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studentitis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망원인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는 암, 2위는 뇌혈관 질환, 3위는 심장 질환, 4위는 자살, 5위는 당뇨이다. 2014년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뇌혈관질환과 심장질환이 0.1% 단위로 엎치락뒤치락 하는 것을 제외하고 보면 이 순위는 변함이 없을 것이고, 앞으로도 적어도 5년간은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의사의 사망 원인은 어떻게 될까? 1위는 암, 2위는 뇌혈관 질환, 3위는 심장 질환, 4위는 자살, 5위는 당뇨이다. 의사들은 질병을 치료하며 자신과 병의 관계를 우열관계로 설정하기 쉽지만, 우리의 신체가 겪게 될 운명은 의사가 아닌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의사도 아프고, 병에 걸리고, 어느 순간 죽음을 맞는다. 제 자루 깎는 칼 없다.
의사의 전구체인 의대생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아프다. 혹은 아플 예정이다. 사실 따져보면 보통 사람들보다도 자주 아플 확률이 높다. 또래에 비해 수면과 운동은 부족하고, 식습관도 바르지 않고, 온갖 내성세균이 득시글한 병원 전역을 쏘다닌다. 자주 조금 아프고, 가끔 누군가는 크게 아프다. 입원이나 장기 치료라도 선고받게 된다면 병원이 인심 쓰듯 내어주는 자그마한 할인혜택에 기뻐해야 하는지 아픈 부위보다도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진다.
항상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비몽사몽 텍스트를 읽는다. 증상을 보니 나와 너무 비슷하다. 기침? 우하복부에 국한된 복통? 설사? 역학을 본다. 20대 남자(혹은 여자)가 m/c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확신이 든다. 이렇게나 연관관계가 충분한데 더 이상 고민하는 것은 환자의 빠른 쾌유를 위한다면 못 할 짓이다. 심적 확진을 내리나 진단은 받을 수 없다. 돈이 없잖아. 완치치료가 schoolectomy 뿐인 것을 알지만 용기가 없어 약간의 음주로 보존적 치료를 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일반적인 ‘의대생병’, ‘Medical students′ disease’ 혹은 ‘Medstudentitis’라고 알려진 불치병의 natural history다.
농담처럼 전해오는 ‘의대생병’
사실은 유구한 역사
이처럼 조금의 연관성만 발견되어도 자신이 그 질병인 것처럼 여겨 걱정에 빠지는 것을 의대생병이라고 한다. 농담처럼 내려오는 말이지만 이 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의과대학이 있는 나라라면 어디든 퍼져있고, 생각보다 역사도 오래되었다. 미국에서는 medical students′ disease, 혹은 intern's syndrome, second year syndrome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Why worry?라는 책을 써낸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저자 조지 월튼은 무려 1908년에 이런 문장을 썼다.
“의과대학 교수는 배우고 있는 질병에 대한 걱정으로 찾아온 의과대학생들에게 항상 시달리고 있다. 학생들에게 폐렴에 대한 지식은 흉곽의 사소한 자극을 심각한 증상으로, 충수돌기의 위치에 대한 해부학 지식은 맥버니점의 가장 무해한 자극도 심각한 전조증상으로 바꾸어놓는 듯하다.”
우리의 스승의 스승의 스승의 스승뻘인 사람들도 학생 시절에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점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나만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소소한 행복을 준다. 우리가 그렇듯 우리의 후배들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무리 쓸모가 없어보여도 논의할 가치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대체 왜, 무엇이 두려운가?
건강염려와 질병공포
우리가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이 증상들을 이미 있는 실제 진단명에서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DSM-IV의 hypochondriasis, DSM-V에서는 Somatic symptom disorder 혹은 Illness anxiety disorder로 불리는 ‘건강염려증’이 좋은 예시가 된다. 반쯤 농담인 의대생병 환자들과 달리 이들은 실제로 그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서 간단한 발진에도 매독에 걸렸다고 말 그대로 ‘확신’하고, 알려진 증상들을 거의 그대로 겪는다. 혹은 그렇다고 알려져 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통증을 직접 느껴볼 수가 없으니까.
Nosophobia는 비슷하지만 다른 말이다. hypochondriasis 환자들이 직접적인 통증을 호소한다면, Nosophobia는 질병에 걸릴까봐 두려운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Hunter와 Lohrenz는 Journal of nervous mental disease에 기고한 논문에서 ‘의대생병 학생들은 hypochondriasis보다는 nosophobia에 가깝다’라는 보고를 했다. 이 논문은 무려 1964년에 수록된 것이니 참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질병이 아닐 수 없다.
닥터쇼핑은 의대생병의
‘돌연변이 균주’?
여기서 우리의 의대생병을 되짚어보자. 의대생병 환자들은 보통 텍스트의 설사나 기침 같은 광범위한 증상을 자신의 증상과 연결 짓는다. 이처럼 별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나 정보들에서 규칙이나 연관성을 얻으려는 태도를 독일의 정신병리학자 클라우스 콘라트는 ‘Apophenia’라 이름 붙였다. Apophenia는 창조적 예술의 근간이기도 하지만, 논리적 연결고리를 잃으면 정신병의 원인이 되는 현상이다.
의대생병 환자들은 보통 증상과 역학만으로 확진을 내린다.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데 더 이상의 침습적 진단을 시도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의대생들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은, 대부분의 경우 만약 시간과 돈이 있다 하더라도 정말로 병원에 찾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의 의학적 훈련, 혹은 보아온 환자로 자신이 정말로는 그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에게는 의학적 훈련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의대생들이 읽는 KMLE보다도 공신력이 부족한, 짜깁기된 여러 정보들만으로도 병원 방문을 실행에 옮긴다. 이를 Cyberchondria, 잘 알려진 말로 닥터 쇼핑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닥터 쇼핑은 의대생들에게만 공개되던 정보가 인구집단 전체로 전파되면서 마치 의대생병이 돌연변이를 일으킨 것처럼 퍼져나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의대생병은 의사의 홍역
배운 정보를 자신에게 적용해서 아픈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유독 스스로에게 많이 시도하는 것은, 자기 자신은 귀찮게 하지 않고 문진과 신체진찰을 할 수 있기 때문일 뿐이다. 배운 지식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합리적인 방식이라는 전제 하에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데 좋은 훈련이 될 수 있다. 또한 닥터 쇼핑을 습관처럼 행해 스스로의 건강을 망치는 주변 이들에게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더 설득력 있는 조언을 해 줄 수도 있다. 그러니 의대생병은 우리가 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꼭 겪어야 하는 홍역이나 수두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지금 아프면, 나중에 의사가 되어서 덜 아플 수 있는 면역작용과도 같은 것.
이준형 기자/가천
<bestofzone@e-med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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