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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과생의 OSCE 나들이

11월 중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울방학 때 선배들 국시 실기시험 실습에 모의환자가 필요한데, 우리 학번에서 8명 정도가 필요하다는 과대의 공지를 들었던 것 말이다. 기말고사를 앞둔 나에게 겨울방학은 너무 먼 얘기였고 OSCE, CPX와 실기시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던 터라 ‘아, 이것도 사다리타기로 몇 명 차출하겠거니’하고 있었는데 친한 동기 몇 명이 경쟁적으로 과대에게 자원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어? 좋은건가?’ 하고 얼떨결에 몇 자리 안 남은 명단에 내 이름을 써 넣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탁월한 선택이었다. 국시에 실기시험이 있더라 하는 것만 들어서 알고 있던 이 무지한 예과생에게 본과 진입 전에 (어차피 당연히 알게 될 것들이지만) 실기시험에 대한 정보와 현실감각을 키울 수 있는 경험이었다.
지난 1월 25일, 실기시험 모의고사를 하루 앞두고 사전모임이 있었다. 다음날 있을 모의고사를 위해 학생조교(모의환자)들이 해야할 일에 대해 설명을 듣는 자리였다. 각 방에는 두 가지씩의 과제가 주어지고 한 학생조교(모의환자)가 한 가지, 또는 두 가지의 과제를 담당하기로 되어 있었다. 비록 실습은 모형에 하지만, 실습생이 묻는 질문에 실제 환자처럼 대답도 하고 한 실습생의 차례가 끝나면 기자재를 정리하는 등의 일을 해야 했다. 나는 과제 5, 근육주사를 담당했는데 ‘올라가서 바지를 내려달라’고 하면 ‘모형의 엉덩이를 까’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큰 시험인데다 실전과 같은 분위기 속에 진행되는 것 같아 잘해야 할텐데 하는 약간의 긴장을 하게 되었다.
1월 26일 당일, 실기시험 모의고사는 동산병원 별관 지하 1층과 2층 두 군데서 동시에 6명씩 6타임으로 진행되었다. 각 방에는 어제 배치 받은 학생조교 1~2명과 채점자로 임상교수님이 한 분씩이 들어오셨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각 방으로 입실한 선배들은 주어진 문제를 읽고 수행한 다음, 안내방송에 따라 다음 방으로 이동하여 총 6개의 방에서 12개의 실습을 수행하였다.
모의고사라는 경직된 분위기가 선배들을 긴장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여러 번 연습해 봤을 수행과제임에도, 순서를 헷갈리기도 하고, 바늘로 찌르기 전에 겐타마이신 입구를 소독하시는 걸 깜빡하기도 했다. 내가 맡은 ‘근육주사’는 비교적 쉬운 과제여서 큰 실수를 하시는 분은 없었지만, 바로 다음 과제였던 ‘수혈’은 대부분이 수행시간이 모자랐고, 수행과정이 복잡해서 그런지 많이 우왕좌왕 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동아리나 학교활동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던 선배들이 우리 방에 들어오셨을 때, 서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의사와 환자인데 서로를 쳐다보지 못하고 허공만을 바라보며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오스키 모의환자를 통해서 아직은 먼 얘기처럼 들리는 ‘국시 실기’가 피부로 와 닿게 되었다. 그리고 필기만큼이나 불합격률이 높다는 얘기를 듣고 의아했었는데, 긴장감이나 연습부족으로 충분히 불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충분히 과제를 연습하여 몸에 익혀놓지 않으면 약간의 돌발 상황에도 당황해서 순서를 모조리 잊어버리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는 이렇게 모의고사를 자체적으로 자주 실시하여 내신에도 그 성적을 반영하여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주는데 다른 학교는 어떤 시스템일지 궁금해 지기도 했다.
‘학생조교 하진경’ 앞으로 나온 4만원의 금일봉 외에도 예과생으로서 하기 힘든 경험을 통해 3년 뒤 같은 자리에 서 있을 나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었다. 또 곧 다가올 국시 실기 시험에서 선배들의 건투를 빈다.

하진경 기자/계명 <jinkyeong@e-me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