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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잔인한 달이다. 많은 학교가 6월에 기말고사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시험기간의 풍경은 어느 의과대학이나 비슷하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몸은 피로로 지치고 강의실과 도서관도 퀘퀘한 공기로 찌들어 간다. 내 몸을 돌볼 시간도 없이 바쁜 일과 속에서 세상 물정에 관심을 가지기란 여의치 않다. 우리는 이처럼 힘든 시험기간을 통과하고 있지만 누구도 마음속 의문을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의대생은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 아니 경쟁하느냐고.

지금의 20대는 트랙을 질주하는 경주마로 비유되곤 한다. 신자유주의 담론이 팽배한 사회에서 대학 입시라는 트랙을 질주해 의대에 골인했더라도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의대에서도 점수와 등수로 대변되는 경쟁은 여전히 계속된다. 과열되는 경쟁과 함께 우리네 시험기간도 인간적인 모습을 잃어가는 것이다. 물론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공부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시험공부의 속내는 이상과 다르다. 현실 속 의대생들은 진급과 점수를 위해 공부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바탕으로 한 공부보다는 족보를 보며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를 암기하는 행태가 이를 대변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채찍질 하는가. 첫째로 20년 넘는 시간동안 체득한 경쟁 본능이 의대생을 채찍질 한다. 학창시절 내내 지속된 객관식 문제의 답을 찍고 점수로 줄이 세워지는 경쟁, 이런 경쟁에 의대생들은 익숙할 뿐만 아니라 불행히도 매우 잘 적응했다. 어릴 때부터 체득한 이런 본능 덕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책상에 앉고 공부한다. 시험이 다가오고 도서관에 앉아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속칭 ‘탄다’고 표현되는 마음이 이런 무의식의 발로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의사가 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익힌다’는 공부의 본질보다는 점수와 등수라는 외적인 지표에 집착하게 만든다.

둘째는 불안감이다. 20대인 의대생들은 불안하다. 삶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없기에 불안하고, 의사로서의 미래를 제시해주는 선배가 없기에 불안하다. 여기에 의사가 많아 경쟁이 과해진다는 세간의 이야기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슬프게도 지금의 의과대학 입학생 중 자발적으로 의사를 꿈으로 선택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직업이 주는 본질적 매력보다는 부수적인 요인에 이끌려 자신의 업을 택했기에 주변의 말에 쉽게 현혹되고 불안해진다. 하고 싶은 것을 좇기 보다는 좀 더 편한 것, 좀 더 쉽게 돈을 버는 것에 이끌린다. 남들이 하니까, 세상이 좋다고 하니까 불안한 마음에 쫓아간다. 이렇게 20대 의대생들은 불안에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경쟁과 등수놀이를 통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불안감이나 경쟁의식의 그림자를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길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무를 보기보다는 숲을 보는 것이다. 의과대학에 입학해 4년 또는 6년의 시간을 견디는 것은 의술을 행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서다. 시험은 과정일 뿐 1-2점 더 점수를 얻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대신 의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의과대학 시절동안 함양해야 할 것이다. 의학 지식은 물론이고 세상을 향한 끈을 놓지 않아야 하며, 사람에 대한 관심도 끊임없이 유지해야 한다. 더 나아가 본 문제가 의학교육의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방대한 의학지식을 먹고 토해내도록 하는 현 의학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도록, 그 속에서 학생의 인간적 권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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