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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통한 의료개혁, 기이도 다케루

연초부터 의료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의료 정책에 관해 논란이 일기도 하고, 병원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 나오기도 한다. 의사의 입장에선 이런 일들이 답답하게 느껴지겠지만, 그렇다 해도 무언가 손을 쓰기는 쉽지 않다. 오늘 하루를 살기도 벅찬 바쁜 의사들에게, 의료개혁을 위해 뛰어든다는 것은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의사 생활을 하면서 색다른 방법으로 의료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의사가 있으니, 바로 일본의 병리과 의사 ‘가이도 다케루’. 그가 의료개혁을 위해 집어든 칼날은 다름 아닌 ‘소설’이다.

말 속에 뼈가 있는 소설!

“수익이라고? 구급 의료에서 수익이 날 리 없잖아. 폭풍처럼 사고는 느닷없이 일어나 질풍처럼 사라져버리지. 재고관리 같은 건 애당초 할 수가 없어. 소아과도 마찬가지야. 산부인과도, 사망 시 의학 검색도. 현재 경제 시스템에서는 의료의 근간을 이루는 분야가 푸대접받고 있어. 우리가 하는 일은 경찰관이나 소방관과 마찬가지야. 사고가 없으면 무위도식하는 거지. 그렇다고 국가가 경찰관이나 소방관에게 이익을 내라고 요구하던가? 경찰과 소방서에 세금이라는 경제 자원을 분배하는 걸 국민이 거부하나?”
‘제너럴 루주의 개선’에 나오는 대사의 일부다. 다케루의 시리즈 소설 중 3편에 해당하는 이 책에서는 일본의 구급구명의 문제, 즉 응급실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리베이트 의혹을 받고 있는 구명구급의 ‘하야미’를 중심으로, 응급 상황이 현실감 있게 펼쳐진다.
다케루의 책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으며, 그에 대한 자신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1편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에서는 ‘사망 시 의학 검색 (AI)’이라는 시스템 도입의 필요성을, 2편 ‘나이팅게일의 침묵’에서는 소아과 문제를, 4편 ‘나전미궁’에서는 죽음의 상품화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다케루의 칼날은 날카롭다. “관료 시스템이 낳은, 서류 위에서 짜 맞춰진 땜질식 의료개혁안은 현장에 해약과 혼란을 계속 뿌려대고 있다. (중략) 어린이와 의료를 경시하는 사회에 미래 따위는 없다.”, 혹은 “오랫동안 의학 연구라는 미명 아래 환자는 생각지도 않는 오만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죠. 피실험자인 환자의 인권은 무시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위원회는 반드시 필요합니다.”와 같은 말들. 말 속에 뼈가 있는 소설이다.

그럼 재미없고 딱딱하겠네?

의료개혁의 필요성을 제시하는 책이다 보니, 책 자체의 흥미는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시리즈의 1편을 읽게 된다면, 머잖아 다음 권도 읽어보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의 경우 연속된 수술 실패가 의도된 살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품은 채 수술실이라는 밀실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데, 그 어떤 추리소설 못지않게 긴장감이 흐른다. ‘나이팅게일의 침묵’과 ‘제너럴 루주의 개선’은 같은 시간에 펼쳐지는 일들로,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제너럴 루주의 개선’ 중 도시 내 대형 사고로 인해 응급 환자들이 밀어닥치는 상황에서 구명구급의들의 대처는 이 작품의 백미다. 차분하게 모니터를 지켜보면서, 마이크로는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구명구급의의 모습은 정말 ‘제너럴(장군)’을 연상시킨다.
다케루의 글 솜씨 또한 흥미를 더한다. 때로는 재치 있는 유머로, 때로는 감명 깊은 구절로 독자를 사로잡는 것이다. “사람은 왜 약해지지? (중략) 지켜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야. 지켜야 할 것을 버렸을 때 인간은 가장 강해져.”와 같은 구절을 보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묘미가 있으니, 바로 독특한 캐릭터! 어떤 환자의 불만이라도 이야기를 들어주며 달래주는 의사 ‘다구치’, 제멋대로 막말을 해대지만 날카로운 추리력을 보여주는 ‘시라토리’. 처음에는 이러한 캐릭터가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이 두 남자가 콤비를 이루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보다 보면, 나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다카시나 병원장, 일류 의사 기류, 시라토리의 부하 히메미야 등 모든 캐릭터들이 다들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괴짜 같은 구석을 가지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몇 년 사이에 무서운 속도로 소설을 써내고 있는 다케루. 위 시리즈 외에도 ‘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의학의 초보자’ 등도 썼으며, 위 시리즈의 5편 ‘블랙 페앙 1988’은 의대생의 고민을 다룬 것인데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또한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시즌 2까지 인기리에 방영되는 등, 일본에서는 많은 관심을 얻었다.
‘소설’이라는 색다른 방법을 통해 의료개혁을 하려는 다케루. 책으로 드라마로 다케루의 생각이 전달되는 일본에서는, 오늘도 의료개혁이 진행 중이다.

정세용 기자/연세
<avantgarde91@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