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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혹은 필연! 약에 얽힌 뒷이야기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뒤에는 항상 ‘우연과 행운’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플레밍이 휴가를 떠나며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둔 연쇄상구균 배양접시에 우연히 자란 푸른곰팡이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런데 이 페니실린 말고도 많은 약들이 ‘우연과 행운’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자이반
자이반에 포함된 부프로피온은 우울증 환자의 기분을 고양시키는 효능이 있었기 때문에 이 약은 초반에 우울증 치료제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자이반 치료를 받던 몇몇 환자들이 흡연 욕구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고 이를 의사에게 말했다. 이 부작용을 알게 된 제약회사에서는 대규모 임상연구를 실시했고, 실험대상 중 약 30%가 금연에 성공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수백만 명의 흡연자가 자이반 요법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세팔로스포린
세균학자 주세페 브로추는 도시의 폐수가 정화되지 않고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병원균이 바다로 들어갈 것을 걱정한 그는 폐수 표본을 가져와 실험실에서 조사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폐수는 거의 무균상태였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그 원인을 찾던 브로추는 폐수관 근처에서 다량의 세팔로스포리움 아크레모니움 진균을 발견했다. 그는 이 진균이 병원균을 제거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진균 추출물로 동물실험을 실시했고, 그의 예상대로 이 추출물은 향균 효과를 갖고 있었다. 주세페 브로추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논문을 썼고, 이 논문을 본 연구자 뉴턴과 에이브러햄이 진균을 배양하여 몇 가지 항생 물질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 세팔로스포린은 특히 페니실린아제에 저항력이 있었고, 이 특성을 이용한 것이 오늘날 페니실린 내성균에 쓰이는 항생제인 세팔로스포린이다.

비아그라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에서는 실데나필이라는 물질을 합성하여 고혈압과 협심증 환자에 대한 임상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혈압강화와 심장혈액공급 촉진에 있어서 기대했던 만큼 분명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화이자 사는 연구를 중단하기로 하고, 실험에 참가한 환자들에게 사용하지 않은 약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남성 환자들이 남은 약을 돌려주려 하지 않았으며, 약물을 더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들도 일부 있었다. 이는 많은 남성 환자들이 약을 복용한 뒤 발기력이 뚜렷하게 좋아진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즉시 임상연구가 이루어졌고, 발기부전을 겪는 남성들이 실데나필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실데나필은 1998년 초 미국에서 ‘비아그라’라는 이름으로 판매허가가 났고, 이 약품은 지금까지도 화이자 사에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런 위대한 발견들이 온전히 우연 덕분이라 할 수 있을까? ‘우연과 행운’으로 보이는 이 발견들은 다른 시각으로 보면 오히려 필연 같다. 세팔로스포린을 개발한 주세페 브로추의 일화에서 ‘일상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힘’을 엿볼 수 있다. 만약 연구자들이 실험 약을 폐기하기 전에 부작용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자이반과 비아그라는 발견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자세, 사소한 것을 간과하지 않는 태도가 우연히 주어진 기회를 행운으로 이끌었다. ‘우연한 행운’은 ‘준비된 정신’에게만 찾아온다!

김다혜 기자/대구가톨릭
<anthocy@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