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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검 조작이 사실인가요?

드라마 ‘싸인’ 자문 법의관에게 듣는다, 드라마 vs 현실

“저, 000입니다. 혹시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깰 수 있나요?”
“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대답을 하자면 야구 방망이로는 머리가 잘 깨지지 않습니다. 찢어지긴 하겠죠. 그리고 야구방망이로 때렸음을 알아내는 것도 복잡합니다. 길쭉한 걸로 때렸음은 알 수 있으나 야구 방망이인지 쇠파이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누구의 대화일까? 바로 법의관과 드라마 ‘싸인’ 작가와의 대화이다. ‘싸인’은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의관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이다. 의대생임에도 불구하고 ‘싸인’을 보면서 한번쯤 ‘저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드라마 ‘싸인’의 자문을 맡고 계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H 법의관님을 만나 의문을 풀어보았다.

드라마의 자문은 어떤 역할일까. 위의 대화와 같이 자문은 드라마 대본을 쓸 때 소재를 제안하며, 이에 대한 법의학 지식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한다. 직접 이야기 구성을 제안하기도 하는데, 6화에 등장하는 살인범의 맹장수술 자국은 H 법의관이 직접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대본의 오류를 수정해주고, 직접 촬영 현장에도 나가서 부검장면에 대한 도움을 준다. 자문에 의해 드라마 제목이 바뀌기도 하였는데, ‘싸인’의 원래 제목은 ‘국과수’이었다고 한다.

신의 눈? 법의관의 눈!

윤지훈(박신양 분)은 시신을 보고 범퍼 높이 50cm이상의 대형차량에 치였음을 가늠한다. 이뿐만 아니라 죽은 이의 ‘sign’을 발견하는 족족 해석해 낸다. 천재 법의학자로 묘사되는 윤지훈은 신의 눈을 가진 것일까?
대답은 NO. 피해자가 치인 차량의 크기를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경험이 축적되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법의학입니다. 우리는 시신을 보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정보만을 찾지는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정보를 찾아내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여 죽은 이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경험이 쌓이게 되면 보자마자 사흔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게 되지요” 모든 접촉이 흔적을 남기는 만큼 H 법의관의 말마따나 법의관은 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꾸준히 길러야 한다. 윤지훈은 신의 눈이 아니라 노력으로 길러 낸 법의관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인은 바로~ 이겁니다.
드라마를 보면, 일단 부검만 하면 사인을 밝힐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이유는 윤지훈이, 부검한 모든 시신의 사인을 밝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부검 소견은 대부분 우선되는 사인을 말하는데, 정확하게 선행 사인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폭행을 당한 후 도망가다가 과다출혈로 기도가 막혀 의식을 잃고 추락한 사람은 추락사로 간주되기 쉬운데, 추락하면서 시신이 파손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인불명인 경우도 10~15% 정도 발생한다. 천식, 간질, 과민증(anaphylaxis) 등으로 죽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사전 정보 없이는 부검만으로 그러한 증상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현실 속에서는 부검을 해도 결과가 모호한 경우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부검 후, 이것이 사망 원인일 가능성은 몇 %라고 말합니다. 100%인 경우는 드물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 가능성이 단 10%밖에 되지 않더라도 최대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30년이 걸리든 증거를 꼭 찾아 낼 거야!!
극 중 윤지훈과 고다경은 법의관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증거를 찾는 검시관 역할까지 수행하며 사건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현장 검시를 하는 법의관은 우리나라에 없다.
“우리나라는 대륙법을 따르기 때문에 검시권은 의사가 아닌 검사에게 있습니다. 부검의뢰를 검사가 하게 되는 것이지요. 사망원인 규명 여부를 검사가 판단 한 후, 부검의뢰 영장을 청구하면 판사가 이를 수리합니다.
여기를 보세요. 압수수색검증영장입니다. 피의자에는 사망자 이름, 청구자에는 검사이름, 물건항목에는 시체1구라 적혀있고 다음 장에는 사유가 적혀 있습니다. 이를 제출하면 당직 판사가 도장을 찍어주지요. 그러면 지정된 장소에서 부검이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검시권이 의사에게 없기 때문에 윤지훈 같은 법의관의 모습은 찾아 보기 힘든 것입니다.”

왜 우리나라 사람을 일본 국과수에서 부검을 합니까?
7회, 일본에서 발견된 백골사체를 보기 위해 윤지훈과 고다경은 출국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부검 자격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에 고다경은 우리나라 사람을 왜 일본 사람이 부검을 하냐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부검은 속지주의를 따릅니다. 그 나라에서 죽은 시체는 그 나라에서 부검을 하는 것이지요. 우선 군인이 죽은 경우는 소속 국가의 군대에서 관할을 하므로 제외하고 생각합시다. 군인이 아닌 경우는 속지주의에 따라 그 나라 법의관들이 부검을 하게 됩니다.
드라마에서처럼 우리나라 사람이 타국에서 죽은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만약 상대국이 사체를 부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직접 법의관을 파견하거나 시신을 방부 처리하여 이송한 후 국내에서 부검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상대국이 부검 의사를 표명하면 부검결과가 통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부검결과를 신용할 수 없다면, 직접 우리나라 법의관을 파견하여 부검과정을 관찰하거나 부검한 시신을 국내에서 다시 부검합니다. 재부검은 별로 일어나지 않지만, 폴란드에서 부검한 후 우리나라에서 다시 부검한 사례가 있습니다.”

‘싸인’은 법의관을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인 만큼 많은 법의학 지식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극이라는 장르에 맞게 그 안에 허구를 품고 있다.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들이 극적 효과를 위해 등장한다. 그 중 하나가 권력에 의한 부검 조작이다.
극 중 이명한 원장(전광렬)은 국내의 열악한 법의학을 일으켜 세운다는 명목 하에, 권력에 순응하고 권력자를 위해 부검 결과를 조작하는 우를 범한다. 그러나 실제로 국과수는 정부로부터 적절한 예산을 편성 받고 있고 필요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권력에 조아릴 필요가 전혀 없다고 한다.
또한, 국과수에서 진행하는 부검은 법의관, 법의조사관, 전문 사진사들이 각각 부검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가 가능하여 부검기록을 열람 할 수 있다. 부검결과가 충분치 않을 경우는 결재과정에서 걸러지며 심의를 거쳐 결과가 재도출 되기 때문에 현실에서 부검조작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국과수에서 일하는 법의관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도의 지식을 갖춘 전문가이지요. 다른 사람이 나의 부검을 보게 되기 때문에 매 순간 신중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국과수의 경우는 특히 표준화된 부검 프로토콜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부검다운 부검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면 10화에서 고다경(김아중)이 지렁이를 해부하는 장면도 재미라는 가면을 쓴 허구에 불과할까. “지렁이 사건은 2007년에 실제로 있었습니다. 음식물에서 지렁이가 발견되었는데요, 누가 일부러 넣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식품에 존재했던 것인지를 구분하는 사건이었지요.”

매일 죽음을 마주하는 직업을 가는 법의관들은 삶이 우울하거나 어둡진 않을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법의관끼리 모이면 매우 재미있습니다. 편견을 버리세요. 죽음이 왜 우울합니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습니다.10살에 죽은 아이와 70세에 죽은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누가 더 불쌍하다고 생각하나요? 말할 수 없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볼게요. 본드를 불다가 죽은 청소년이 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듭니까? 한심한가요? 불쌍한가요? 아닙니다. 이 아이는 웃으면서 죽었습니다. 죽는 순간에 이 아이는 행복했던 것이지요. 여러분은 이 아이보다 죽는 순간 행복할 자신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 아이의 죽음을 비웃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편견과 달리 죽음은 결코 암울하지 않습니다. 설사, 어리석게 죽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왈가왈부 할 자격은 없는 것이지요. 여러 죽음 속에서 자신의 죽음마저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법의관이 아닐까요.

강수진 기자/전남
<pi1125@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