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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압뻬   ② 맹장염   ③ 충수염   ④ 막창자꼬리염   ⑤ 충수돌기염

정답은 3번과 4번, 굳이 하나만 고르자면 4번이 정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한의사협회에서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 속사정을 들여다 보자.

모든 용어는
‘의학용어집’으로 통한다

현재의 본과 4학년이 치게 될 2011년 국가고시는 대한의사협회 의학용어위원회에서 발간한 ‘의학용어집 제 4판’ 및 ‘필수의학용어집’을 기준으로 한다. 의학용어위원회에서는 1977년 ‘의학용어집 제1판’을 시작으로 의학용어 정리작업을 해오고 있다. 현재 5판까지 나와 있는 상태이지만, 이 5판은 현재 본과 3학년이 치게 될 2012년 국가고시부터 적용된다.
그렇다면 4판과, 4.5판, 그리고 5판은 어떻게 다를까?
1992년에 발간된 3판까지의 의학용어집은 SLE(systemic lupus erythematous, 루푸스)를 ‘전신성 홍반성 낭창’으로 표기하는 등 어려운 일본식 한자말 번역이 중심이었다. 그러다가 2001년 비의료인과의 소통을 강조한 4판으로 넘어오면서는 순 우리말 용어를 만들고 한자어를 배제하게 된다. 하지만 ‘딴곳임신(ectopic pregnancy, 자궁외임신)’이나 ‘공기가슴증(pneumothorax, 기흉)’ 같은 단어가 속출하면서 우리말 용어가 의학교육이나 임상현장의 실정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발이 거세게 일자, 자연스러운 선에서 한자어나 외래어 사용을 인정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이들을 우리말보다 우선하기도 한 5판을 발간한 것이다. ‘Anencephaly’에 대해 뇌없음증을 기준으로 하는 4판과는 달리 5판에서는 무뇌증을 먼저 표기하고 비교적 이용 정도가 떨어지는 뇌없음증을 뒤에 둔 것이 그 예이다. 2005년, 4판과 5판의 사이에 나온 ‘필수의학용어집’은 4판을 수정·보완하고 사용빈도에 따라 간추린 것으로, 일명 4.5판으로 불리기도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일반인들이 흔히 ‘맹장염’으로 잘못 알고 있는 ‘Appendicitis’를 의학용어집 4판에서 찾아보면 막창자꼬리염, 충수염 두 가지로 번역되어 있다. 이렇게 둘 이상의 용어가 모두 인정될 때, 그 중에서도 기준이 되는 것은 앞에 위치한 단어이다. 즉 막창자꼬리염이 충수염보다 먼저 표기되어 있으므로 하나만 고르라면 막창자꼬리염이 정답이 되는 것이다. 눈치가 빠른 이라면 예상했겠지만, 5판에서는 물론 충수염이 먼저 나와 있다.

한편, 내후년쯤에는 ‘권장용어’를 선정, 제안한 6판이 나올 예정이다. 여러 개의 기준이 존재함으로써 야기되는 혼란을 막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처럼 용어 정리 작업이 여전히 진행중인 상태임을 감안하여 국가고시에서는 “필요한 경우 원어를 병기한다”는 원칙을 두고 있기도 하다.

의학용어집,
누가, 어떻게 만드나?

의학용어집을 관장하는 곳은 ‘의학용어위원회’이다. 그 역할이 자못 학술적인 데 비해, 소속은 의사들의 이권을 대변하는 단체인 대한의사협회로 되어 있다. 대한의학회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있지만 아직은 좀 시간이 걸릴 모양이다. 의학회는 자체예산이 없는 데 비해, 의협은 예산이 든든하기 때문이다. 의학용어위원회에는 내과, 외과 등 의학의 각 분과를 전문으로 하는 용어편집위원이 있음은 물론이요, 국문학자와 사전편찬학자도 포함되어 있다.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간결하고 자연스러운 단어를 찾기 위해서는 의사들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한 까닭에서이다.
오락가락 용어 기준,
의대생은 어디에

이처럼 공을 들여 의학용어에 대한 표준을 마련해 나가고 있지만, 틈틈이 변해가는 기준 속에 용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적지 않은 불편을 겪고 있다. 수업 때는 영어로 배우고 시험은 한글로 치게 되는 학생들, 국가고시를 준비하면서 한글, 한자용어 정리를 위해 얼마간의 시간을 따로 투자하게 되는 수험생들, “요즘 학생들은 어떤 용어로 가르쳐주어야 되니?”라고 오히려 학생들에게 물어보며 혼란스러워하는 교수님들. 이러한 혼란의 일차적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들의 몫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 의학용어실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종명 교수(한양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용어에 대한 검토는 사실 끝이 없는 작업입니다. 의학에서 쓰이는 개념들이 계속해서 진화하기도 하거니와, 그 번역도 사회적 요구에 맞추어 변해가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부분을 인정한다면 현장에서 빚어지고 있는 혼란은 일부 교수님들의 인식 부족에서 기인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홍보가 미흡했던 점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애써서 용어정리 작업을 하는데, 이런 게 있는지 모르는 교수님들도 많습니다. 당초 계획과는 달리 여건상의 제약으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용어집을 만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많이 이용하도록 의협에서 노력을 했어야 하는데, 좀 부족했죠.”

곱빼기 공부량. 쉬운 용어의
무게만큼, 환자에게 다가가다

한편, 강 교수는 용어 정리 작업에 있어서의 의대생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면서 의대생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용어는 의대생 기준으로 맞추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은 일반인(비의료인)과 전문가인 의사를 이어주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죠. 번역 용어에 대한 의대생들의 선호도를 알아보기 위해 설문조사도 하고 있습니다.
한글 용어에 기준이 맞춰지면 국제 저널 투고 등 학술적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일부에서는 걱정도 하지만, 그건 사실 기우에 가깝습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원서를 교과서로 채택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우리 의대생들은 영어와 쉬운 우리말 용어를 다 알아야 하겠죠. 둘 다 공부하려면 힘들겠지만, 시험을 떠나서라도 번역된 쉬운 용어는 잘 익혀두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의사라면 우리나라 용어를 알고 환자들에게 쉽게 설명해 주어야 하잖아요”

글_ 최성욱 기자/울산
<palpitation@e-mednews.com>
그림_ 김정욱 기자/성균관
<ugiugiugiugi@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