사무장 병원 양산

 

그 밖에도 의료법인 간의 인수합병이 가능하고, 의료기기 및 의료시설을 임대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항목에 대해서는 ‘기업형 사무장 병원’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잘 알려진 몇 개 네트워크 병원(예: 고운세상피부과, 365mc 비만클리닉)은 MSO(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와 연결되어 있다. 이들 회사는 병원 개업과 운영에 대해 경영지원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법인 설립이 가능해진다면 이들이 자법인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의료기기 및 의료시설물 임대도 합법적인 부대사업이 되고 병원 시설과 인력을 이용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게 된다. 현재는 의료인만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본금을 가진 사람이 병원을 설립하여 의료인의 명의만 빌려서 운영하는 경우 소위 ‘사무장 병원’이라 하여 강력히 규제하고 있지만 음성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 만일 MSO가 자법인 설립 허용에 탄력을 받아 본격적으로 의료사업을 벌인다면 불법적인 사무장 병원과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들 회사는 수익을 내기 위해 과다하게 광고하고 과잉진료, 비급여 진료 항목을 늘려서 결국에는 의료의 질 저하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용어 돋보기>
의료민영화란 대체 무엇인가?

 

의료민영화란 용어의 사용을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민영화란 국가에서 운영하던 영역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 의료기관의 90% 이상은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으므로 이미 의료‘공급’은 민영화가 되어있는 상황. 따라서 무엇이 민영화인지를 놓고 명확한 답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의료민영화와 관련된 여러 용어들을 정리해본다.

 

·의료영리화 : 의료법인은 영리법인이 될 수 없다는 규제를 풀어주는 것. 본문설명과 같이 의료영리화가 진행되면 의료법인의 수익이 병원의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된다.

 

·의료보험민영화 :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상당부분 민간의 영역에 맡겨지는 것. 현재 한국식 의료제도와 같이 의무적으로 의료보험에 가입해서 보장받는 시스템이 없어지고 잘 알려진 미국식 의료제도처럼, 각 국민이 민간보험에 가입하여 의료서비스를 받는 형태. 정부가 자법인 설립의 허용이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고 한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의료‘보험’의 민영화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혜란 기자/조선
<hr0616@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