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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회 국가고시 수석 박지명 씨 인터뷰

반복과 성실이 수석의 비결

2012년도 국가고시 수석합격은 440만점에 418점(95점/100점 환산 기준)을 획득한 서울의대 박지명(87년생) 씨에게 돌아갔다. 쌀쌀했던 날씨가 풀려 가는 2월의 어느 날, 박지명 씨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박지명 씨는 인터뷰 내내 침착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Q. 다시 한 번 수석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수석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A.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당황스러웠고, 얼떨떨했습니다. 예과부터 활동했던 동아리의 행사에 참석해 있던 중에 전화로 소식을 접하게 되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네요.

Q. 요즘은 어떤 생활을 하면서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A. 인턴 지원과 관련해서 필요한 일들이 많아서 그것들을 준비했습니다. 생각보다 인턴 원서에 첨부해야 할 것들이 많고, 인턴 교육도 받아야 해서 의외로 시간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Q. 평소 학교에서도 항상 수석의 위치를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셨는데, 학교시험과 국시를 대비했던 공부방법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A. 같이 공부했던 동기들을 보면 앞 글자를 따서 외우거나, 이야기를 만들어서 외웠던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재주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에 충실하고 강의록과 기출 문제를 여러 번 보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네요.

박지명 씨는 예과 1학년 때부터 서울의대 관현악반에서 첼로를 연주해 왔다. 첼로 파트장이기도 했던 박지명 씨는 단원들에게 중요한 부분을 될 때까지 반복적으로 연습을 시키는 파트장으로도 유명했는데, 그 연습 방법은 그의 공부 방법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한 단원은 박지명 씨를 두고 “학기 중에는 의학도서관, 방학 중에는 관현악반 연습실의 ‘구조물’ 같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Q. 올해부터 국가고시 문제가 공개되었는데, 무슨 변화가 있었나요?
A. 사실 예전 문제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네요. 그래도 문제 공개 이후 문제에서 묻는 것이 명료해진 것 같습니다. 기출문제집에 나왔던 5지선다형의 까다로운 문제 유형 대신, 케이스 설명과 증례를 주고 진단과 치료에 대해서 묻는 유형의 문제가 많이 등장했던 것 같습니다.

Q. 일각에서는 해리슨을 3회 정독하셨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책을 보는 것이 시험에 도움이 되나요?
A. 그건 잘못된 소문이구요. (웃음) 해리슨은 필요한 부분만 참고했습니다. 본과 1, 2학년 때는 강의록 양이 방대해서 책을 보기 힘들었지만, 본과 3학년 때는 개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진 편이라 책을 참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해리슨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지는 않았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요?
A. 여행을 가면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이 날지 안 날지 모르겠네요. 인턴 일정이 시작되기 전까지 딱히 정해진 계획은 없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제 저처럼 본과에 막 진입하는 1학년이나, 국시를 대비해야 할 본과 4학년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씀 부탁합니다.
A. 본과 1학년은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전체적인 공부양은 4년 중에서 가장 적지만 이제 막 올라와서 적응하느라 심적으로는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였던 것 같네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아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과 4학년에게는 실기 준비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말해 두고 싶습니다. 실기는 합격/불합격으로만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으므로 막판에 몰아쳐서 준비하지 말고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허기영 기자/서울
<zealot648@e-mednews.org>

지방병원 인턴 미달, 무엇이 문제인가

2012년 레지던트 모집에서 지방 병원들의 고전이 심상치 않다. 매년 모집 인원을 채워왔던 몇몇 지방 국립대에서조차 심각한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99명을 모집하는 경북대학교는 64명을 모집하는 데 그쳤으며, 98명을 모집하는 전남대학교는 78명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 이외에도 제주대 충북대와 같이 모집 인원이 30명 이하인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 대학 병원에서 인턴 인력을 충원하지 못했다. 지방 중소 병원의 실정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사태가 지역 의료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사고 있다.
하지만 올해 인턴 미달 사태는 예견된 일이었다는 것이 해당 대학 병원들의 이야기다. 의료 시장의 확대로 병원이 늘어나면서 인턴 인원이 국가고시 합격자 수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병원의 인턴 인원은 3802명이다. 그러나 올해 의사고시 합격자는 3200명을 넘기는 데 그쳤다.
이와 더불어 인턴제 폐지 소식 때문에 지원 여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한 졸업생들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인턴제 폐지가 확정 될 경우 있을 수 있는 손익을 따지느라 지원을 인턴제 폐지 이후로 보류한 경우도 있으며, 정확하지 않은 개정 제도에 대한 정보 때문에 갈팡질팡한 예비 지원자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예년에는 모집 인원을 충원해 왔던 병원들조차 미달된 것을 볼 때, 이런 추측은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의전원 체제로 전환한 한 대학 병원 관계자는 배출한 졸업생들이 타 지역출신이 많아 예년보다 이탈된 인원이 많았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한다. 흔히 서울의 빅5라 불리는 병원들은 사정은 지방 대학 병원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207명의 인턴을 모집하는 서울대 병원은 254명이나 지원했고, 223명을 모집하는 세브란스도 283명이나 지원했다. 가톨릭 중앙 의료원과 서울 아산 병원, 서울 삼성 병원도 모집 인원을 훌쩍 넘긴 많은 지원자가 지원했다. 인턴제 폐지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빅5  병원에는 망설임없이 지원하고 있어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의료 인력이 대거 집증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의료 인력 양극화로 인한 지원 미달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지방 중소 병원 사태는 대학 병원보다 더 심각하다. 남양주 한양 병원은 2명을 모집했지만 단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고, 동강병원의 경우 11명 모집에 2명 지원에 그쳤다. 특히 읍 단위 시골 병원의 경우 지원자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병원 관계자는 급여나 인지도가 낮은데다, 인턴 지원자들이 학위 취득이 용이한 대학 병원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미달 사태가 지속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미달 인원이 많은 일부 병원에서는 인력 조달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물론 가장 시급한 올해 병원 내 인력 충원은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이후의 미달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 또한 없는 것일까.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미달이 심각해졌지만, 지원을 보류한 근본적인 이유는 병원 내 인턴에 대한 처우 불만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좀 더 처우가 좋은 병원을 찾아가거나, 이후에 도입될 새로운 제도가 좀 더 나은 대우를 제공할 것이란 기대 심리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진행되고 있던 인턴 폐지마저 현재는 무제한 연기된 상태다. 인턴 지원을 보류한 학생들은 전후 상황을 주시하고 있고, 졸업을 앞둔 재학생들도 진로 선택을 두고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내년에도 지방 병원들은 인턴 지원 미달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노원철 기자/전남
<happywonchul@e-mednews.org>

인턴제 폐지 입법예고 연기

누구를 위한 인턴제 폐지인가? 심기 불편한 의대생들

작년 한 해 의료계의 뜨거운 이슈 중 하나였던 인턴제 폐지 입법 예고가 지난 2월 의대생들의 반발로 연기되었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전문의 수련에 관한 규정을 대폭 수정한 법안을 골자로 한 인턴제 폐지안을 2월 14일에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연합(이하 전의련)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의대생들은 학생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입법예고에 거세게 반대했고, 현재 인턴제 폐지안의 입법예고는 무기한 보류된 상태이다.   

반 백년 동안 실행된 인턴제,
이제는 바꿔야 할 때 

인턴제 폐지를 둘러싼 논의는 꽤 오래전부터 이뤄졌다. 1958년 도입되어 50여년간 시행되어온 인턴제는 다양한 과를 경험하여 여러 술기를 익힐 수 있고 해당 병원환경의 분위기를 익힐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최근 전문과에서 인턴을 교육적으로 방임하거나 잡무를 시키는 등 의사 수련에 있어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 개선방안에 대한 논의가 10여년간 진행됐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작년에 보건복지부가 의학회의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전문의 제도개선 태스크포스(이하 TF)와 보건의료미래위원회를 세우며 본격적으로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작년 5월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주최하는 전공의 수련제도 개편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고, 하반기에는 보복부가 인턴제 폐지를 2014년 3월부터 시행하는 입법예고안을 2월에 발표하겠다는 공식입장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인턴제 폐지 : 전공의 수련제도
개선과 진료면허 도입 

그렇다면 입법예고안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주요한 취지는 전공의 수련제도의 개선이다. 투자 시간대비 효율이 낮은 인턴 제도를 폐지하고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과에 배치되어 과별 수련을 받도록 하고, 각 과에 맞는 전공의 수련 기간과 커리큘럼을 정해서 궁극적으로는 불필요하게 긴 수련기간을 단축하는 것이다. 또한 전공의 근무시간 상한제, 연차별로 학습목표를 정하고 시험을 보는 단계별 전문의 고시 도입, 여성 전문의 근무여건 개선 등 전공의 근무의 질을 높이는 것도 포함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취지를 시행 직후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새 수련제도를 시행하는 첫 해에는 레지던트 지원자가 2배(지난 년도에 인턴을 수료한 사람과 의대졸업 후 병원 지원하는 사람)가 되는데, 이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 우선 New Resident 1(이하 NR1) 제도를 시행한다. 레지던트 정원을 두 배로 늘리고 의대/의전원을 갓 졸업한 NR1과 전년도 인턴을 수료한 R1을 동시에 뽑는 것이다. NR1은 인턴업무를 일부 담당하며 이후 추가로 4년을 더해 총 5년의 수련과정을 거치고, R1은 기존의 레지던트와 같은 개념으로 4년 수련을 받도록 한다. 하지만 NR 과정도 궁극적으로는 4년 또는 그 이하로 바꾸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진료면허 도입을 위한 제도 마련도 중요한 취지로 꼽힌다. 인턴제도가 일반진료술기를 익히는 본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므로 이를 폐지함과 동시에 2년간 일반진료만 하는 의사를 양성하는 제도를 설립하자는 것인데, 여기에 진료면허를 도입하여 의사면허를 가졌더라도 일반진료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의사는 진료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들만의 개선, 불편한 의대생들

전공의 수련제도와 근무환경 개선을 목표로 하는 인턴제 폐지. 의사의 복지에 나무랄 것 없는 법안이다. 하지만 전의련을 비롯한 많은 의대생들이 반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의대생의 목소리가 배제된 법안이기 때문이다. 제도 개선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 학생실습제도와 전공의 선발에 대한 어떠한 구체적 논의도 나오지 않았고 그에 대한 수련자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장 2년후에 시행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의련은 작년 공청회에도 참석하여 학생의견을 반영해달라고 호소하는 등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학생의 참여 권리를 주장해왔지만 별다른 공식적 답신은 없었다.

당초 발표하기로 예정된 시행안에는 의대/의전원 교육, 제반제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만 모두 두루뭉술한 내용뿐이며, 그나마 구체적인 사항이 담긴 개선안 연구보고서도 일반학생에게는 거의 공개되지 않아 법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전의련은 최근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주최하여 의대생의 관심을 촉구했고, 실제로 보복부의 입법예고를 연기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서명운동은 현재에도 꾸준히 진행 중으로 ▲전공의 선발제도 평가자의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피평가자의 측면에서도 합리적인 선발제도를 만들기 ▲학생실습에서 기존의 인턴제에서 담당했던 전공탐색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시행시기와 세부사항의 공고시기를 조절하여 학생의 혼란을 막을 것 ▲전공의 수련기간 단축안을 확실히 제시할 것 ▲전공의 수련에 대한 연차별 가이드라인을 만들도록 요청 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전의련 공식홈페이지에는 전의련의 공식적인 입장을 설명하고 학생의 의견을 모으는 인턴제 폐지 게시판도 개설되어 학생회장 뿐만 아니라 일반의대생의 참여도 유도하고 있다.  

복지부는 이러한 움직임에 당혹스러움을 표현하며 학생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현재 복지부와 전의련 간에는 공식적인 입장차이만 확인된 상태로, 실질적인 의사반영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인턴제 폐지는 결국 전공의 양성 커리큘럼 개선에 관한 문제다. 의대생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안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호소하고, 복지부가 이러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양측을 모두 반영한 개선안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김정화 기자/한림
<eudaimonia89@e-mednews.com>

어느 복학생의 편지

- 의대생, 그리고 휴학 -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총 11년을 뒤돌아볼 세도 없이 시험과 성적의 굴레 안에서 달린다. 이런 일상에서 잠깐의 여유를 찾아 휴학을 고민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몇 없다. 이를 실행에 옮긴 사람들을 만나 휴학에 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년간의 어학연수

중앙대학교 본과 3학년 임세호
예과 1학년 1학기 수료 후 휴학

“모든 일에는 득실이 있다. 실이 없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양에 비해 얻은 게 너무나도 많다.”

가족이 반 년정도 일찍 캐나다 밴쿠버에 터전을 마련하게 되어 예과 1학년 여름방학 때 여행을 갔다가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놀라는 눈치였지만, 예과 1학년 1학기만 다니고 휴학을 했기 때문에 반수하는 일부 친구들에 묻혀 오히려 어색하기 않게 휴학을 결정할 수 있었다.
벤쿠버에서 1년 동안 사립어학원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오전에는 그 곳에서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직접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고 여행도 많이 다녔다. 개인적으로는 글 쓰는 것,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캐나다 여행 관련 블로그도 운영하면서 즐겁게 보냈다.
영어 실력이야 예전에 비해 크게 늘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1년간 쉬면서 여유로운 생활 안에서 자기반성과 성찰을 많이 하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외국의 문화를 접한 것도 나름대로 강한 충격이어서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고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의 자유로움과 자신감을 많이 준 것 같다.

쮆 복학생의 조언 한마디
당시 20살이었던 나에게 휴학의 경험은 같은 나이의 친구들에게는 전혀 없는 특수한 경험이었다. 휴학을 결심할 때에는 정확히 ‘무엇을 해야겠다!‘라는 굳은 결심과 계획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 힘들다, 그냥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자세만으로는 휴학하는 기간만큼의 시간의 보상을 받지 못할 것 같다.

걸어서 지구 한 바퀴

가톨릭대학교 본과 4학년 고준걸
본과 2학년 수료 후 휴학

“후회요? 없어요. 돌아갈 수 있다면 돈도 더 많이 모아서 2년 쉴 거예요”

원래 여행하는 걸 즐겨 방학 때마다 다니곤 했다. 하지만 방학이 짧아 항상 아쉬웠다. 동아리 활동에 재시라도 걸리는 날엔 실제 방학은 3~4주 뿐이니까 말이다. 본과 올라와서는 일상이 답답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앞으로 몇 년간의 내 미래가 너무나도 훤히 보인다는 점이 큰 계기가 되었다. 결국 실습 돌기 직전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머니를 설득하는 데 3개월 정도 걸렸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오히려 좋아하시더라 (웃음)
7개월에 걸쳐 아프리카 남쪽과 동쪽, 그리고 남미를 다녀왔다. 이런저런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멋있는 것도 많이 보고 왔다. 그 동안 과외로 모은 돈과 값 나갈만한 것들을 처분하여 여행경비를 마련하였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 같다. 그 당시에는 후회는 커녕 1년 더 여행하고 싶었는데 다녀와서 동기들 졸업하고 의사되는 거 보니 기분이 묘하더라.

쮆 복학생의 조언 한마디
세계일주? 하기 전엔 폼 나 보이지만 생각보다 별것 아니다. 오히려 미칠 듯이 행복했던 적 보다는 귀찮고 짜증나고 우울했던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런데 지금, 또 떠나고 싶다. 지금 당신 인생이 휴학 한 번에 달라지지 않는다. 무난하게 복학할 확률이 더 클 뿐. 좋아하는 일을 질리도록 할 수 있는 1년은 저지르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

호스피스 봉사에서 찾은 인생의 의미

울산대학교 본과 3학년 서정한
본과 2학년 수료 후 휴학

“1년 빨리 졸업하고 1년치 연봉을 내 통장에 더 쌓는 것보다 인생을 더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내 인생 가치를 확실히 하고, 어떤 것이든 즐길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싶었다. 그래서 본과 1학년 말부터 부모님께 휴학을 하겠다고 말씀 드렸으나 허락을 못 받았고, 본과 2학년을 마치고 휴학계를 내기 직전 부모님께 장장 A4 6장 분량의 편지를 썼다. 몇 가지 약속을 받아내시고는 결국 내 결정을 따라주시더라.
지난 1년 동안 지리산 자락 작은 암자, 태능의 한 수도원에서 한 달 정도 시간을 보냈고, 강릉의 한 호스피스에서 실습 겸 봉사활동도 했고, 단기해외봉사도 다녀오고, 4달간 남미 여행도 다녀왔다. 가장 기억에 남고 성장했던 때는 호스피스에서 보낸 3달의 시간이다. 그곳에서 죽음에 대한 사람의 본능적인 태도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고, 의사-환자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았고, 타인의 죽음을 관찰하면서 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더 나아가 죽음 전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 살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앞으로 의사생활을 하는데 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좋은 가르침을 받고 온 것이라 생각한다.

쮆 복학생의 조언 한마디
별다른 계획도 목적도 없이 휴학을 한다면 조금 말리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고민하지 말고 실천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나 뿐인 인생, 억지로 사는 것처럼 살 필요 있나요?!

학원 강사라는 제2의 직업

중앙대학교 본과 3학년 강승리
본과 1학년 1학기 수료 후 휴학

“평범하게 의대과정을 밟는 사람들은 감히 넘보지 못하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대학생들이 다니는 대형 토플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처음에는 ‘내 손으로 학비를 벌어보자’ 라는 생각에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정이 붙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는 점 때문에 당황스러웠다. 직원들 사이에서 왜 의대생이 휴학까지 하며 강의를 하고 있는지, 왜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는지에 대해 회자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절대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의과대학 다니면서 가장 하기 힘든 ‘의대라는 울타리 밖의 생활’을 경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강의를 하면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웠고 성과 중심의 직장생활 속에서 상사 및 직원들의 눈치를 보며 사회생활 요령을 터득했다. 그리고 평범한 20대의 고민이라는 것에 시간과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뻤다.

쮆 복학생의 조언 한마디
그 어떤 의과대학 학생이 겪을 수 있는 평범한 경험 외에도 정말 소중한 의대 밖 외부생활을 체험해본 것이라 자부한다. 그렇다고 꼭 휴학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교생활 외엔 숙맥일 것이라는 편견을 받는 의대생이라도 열심히만 한다면 의대 외에서의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암벽등반 도전기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본과 2학년 윤석규
본과 1학년 수료 후 휴학

“지금하는 경험들이 그 일로 인한 빚보다 훨씬 더 값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사실 맨 처음 본과를 올라왔을 때부터 휴학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놀고 싶었고, 돌려서 말하면 20대 동안 한번쯤은 내가 하고픈 일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휴학 1년 동안 외국 여행도 갔다 오고, 기타나 중국어도 배웠고, 실내나 실외 암벽도 처음 도전해 봤다. 특히 암벽등반은 올라가긴 전까진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하는 오만 생각이 다 들지만 막상 정상에 올라가고 나서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의학과 특성상 정해진 커리큘럼대로 따라 가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들과 얘기할 수 없던 것이 제일 아쉬웠었다. 그런데 암벽등반에 도전하면서 정말 다양한 직종에 계신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벅스뮤직 이사님, 경찰관이나 소방관, 삼성화재, 패션업계, 은행에서 일하시는 분 등 정말 다양한 분들을 뵙고 각계 각층의 다양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경험의 폭을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었던 것 같다.

쮆 복학생의 조언 한마디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휴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방식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다만 휴학을 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최대한 많이 해보기를 추천한다. 지금 당장의 기회비용 때문에 망설이기보다는 주변에 도움을 받더라도 해보고 싶은 일은 꼭 하라. 그리고 책 많이 읽기! 이건 정말 권해드리고 싶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인가요? 각양각색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 질문에만은 모두 단호했다. 모두들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함께 했던 동기들과 멀어 지는 것도 아래 학년 후배들과의 새로운 교우관계에 대한 두려움도, 부모님의 걱정과 우려도, 복학생에 대한 그 어떠한 편견도 그들을 막지는 못했다. 용기와 무모함 사이에서 저울질 하며 내린 휴학이라는 결정이 그들 인생에 어떠한 변화를 도모하였는지는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결론은 없다. 휴학을 두고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중하되 두려워하지는 말자. 다만, 경중을 가늠하는 저울은 자기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문정민 기자/중앙
<jmmoon@e-mednews.com>

의사와 의대생, 왜 왕따일까?

의사가 ‘선생님’소리 들으며 존경받는 것은 옛말이 된지 오래. 사람들은 의사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어째서 의사들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은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것일까. 의대생신문 기자들이 모여서 고민해보았다. 

의사들에게 적용되는 이중잣대,
밥그릇싸움에도 유난히
눈총 받는 이유

만두 : 얼마 전 일간지에 의사들이 의료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안경사, 치과의사, 한의사, 방사선사 등과 대립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어. 그런데 그 기사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들의 행동을 곱게 보지 않는 것 같더라구.
서른즈음 : 그야 의사들이 다른 직종의 분야를 침범하려는 거니까 그런거 아니겠어? 의사는 온 몸을 다 보지만 안경사는 안경, 렌즈 맞추는 것만 할 수 있으니까.
지네인간 : 하지만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이권 다툼은 어느 직종에서나 있는 거잖아. 게다가 요즘 같은 경쟁사회에서 자기 밥그릇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더 잘 해내서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거 아니겠어?
만두 : 맞아. 그리고 의사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만큼 더 잘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2의e승 : 하지만 내가 안경을 맞출 때, 안과를 갔더니 성의없이 간호사랑 상담하라고 하고, 오히려 안경원에서는 기계로 정밀검사를 해주더라구.
서른즈음 : 의사들은 전문적 지식이 많은 것이 확실하지. 그 지식으로 오더를 내리지만 그것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초음파를 예로 들면, 초음파를 하라는 처방은 의사가 내지만 촬영은 초음파기사가 하고, 판독은 또 의사가 하지. 그 과정에서 초음파기사도 의사만큼의 지식과 기술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그만큼의 권리를 요구하게 되지. 원래는 의사의 영역이었던 곳까지 넘어오게 되는거고. 
2의e승 : 그렇지만 왜 굳이 의료영역 침해를 주장하면서 고발을 하는걸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다고 어필해서 경쟁을 통해 고객을 모으면 되는거 아냐. 고소를 하는 행동 때문에 이익에 눈먼 사람들처럼 보여서 미움을 사는거잖아.
만두 : 배타적인 권리를 확보하는게 중요하니까.
서른즈음 : 사람들은 의사에게 높은 도덕적 수준, 직업윤리를 요구하는거 같아. 때때로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사는 모두 히포크라테스이기를 바라고 있어.
지네인간 : 맞아. 그래서 이권다툼을 할 때 유난히 많은 비난을 받는거고.
서른즈음 : 의사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인지, 의술을 행하는 사람인지 정체성 확립이 안돼서 늘 이중잣대가 적용되는 거 아닐까. 비슷한 예로 교사도 스승인지 교육서비스 제공자인지 가치관이 충돌하잖아.

생각해보니 의사끼리도 등을 돌리고 있었다.

의사사회는 분열되고
의협은 제기능 못해 신뢰성 상실

만두 :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은 잘 모르는 속사정도 있는데, 그런것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목소리가 부족한 것 같아. 정계에도 의사들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서른즈음 : 의사를 대표해서 그런 역할을 할만한 이익집단 하면 의협이잖아.
지네인간 : 의협 내부에서도 과가 여러개로 나뉘어 있고, 페이닥터인지, 교수인지, 개원의인지에 따라서 이해관계가 달라지니까 의사가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같아.
서른즈음 : 의협을 이끌만한 리더십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의사 내부의 의견도, 외부의 의견도 모으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정치적으로도 손해보고.
2의e승 : 실제로 의협에서 권력을 가진 제한적인 사람들만 대변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지. 얼마전 의협 회장 선거방식 가지고도 크게 싸움이 났었고.
만두 : 의협이 신뢰성을 잃은건 의약분업때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 의협은 제기능 전혀 못하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잖아. 그이후로 의사들은 의협을 안 찾고, 사람들은 의사들을 이기적으로 보는 것 같아.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 사람들의 싸늘한 태도는 의사들의 태도에 대한 반작용은 아닐까.

의사들의 근본적 변화도 필요

만두 : 사실 의사가 검안사와 다른건 근시 때문에 찾아온 사람이 있다면, 근시의 원인이 다른 병은 아닌지 감별진단을 하고 안경이 필요한 근시가 맞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
서른즈음 : 그러면 과잉진료로 논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지네인간 : 아까 말한 것처럼 하면 과잉진료라고 하고, 환자를 짧게 보면 진료 제대로 안한다며 비판받지. 수술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 수술해야 한다고 하면 무조건 돈 밝히는 비양심적인 의사로 몰아가는 경향도 있고.
2의e승 : 그건 소수의 의사들이 보인 부도덕함 때문이라고 생각해. 성형외과 같은데서 현금으로 조금 싸게 해주고 현금영수증 안 떼는 그런거. 그런 의사들이 부각되어서 의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겨버린거 아닐까.
만두 : 언론은 늘 의사를 나쁜 쪽으로 몰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것 같아. 사실 그런 탈세행위는 가게하는 사람들은 다 하는건데, 의사들이 하면 언론에서는 크게 문제삼잖아.
지네인간 : 하지만 의사들은 영세상인들보다는 돈을 많이 벌잖아. 먹고살기 충분할만큼 벌면서 좀 더 벌자고 탈세하는 행위에 명분을 찾을 수는 없지.
서른즈음 : 얼마 전에 의협 건물에 찾아갈 일이 있었는데, 의협 건물 데려다 달라니까 택시아저씨 왈. “약사회와 의사회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의사회는 건물이 어딘지 알려주는 표지판조차 없어요. 의사들이 모이지 않는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의사는 내 진료실에 앉아서 내가 돈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하는 거잖아요.”
이익다툼 때문에 하나가 되지 못하는 모습 때문에 외부에서 보기에 좋지 않은 거지. 안경점가나 의사를 찾아가나 차이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성의 없는 의사 잘못 아니겠어. 부도덕적인 탈세도 의사가 잘못한 거고. 의협 회장 선거방식 그런 것보다도 의사의 각성으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것 같아.

의사가 왕따인데, 의대생이라고 피해갈 수 없을 터. 의대생들도 다른 대학생들의 차가운 시선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의대생도 왕따

만두 : 의대생도 왕따가 되는것 같지 않아? 종합대학 다니는 사람들은 고개 끄덕일 것 같은데.
지네인간 : 의대생이 졸업하면 의사 되는거니까. 의사가 왕따 되는거랑 같잖아.
서른즈음 : 의대생들의 참여가 적어서 그런거 같아. 학기중에는 많이 바쁘기도 하고. 작년에 논란이 되었던 등록금문제에도 관심가지는 애들 많지 않았지. 행동하는 애들은 더더욱 적었고.
지네인간 : 누구든 의대생 한명 한명을 대하면서는 욕하지 않지만 의대생 집단이 되면 싸잡아서 욕하기 쉬운 집단으로 생각하는 거 아닐까. 미운털이 박혀버려서.
2의e승 : 우리나라, 정서적으로 기득권을 싫어하는 편이잖아? 특히 요즘은 경제적으로도 어렵다보니까, 취업 때문에 고민할 일 없는 사람들은 더 미워보일거고.
만두 : 의대생들도 정치력 부족하고, 정치나 사회문제에 관심조차 없어. 우리 신문사만 해도 ‘2만 의대생의 정론지’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무엇이 정론인지 감도 못 잡고 있고. 학생전체를 대변하는 단체도 없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서른즈음 : 그렇지만 학생 개개인을 비난할 수도 없는게 교육과정이 바쁘고 거기에 골몰되어서 살 수 밖에 없잖아.
지네인간 : 그렇다해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은연중에 나는 그런 거 몰라도 잘먹고 잘살거다 그런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2의e승 : 그것도 의대교육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볼 수도 있어. 학생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갖지 않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생각해보지 않으니까 의사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인 거지.
만두 : 간호대 학생들은 90% 가까이 모여서 집회한 적이 있다던데. 약대, 간호대, 한의대, 치대는 전체 모임 같은 게 있고 약사협회는 학생지원을 잘해준다고 들었어. 학생 때부터 모이는 것으로  공통된 목적의식을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잖아.
서른즈음 : 의대생들 다들 바쁘고 인터넷 커뮤니티조차 없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

문지현 기자/중앙
<jeehyunm@e-mednews.com>

예과생의 OSCE 나들이

11월 중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방학 때 선배들 국시 실기시험 실습에 모의환자가 필요한데, 우리 학번에서 8명 정도가 필요하다는 과대의 공지를 들었던 것 말이다. 기말고사를 앞둔 나에게 겨울방학은 너무 먼 얘기였고 OSCE, CPX와 실기시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던 터라 ‘아, 이것도 사다리타기로 몇 명 차출하겠거니’하고 있었는데 친한 동기 몇 명이 경쟁적으로 과대에게 자원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어? 좋은건가?’ 하고 얼떨결에 몇 자리 안 남은 명단에 내 이름을 써 넣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국시에 실기시험이 있더라 하는 것만 들어서 알고 있던 이 무지한 예과생에게 본과 진입 전에 (어차피 당연히 알게 될 것들이지만) 실기시험에 대한 정보와 현실감각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이었다.
지난 1월 25일, 실기시험 모의고사를 하루 앞두고 사전모임이 있었다. 다음날 있을 모의고사를 위해 학생조교(모의환자)들이 해야할 일에 대해 설명을 듣는 자리였다. 각 방에는 두 가지씩의 과제가 주어지고 한 학생조교(모의환자)가 한 가지, 또는 두 가지의 과제를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다. 비록 실습은 모형에 하지만, 실습생이 묻는 질문에 실제 환자처럼 대답도 하고 한 실습생의 차례가 끝나면 기자재를 정리하는 등의 일을 해야 했다. 나는 과제 5, 근육주사를 담당했는데 ‘올라가서 바지를 내려달라’고 하면 ‘모형의 엉덩이를 까’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큰 시험인데다 실전과 같은 분위기 속에 진행되는 것 같아 잘해야 할텐데 하는 약간의 긴장을 하게 되었다.
1월 26일 당일, 실기시험 모의고사는 동산병원 별관 지하 1층과 2층 두 군데서 동시에 6명씩 6타임으로 진행되었다. 각 방에는 어제 배치 받은 학생조교 1~2명과 채점자로 임상교수님이 한 분씩이 들어오셨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각 방으로 입실한 선배들은 주어진 문제를 읽고 수행한 다음, 안내방송에 따라 다음 방으로 이동하여 총 6개의 방에서 12개의 실습을 수행하였다.
모의고사라는 경직된 분위기가 선배들을 긴장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여러 번 연습해 봤을 수행과제임에도, 순서를 헷갈리기도 하고, 바늘로 찌르기 전에 겐타마이신 입구를 소독하시는 걸 깜빡하기도 했다. 내가 맡은 ‘근육주사’는 비교적 쉬운 과제여서 큰 실수를 하시는 분은 없었지만, 바로 다음 과제였던 ‘수혈’은 대부분이 수행시간이 모자랐고, 수행과정이 복잡해서 그런지 많이 우왕좌왕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동아리나 학교활동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던 선배들이 우리 방에 들어오셨을 때, 서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의사와 환자인데 서로를 쳐다보지 못하고 허공만을 바라보며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오스키 모의환자를 통해서 아직은 먼 얘기처럼 들리는 ‘국시 실기’가 피부로 와 닿게 되었다. 그리고 필기만큼이나 불합격률이 높다는 얘기를 듣고 의아했었는데, 긴장감이나 연습부족으로 충분히 불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충분히 과제를 연습하여 몸에 익혀놓지 않으면 약간의 돌발 상황에도 당황해서 순서를 모조리 잊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는 이렇게 모의고사를 자체적으로 자주 실시하여 내신에도 그 성적을 반영하여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주는데 다른 학교는 어떤 시스템일지 궁금해 지기도 했다.
‘학생조교 하진경’ 앞으로 나온 4만원의 금일봉 외에도 예과생으로서 하기 힘든 경험을 통해 3년 뒤 같은 자리에 서 있을 나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 곧 다가올 국시 실기 시험에서 선배들의 건투를 빈다.

하진경 기자/계명 <jinkyeong@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