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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 논란

시민단체, 의협 “국민의 편익을 고려” vs 약사회, 복지부 “부작용과 오남용 우려”


설날 아침, L군은 갑자기 몸이 으슬으슬 춥고 콧물이 자꾸 나와 감기약을 사기 위해 인근 약국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공휴일이라 문을 연 약국은 찾을 수 없었고, 편의점으로 가 보았지만 감기약은 판매하지 않았다. 좀 쉬면 낫겠지 하고 누워있으려니, 모처럼 가족과 함께 하는 설날을 이렇게 보내야 하나 싶어 맘이 상했다.


위와 같은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작년 4월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8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에 관한 소비자인식 조사’ 결과에서 소비자들의 약 70% 가량이 야간이나 공휴일에 약국을 찾느라 불편을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작년 10월 한국소비자원이 서울과 5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4%가 야간이나 공휴일에 약국이 문을 닫아 일반의약품을 구입하는 데 불편함을 겪었다고 11일 밝혔다(표 참조). 대다수의 의약품 소비자가 이러한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의협,
약사회와 복지부의
첨예한 대립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던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문제에 대해 시민단체와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일반의약품을 편의점, 슈퍼마켓 등 약국 외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판매하기를 주장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는 지난 달 말에 국민권익위원회에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에 대한 국민불편해소민원청원서를 제출했다. 의협은 역시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된 일반의약품은 국민의 편익을 고려해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도 이 문제에 가세했다. 공정위 박재규 시장구조개선과장은 “공정위는 일반의약품 슈퍼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1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런 입장을 견지해왔다”며 해당부처인 복지부와의 협의 및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다.
반면 이에 대해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와 해당부처인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허용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약사회는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는 약물오남용 뿐만 아니라 다른 처방약과의 복합투여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입장을 나타냈다. 해당부처인 복지부도 약사회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관리가 잘 되지 않는 일반 편의점이나 소규모 슈퍼에서의 판매는 불가하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외국의 의약품 분류체계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 캐나다, 유럽 등에서는 드러그 스토어(drug store)에서 일반 잡화와 일반의약품을 같이 판매해 일반의약품의 접근이 쉽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1999년부터 드링크제와 비타민 같은 일부 의약품만 슈퍼 판매를 허용하다가 2004년부터 슈퍼 판매 의약품의 범위를 소화제, 정장제, 살균 소독약 등 15개 제품 371개 품목으로 확대했다. 2009년에는 고졸 이상 학력으로 1년간 약제사 밑에서 판매 경험을 쌓은 뒤 시험에 합격하면 일반 의약품 판매 자격을 주는 ‘등록 판매사’ 제도를 도입해 감기약, 해열제, 진통제까지 팔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차이는 이들 국가의 의약품 분류 및 관리체계가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현재 의사의 처방을 필요로 하는 전문의약품과 약사에 의해 판매가 가능한 일반의약품으로 의약품을 분류하고 있다. 또한‘약사법’제44조 제1항에서 ‘약국 개설자(해당 약국에 근무하는 약사 또는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다’는 포괄적인 규제를 하여 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선진국의 경우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분류체계를 갖고 있지만, 대체로 의사의 처방이 필요해 약국에서만 판매되는 의약품과 일반 슈퍼에서도 판매 가능한 의약품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해당 부처와 전문기관을 통해 객관적인 분류기준을 세우고, 일반의약품의 약리학적 효과와 안정성을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최근 다시 불거진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문제,
그 결말은?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으로 다시 불거진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문제에 대해 최근 진수희 복지부 장관이 “응급상황에서의 불편해소 차원에서 특정 인구 단위를 중심으로 접근성 있는 공공장소에서 의약품 판매가 이뤄지면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진 장관은 “소방서나 경찰서 등에서 일반 약국이 영업하지 않는 시간대에 한해 의약품을 판매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라고 말해 제한적인 약국 외 판매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국민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들의 관심이 집중된 이 사안의 결말이 어떻게 될 지 지켜볼 일이다.

임경인 수습기자/가천
<4wooya4@e-med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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