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호(2010.10.11)/의대의대생

누구의 지팡이가 의학을 상징하는가

mednews 2010. 10. 10. 21:18

아스클레피오스 VS 헤르메스

의과대학에 들어온 학생들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를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또는 의대생 중 일부는 세계보건기구 휘장에서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한 마리의 뱀 형상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폴론은 그의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까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부인을 죽이지만 바로 후회하고 부인의 뱃속에서 아들을 꺼낸다. 켄타우로스 케이론(Chiron) 손에서 길러진 아스클레피오스는 그에게서 의술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죽은 사람까지 살릴 실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그는 제우스가 던진 벼락을 맞고 죽게 되는데, 죽은 사람을 살려낸 대가로 황금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과 아스클레피오스 덕분에 인간이 불사의 능력을 갖게 될 것을 제우스가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아스클레피오스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 아폴론의 요청과 그의 생전 선행을 기리기 위해 제우스는 그를 밤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어 준다. 오피우커스(Ophiuchus), 바로 뱀주인자리이다.
별자리에서 보이듯 아스클레피오스는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뱀을 상징으로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가지게 된 이유 때문이다. 어느 날, 환자를 치료하던 아스클레피오스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뱀을 죽였는데, 다른 뱀이 죽은 뱀을 치료하기 위해 약초를 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 죽음을 이겨내는 비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기원 6세기경,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신으로 숭배되고 그리스 도처에 그의 신전이 번성하게 된다. 커다란 신전이 있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에피다우로스(Epidauros)는 숭배의 중심지로 많은 환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아스클레피오스에 대한 고대 사람들의 믿음은 현대까지도 이어져 지금도 우리는 그를 의술의 신으로 여기고 있다. 아스클레피오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의술의 신의 상징이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뱀 한 마리인데, 왜 대한의사협회의 표식은 지팡이를 감고 올라가는 두 마리의 뱀일까.
지팡이를 뱀 두 마리가 감고 있고 꼭대기에 날개가 달린 표식은 전령의 신 헤르메스(Hermes)의 지팡이다. 헤르메스는 죽음의 안내자와 상인, 도박꾼, 도둑의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1902년  레이놀즈(Raynolds) 대위에 의해 미 육군 의무대에서 의학의 상징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대한의사협회는 1996년 바뀐 네 번째 휘장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1947년 공모를 통해 결정한 카두세우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당시 미군정 하에 있었던 시대적 배경에 의해 미 육군 의무대의 휘장을 사용하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의학의 상징으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이 맞는지 카두세우스를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는 계속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세계보건기구나 세계의사회 그리고 미국,일본, 중국, 영국 등 주요국가의 의사협회는 아스클레피오스 지팡이를 사용하는 반면에 한국, 일본, 중국의 의무부대와 국내 여러 보건관련 단체에서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인 카두세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일례로, 1912년 미국의사협회는 상업, 도둑, 기만, 죽음을 의미하는 카두세우스가 치료를 행하는 분야를 나타내는 데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여 카두세우스를 본래 의학을 상징하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로 바꾼 사건이 있다.

강수진 기자/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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