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rss 아이콘 이미지

산업장 유출 사고로 되돌아본 의학의 책임

 

 

구미 불산 가스 유출 사고,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의 불산 유출, 당진 현대제철소 가스 유출 청원 렌즈공장의 황 성분 가스 유출. 모두 작년부터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산업재해들이다. 작년 구미의 불산 유출된 사고로 공장근로자 5명은 목숨을 잃었다. 뿐만아니라 공장이 위치한 산동면 봉산리를 중심으로 농작물과 가축 피해, 지역주민들의 건강까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사고가 잊혀질 때 즈음, 또 다른 공장의 누출 사고가 신문 사회면을 장식했다. 당진 현대제철소에서 아르곤 가스 누출로 인한 산소부족으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삼성 화성사업장에서 불산 누출로 1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사망자가 나온 3개월 뒤 또 한 번의 누출사고가 발생해 근로자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렌즈공장의 사고에서는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220여명이 병원으로 후송되어 검사를 받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전에도 서너 차례나 가스유출로 인해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한 사실도 밝혀졌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 건강, 생업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산업장 유출 사고. 이러한 사고들을 막기 위한 예방의학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살펴본다.
 
산업장의 이상과 현실
: 안전과 효율의 거리

 

예방의학의 한 갈래인 직업환경의학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산업장 안전관리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예방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운영되는’ 산업장의 모습을 살펴보자. 작업장의 유해인자를 평가할 수 있는 전문가는 산업 현장에 존재하는 유해물질의 종류와 그것이 인체에 미칠 영향을 평가한다. 사업주는 그 평가를 수용하고 설계 단계 이전부터 영향에 대한 대비책을 세운다. 공장시설이 완비된 후, 사람이 일하는 공정과정에서 미처 예측하지 못한 유해 물질이 발견될 경우 사업주는 해당 공정을 자동화하거나 폐쇄된 시스템으로 바꾸는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사업장의 노동자와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다. 이미 가동 중인 사업장이라면 원료물질을 유해하지 않은 것으로 교체하거나 장비나 공정을 바꾼다. 더불어 환기시설을 설치하고, 유해인자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작업할 수 있도록 원격자동조정이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현실은 어떨까. 산업안전보건법 제42조는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작업환경측정을 규정 및 의무화하고 있다. ‘작업환경 중 존재하는 소음, 분진, 유해화학물질 등의 유해인자에 근로자가 얼마나 노출되고 있는지를 측정·평가하여 문제점에 대한 적절한 개선을 통해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함으로서 근로자의 건강과 생산성의 증진에 기여해야 한다.’ 법안에 따르면, 작업환경측정 결과 문제점이 발견되면 사업주에게 알려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의무이다.
그러나 새로운 설비를 갖추거나 독성이 더 적은 원료로 변경하는 것은 모두 비용이 들어가는 일. 백 명 중 아흔 아홉 명의 사업주에게, 예방의학자들의 조언은 귀 기울여야 할 필히 검토해야할 위험요소라기보다 사소하고 성가신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위험물질이 분비되는 공장 인근지역의 주민들은 그런 위험을 알고 있을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며, 설령 알더라도 사고의 발생 가능성과 그 사고가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그다지 촉을 세우지 않는다. 공장 하나가 들어서면 그 지역에는 일자리가 생기고, 인구가 유입되어 경제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현대와 삼성 같은 대기업이라면 완벽에 가까운 최첨단의 공장 설비와 안전시설을 갖추고 있을 법 한데, 가스 누출 사고로 인한 사망사고가 적지 않다. 어째서일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유해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는 정교한 안전설비 구축과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는 상당히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가장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하청업체에 공정을 맡기는 것. 자본이나 시설이 대기업보다 훨씬 열악한 하청업체 역시 썩 달가울 리 없으나 먹고 살기 위해 대기업의 요청에 응하고, 안전에 대한 관리는 당연 소홀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다루고 있는 유해물질에 대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결국 대부분의 누출사고가 대기업이 하청을 준 업체에서 발생하게 된다.

 

산업장의 근로자 안전,
직업환경의학이 담보할 수있을까

 

기업과 하청업체가 담보할 수 없는 산업장의 안전을 의학이 관리할 수 있을까. 최근 직업환경의학에서 그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직업환경의학은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직업의학(Occupational medicine)’과 작업 환경에 포함된 유해인자로 발생하는 건강장해를 예방, 진단 및 치료를 담당하는 ‘환경의학(Environmental medicine)’으로 구성된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사는 사업장(회사, 기업)내에 보건에 관한 기술적인 사항에 대하여 사업주 또는 관리책임자에게 조언을 하고 근무 환경과 직장 생활이 임직원들의 건강에 유해하지 않은지 연구를 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이 가장 집중하는 것은 근로자들의 건강. 산업장에서의 직업성 질환의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와 기술적 문제 개선을 위한 자문 역을 맡는다. 최근에는 직업성 질환에 국한되지 않고 심혈관계 질환이나 만성질환, 정신건강에 이르기까지 근로자들의 체계적인 건강관리 시스템을 제공하는 사업장도 늘고 있다. 단순한 질병예방을 넘어서, 사업장 전체의 건강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

 

Dead Space없는 100% 예방

 

근로자의 건강이 사업장의 생산성, 나아가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맡고 있는 일의 특성 때문에 직업성 질환이 생기지 않도록, 이미 질병을 얻은 경우라면 산업재해에 의해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산업장과 관련된 건강관리를 근로자의 건강에 국한시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비록 급박한 대형사고는 아닐지라도 지역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만성적 소형사고’의 위험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근로자 개인의 건강 및 산업장 안 물질의 평가는 직업환경의학, 공장기계의 설비 및 관리는 하청업체가 힘쓴다 하더라도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 가능성 자체를 봉쇄하는 예방의 영역은 현재 ‘사강(dead space)’으로 남겨져 있다. 예산과 기술의 부족을 이유삼는 공학과 관리감독의 책임을 지기 버거워하는 기업과 환경부도 사강에 손대기 어려워 보인다.

사고의 발생을 막는 ‘진정한 의미의 예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직업환경의학의 정의와 책임을 보다 넓힐 필요가 있다.

 

‘진짜 예방’의 열쇠,
우리가 쥐고 있다

 

사회적인 인식의 전환은 문제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다. ‘이상적 사업장’의 사업주는 안전관리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현실의 기업이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안전문제에 발빠르게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다. 기업으로 하여금 안전문제관리를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재화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절실한 것이다. 근로자 및 주변 지역의 주민 건강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에겐 그만한 인정과 가시적인 보상이 주어지고, 근로자의 건강과 공장 설비의 안전 지킴이 역할을 전적으로 하청업체에 전가하며 그로인해 사고발생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기업에게는 그에 상당하는 대응이 필요하다.

전자의 예로 우리나라 산업안전공단에서 실시하는 ‘산업재해 예방의 달인’이 있다. 2011년 처음 도입된 이 포상제도는 기업, 재해예방단체 등 각계의 안전보건업무에 종사자 중 산재 예방에 적극적이고 지대한 공로를 한 사람을 매월 선정하여 시상하는 제도이다. 이는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반영하고 산재예방의 중요성에 대해 이해도를 높여 산업안전보건문화를 정책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선정 대상이 적극적으로 안전관리 체계를 도입한 기업이기보다는 관리책임자라는 개인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우나 산업재해 예방에 인센티브를 주어 인식 전환를 촉구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후자의 예로는 미국의 석유회사인 엑슨모빌(Exxon Mobil) 사에 대한 불매운동이 있다. 1989년 3월 24일 유조선 엑슨 발데스 호는 알래스카 유전에서 채굴한 원유를 싣고 가다가 암초에 부딪혔다. 이 사고로 원유 25만 배럴이 알래스카 청정해역로 유출됐다. 큰 규모의 사고였음에도, 엑슨모빌은 본사의 사건을 자회사인 엑손선박의 책임으로 국한했다. 사실을 은폐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인 엑슨사에 국민은 심한 반감을 나타냈고 ‘반 환경적 기업’의 이미지가 형성되어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벌금과 정화 비용, 매출 감소 등으로 인해 엑슨이 입은 손실은 약 70억 달러로 추정된다. 안전관리와 산업사고에 대한 책임회피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이러한 엑슨 발데즈 호 사건로 'Responsible care'운동이 제시되었는데, 세계의 화학 회사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환경과 안전, 건강을 개선할 것을 약속한 것. 이후 관련 산업체들이 국제 화학단체 협의회(ICCA; International Council of Chemical Industry)를 창립했고 산하에 Responsible care 운동을 추진하는 조직인 RCLG(Responsible Care Leadership Group)을 만들어 적극 추진 중이다. 법이 요구하는 가장 최소한의 규정만을 지키는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쌓인 자신감으로 대중과 근로자들에게 어필하며 환경이나 안전에 관한 산업체끼리의 상호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