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편집자가 독자에게

95호(2013.10.17)/오피니언 2014. 4. 23. 00:36 Posted by mednews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숫타니파타 (법정 스님 역)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또는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에 경험했던
즐거움과 괴로움을 내던져버리고
쾌락과 우수를 떨쳐버리고
맑은 고요와 안식을 얻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눈을 아래로 두고
두리번거리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관을 억제하여
마음을 지키라
번뇌에 휩쓸리지도 말고
번뇌의 불에 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 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
한번 타버린 곳에 다시는 불이 붙지 않듯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안일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용맹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의 기쁨을
적당한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상을 저버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않으며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않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은 종종 일상의 부대낌으로 얼룩집니다. 얼룩도 가지가지인데, 스스로가 직접 느끼는 일상의 크고 작은 희노애락부터 직접 의식하지 못하는 숨은 마음이 외부에 투사(projection)되어 나타나는 모든 감정들까지-참 다양합니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얼룩을 방치하면 때가 굳어져 더욱 다루기 힘든 번뇌로 커져 버리는데, 그래서 사람으로 살아있는 동안엔 의식을 싹싹 닦아 깨끗이 비우는 주기적인 청소가 필수입니다. 

제가 마음을 청소하는 방법은 읽기와 명상입니다. 읽기의 대상은 묵은 때의 종류에 따라 선택되는데, 많은 글들 중에서도 불교 경전이 가장 효율이 좋으며 다변적 응용이 가능한(?) 청소시스템이더군요. 독자분들에게 혹여나 도움이 될까 싶어 최근 즐겨 읽었던 숫타니파타를 실어보았습니다.
  
숫타니파타(Sutta-nipata)는 최초의 불교 경전입니다. 숫타(Sutta)는 팔리어로 ‘경(經)’, 니파타(nipata)는 ‘모음’을 뜻하여 ‘부처님 말씀을 모았다’라는 의미죠. 한국에도 여러 가지 역본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법정 스님의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은 역본의 일부이고요.    

본몬에 나오는 번뇌들- 탐냄, 속임수, 갈망, 애착, 즐거움, 괴로움, 쾌락, 우수, 헤매임 -은 모두 ‘Ego’, 혹은 ‘가짜 나’에서 비롯됩니다. 이들은 매우 교묘해서 누구나 속기 쉽습니다. ‘신념’이라는 탈을 쓰고 나타나 나와 남을 헤아리는 걸 방해하고 맑은 진리를 가리죠. 그 결과 항상 혼탁한 마음으로 고뇌하는 어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진리는 단순하고, 진리를 추구하는 상태에선 고요하고 맑은 행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만약 내가 그렇지 않은 상태라면 그것은 지금 내가 잘못된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진짜 나’가 알려주는 것입니다. ‘세상이 날 알아주지 않아서, 남들이 잘 몰라서 내가 고통 받는다’는 생각은 ‘진짜 나’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있는 것이죠. ‘가짜 나’는 남 탓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당장은 편하고 쉽게 위로받지만, 그는 스스로를 알지 못해 ‘위로 -> 진리 모름 -> 힘든 삶 -> 위로’의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이 고리를 깨는 것은 오로지 ‘진짜 나’뿐입니다. 모든 얼룩을 제거하고 드러난, 비어있는 맑은 바탕, 그게 바로 진짜 나입니다. 행복은 진짜 나에게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고요. 불교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본래는 ‘진짜 나’의 삶을 살았었다고 합니다. 다만 오래토록 찾지 않아 가려졌을 뿐이죠. 언제 행복이 오나, 기다리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마음을 닦아봅시다. 

모든 번뇌를 단칼에 꺾어버리고 용맹 정진으로 나아가는 삶! 함께 추구해보아요.

 

김정화 편집장/한림
<editor@e-mednews.com>

'95호(2013.10.17) > 오피니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  (0) 2014.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