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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병이 X선 촬영을? 국방부 시행령 개정 논란

- 30만건의 무면허 의료행위...시행령 개정으로 합법화 꼼수


군 병원에서 치료받은 병사가 에탄올 주사로 왼팔이 마비되고, 고열에 시달렸던 병사는 뇌수막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은 군인은 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해 민간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군에서 의료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해 말, 국방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무면허 의료행위를 합법화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군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탓을 하며 무자격 장병의 교육을 통해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다는 것이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실에 따르면 국방부가 훈련소에서 몇 주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의무병에게 X선 촬영 등의 업무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의료법을 비롯한 관련 법을 위반하는 위법행위이다. 여태껏 군에서 이루어졌던 무면허 의료행위는 암묵적으로 묵인되어왔다. 채혈이나 주사 등의 의료행위에 수술보조까지 하는 등 불법의료행위가 심각한 실정이었다. 2013년 감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군 내에서 연 30만 건의 무면허 의료행위가 발생하였다. 국방부가 추진하는 시행령 개정으로 불법의료행위를 합법화한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었다. 


열악한 여건 속에 부담금은 증가


국방부가 추진했던 시행령 개정은 만성적으로 장기의료인력이 부족한 상태에 빠져 있는 군 의료체계를 의무병에 의한 무면허 의료행위의 합법화라는 편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는 꼼수로 보인다. 국군 장병이 60만명에 달하는데 반해 군의관 수는 2500명 수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2016년 9월 기준으로 장기 복무하는 군의관은 전체의 5%에 불과하며, 이조차 대부분 관리직에 있다. 95%의 단기 군의관이 60만 장병의 건강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간호사는 1000여 명 수준으로 훨씬 더 모자라는 숫자다. 의사와 간호사가 1:2 수준의 비율을 유지하는 민간 병원에 비해 군 의료시설에서는 2.5:1의 비율로, 심각한 의사-간호사 수 불균형을 보였다.

이처럼 군 의료체계의 열악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군인들의 민간병원 의존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장병이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진료비의 일부를 국방부가 건강보험부담금 명목으로 지불하도록 되어있는데, 이 금액이 2015년에 500억 원을 넘어섰다. 반면 국군수도병원은 군 책임운영기관 평가에서 최저를 기록하여, 군 의료 체계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군 의료체계 개선계획’으로 변화 시도해


무면허 의료행위, 장기 군의관 및 간호 인력 부족 등 반복적으로 지적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방부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군 의료 진료능력 확충을 모토로 ‘2017~2021 군 보건의료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군 진료환경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그간 ‘2012~2016 군 의료체계 개선계획’ 등의 사업을 통해 △감염병 예방 △질병의 조기진단 △환자의 신속 후송 분야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진료능력 개선이 미흡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국방부는 군 병원 수를 줄이고, 국군수도병원을 군 특성화 종합병원으로 육성하기 위해 외상센터를 설립하고 의료 시설·인력·장비를 보강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또한 무면허 의료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군 병원의 의무병을 간부로 대체하고, 사단의무대에는 자격을 갖춘 전문의무병을 모집해 복무하게 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숙련된 의사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장기군의관 처우를 개선하는 등 다양한 개선방안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장기 군의관의 처우 개선에는 보수 인상, 시간제 채용 제도 등의 방법이 포함되었다.

국방부는 이와 같은 개선방안을 통해 환자가 적기에 군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며, 무자격 의무병에 의한 의료보조행위 시비소지를 없애 자격이 있는 의료인에 의한 전문적이고 안전한 진료가 제공된다. 또 외상 등 군 다빈도·특수질환도 군 병원에서 대학병원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의료접근성 개선 위해 원격의료 시범사업 진행


이 외에도 격오지 부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보건복지부의 군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통해 의료접근성을 개선하려 하고 있다. 현재 63개 부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올해 말까지 76개소로 확대할 계획이다. 40개 부대 대상으로 발병 후 12시간 이내에 진료를 받은 병사 비율을 조사한 결과, 원격진료 실시 부대는 83%인 반면 원격진료 미실시 부대는 35%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원격의료 시범사업의 결과 의료접근성이 크게 개선되고 장병들의 만족도가 높아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계획처럼 군 의료인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의무병을 대체할 전문적 의료인력을 확충하고, 진료능력을 개선하는 것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시범사업으로 진행 중인 원격의료가 격오지 부대의 의료사각을 완전히 메꿀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게다가 원격의료가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힘들며, 외상과 정형외과적 질병이 많은 군 특성상 원격의료가 적합하지 않다는 점, 원격의료의 주 시행 대상인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만성질환자가 군 부대에 적은 점 등을 들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 역시 나오고 있다. 군 병원에서 국방부가 목표로 하는 대학병원 수준의, 불법 의료행위가 없는 진료를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예산이 투입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병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군 의료 체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한다.


이상혁 기자/가천

<hoiayp@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