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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의 마무리를 선물하기 위한 한 걸음

- 소아 호스피스에 대하여


의대생들이 본과에 올라와 본격적으로 임상을 배우게 되면, 두 가지 방면에서 놀라게 된다. 첫째로, 굉장히 많은 병들의 치료법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놀란다. 이렇게 많은 병들이 왜 일어나는지, 어떤 기전으로 일어나는 지 일일이 밝혀내고, 이에 맞는 약을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을까 생각해보면 경이로울 뿐이다. 

두 번째로, 굉장히 많은 병들이 아직 치료될 수 없다는 것에 놀란다. 이렇게 많은 인재들이 연구하는데도 아직 그 기전조차 모르는 병들도 많고, 기전을 알지만 완치에는 여전히 실패하고 있는 병들도 수두룩하다.

교수님들이 열심히 질병의 기전, 역학, 원인을 설명하고 마지막에 ‘...하지만 이 병의 치료법은 아직 밝혀지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실 때의 허탈함은, 결국 인간은 이 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의사의 절망이 무엇인지 약간이나마 느끼게 해준다.


그 환자가 아직 어린 아이라면 어떨까? 아직 살아갈 날이 창창한 아이의 죽음을 보게 된 의사의 심정은 차마 짐작해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아이는 당연히 ‘살아야’할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이를 죽음과 연결해 상상하는 것조차 죄스러워한다. 그래서 불치병을 앓는 어린 환자는 생존의 가능성이 없는데도 마지막까지 온갖 치료를 다 시행하고 병원에서 세상을 뜨는 경우가 많다. 의사와 보호자 모두 죽음의 개념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입장은 어떨까. 지금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당신이 죽음을 몇 개월 앞두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당연히 하고 싶은 것이 많을 것이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삭막한 병원에서 떠나 포근한 집에 다시 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생명을 연장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세상을 뜨는 그 순간까지 삑삑거리는 의료 기계들에 둘러싸이고 몸에는 온갖 줄이 매달려 뒤척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태에 있어야 한다면, 과연 당신은 만족스럽게 이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겠는가?

 

소아 호스피스란?

 

소아 호스피스는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의 마무리를 선물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통증 완화 치료와 조용한 분위기로 운영되는 성인 호스피스 센터와 다르다. 소아 호스피스 센터 내에서는 가족들이 머물 수 있다. 집에서처럼 한 가족이 독립적으로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아이들은 이 공간 내에서 부모님과 함께 멋진 삶의 기억들을 만들 수 있다. 팍팍한 회색의 아파트가 아니라, 운동장도 있고 정원도 있는 진짜 ‘집’에서 살면서 아이들은 여러 즐거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낙타를 만져볼 수도 있고, 친구들과 놀 수도 있고, 쿠키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팔거나 종이접기를 할 수도 있다. 맨 처음 무도회에 참석해서 신나게 춤을 추기도 하고, 탤런트 쇼에서 자기가 좋아하던 피아노 연주를 하기도 한다.

소아 호스피스의 첫 시작은 영국이다. 한 수녀가 아이의 병과 앞으로 다가올 죽음에 지쳐있던 부모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후 현재 영국에는 54개의 아동 전문 호스피스가 존재한다. 최초의 소아 호스피스인 ‘Helen & Douglas house’는, 100여 명의 전문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가족 지원, 심리 상담, 미술 치료, 음악 치료, 의료 관련 등 다양한 방면에서 아이들을 돕고 있다. 소아 호스피스는 가족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스트레스가 줄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아이의 형제들을 보살 필 수 있게 된다. 선순환으로 아이의 형제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영국에서는 ‘Helen & Douglas house’을 시작으로 아동 호스피스 센터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1983년 비영리기관인 국립아동호스피스기관(CHI)이 세워져 아이와 가족을 케어하고 있다. 이 기관을 통해 매년 5000명의 아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아동 호스피스 클리닉이 있는데, 호스피스의 대상을 넓혀 모든 어린이에게 죽음 자체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라고 교육하고 있다. 일본은 2012년 오사카에 아시아에서 최초로 설립된 어린이 전용 호스피스가 생겼고, 중국도 영국인이 세운 아동 호스피스 센터 ‘나비의 집’이 있다.


한국에서도 수요 증가하고 있어… 2018년부터 시범 사업 시작할 계획 


현재 우리나라에는 아동 전용 호스피스 센터가 없다. 병원 측에 부탁하면 아동을 받아주는 센터가 몇 곳 있기는 하나, 활동량이 많고 이것저것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조용한 분위기의 성인 호스피스 센터에 들어간다면 완벽히 편해지지는 못할 것이다. 다행히 보건복지부에서 2018년에 소아암 호스피스 시범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전국에 6개의 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그 동안 정부에서는, 소아는 마지막까지 연명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고, 수요가 많지 않아 소아 호스피스를 열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소아 호스피스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3000여명의 소아청소년이 사망하고 이 중 호스피스가 필요한 중증 만성질환을 가진 아이는 1000여 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에서 말한 세계 최초의 소아 호스피스인 ‘Helen & Douglas house’ 의 비전은 다음과 같다. ‘Every life a full life, Every death a dignified death.’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고, 죽을 권리가 있다. 소아 호스피스는 그 권리를 향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시원 기자/고신

<hsw01-2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