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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의료진 악단을 창립한 심승철 박사님을 만나다

전국 의과대학에서 의대생들이 가장 많이 기본적으로 가입하게 되는 동아리라 하면 대부분은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오케스트라 동아리일까? 라고 자문해봤을 때, 클래식 음악이 우리 스스로가 존경받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지덕체(智德體) 중 덕육(德育)을 쌓는데 지대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고 그저 음악 자체가 좋아서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여기 의대생이라는 관문을 넘어 의사의 신분으로도 아직까지 바이올린을 키며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사람이 있다. 그 분은 바로 2004년 국내에선 최초로 의료진으로만 구성된 악단을 결성하신 심승철 박사님(현 대전을지병원 내과과장).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자문의 해답이 의료인으로서 스스로 고심하고 또 다짐해야 할 과제와 함께 눈앞에 제시되었다.    

- 먼저 이 오케스트라를 결성하게 된 동기를 알고 싶습니다.
“아, 우선 우리 악단의 경우에 '오케스트라'라는 말은 틀린 것 같네요. 우리는 소규모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챔버(Chamber)’가 더 맞는 말이에요. 그리고 처음에는 분명 의료진으로만 구성된 악단이었지만 요즘은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약사, 환자 등 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굳이 가릴 것 없이 함께 연주하고 있습니다.
동기라.. 모로코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 줄 아세요?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왼쪽 윗부분에 있는 나라죠. 그 나라가 예전에 사하라의 서쪽 사막을 침략해서 그곳에 사는 소수 부족에게 그들의 영토-사막-을 뺏는 대신 다른 좋은 아파트에 거주하게 해주었죠.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 소수 부족은 더 깨끗하고 쾌적한 아파트에서 살게 되면 훨씬 좋아할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그들은 아파트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그들의 황폐한 사막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죠. 마찬가지에요. 우리 대전을지병원이 이 곳(둔산동, 대전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옮겨 새 단장을 한 후 환자들은 새 병원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예전 병원과 분위기가 너무 달라진 거죠. 또 나는 예전 병원에 있을 때와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환자의 입장에서는 나란 사람까지 병원 분위기와 덩달아 멀리 느껴지게 된 거죠. 그래서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을까. 어떻게 다시 친근한, 오고 싶은 병원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러던 도중에 나온 아이디어가 우리 의사들이 직접 연주하는 작은 음악회였습니다. 아무래도 하얀 가운을 입은 어렵게 느껴지기만 하는 의사가 자신들을 위해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걸 보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라 생각했죠.”

- 처음 결성된 후로 요즘도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계신가요?
“결성 된 당시 초기에는 3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공연을 했어요. 그 때 우리 공연에 대한 호응이 꽤 좋았지요. 그래서 요즘은 그 음악회가 계기가 되어 매주 병원 로비에서 수요 음악회가 열리고 있어요. 우리는 항상 보는 업무가 또 따로 있기 때문에 매번 참석하기는 사실상 어렵죠. 그래서 병원 측에서 외부악단을 초청하기도 하고 외부에서 자발적으로 신청도 많이 해주셔서 수요 음악회가 그렇게 매주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종종 특별한 날 행사가 있을 때 연주를 하고 있어요.”

완벽을 가하는 ‘연주회’가
아닌 모두 함께하는
‘음악회’를 추구한다

- 악단에 들어가는 특별한 자격 조건이 있나요?
“얼마 전에 했던 ‘남자의 자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오디션을 봤다죠? (웃음) 하지만 저희는 특별히 오디션을 봐서 단원을 뽑거나 자격 조건이 갖추어져서 뽑히거나 그런 건 없어요. 그저 하고 싶으면 들어와서 함께 연습하고 연주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보여주기 위한 완벽한 ‘연주회’를 열고자 하는 것이 아니에요. 환자들과 교감하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음악회’를 하는 것이죠.”

실제로도 작년 12월 연주회 때는 희귀 난치병인 베게너 육아종증과 싸우고 있는 환자분이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하였고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병원에 늘 모시고 다니는 환자의 딸분이 재즈 싱어를 맡기도 했다고 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 그리고 공연 중 일어난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라 하면 .. 아무래도 첫 번째 공연이겠죠? 그 날 마침 병원에서 첫 돌을 맞은 아기가 있었어요. 그래도 명색이 태어나서 첫 번째 맞는 생일인데 갑갑한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아이를 위해 생일 축하 노래를 연주했던 기억이 나네요.
잊지 못할 에피소드라... (고심하다가) 아. 저기 액자 속에 피아노 치시는 분. 저 분이 우리 병원 환자신데, 저 분과 로비에서 음악회를 준비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연주회 당일 날 저 분이 서울에서 대전으로 ktx를 타고 내려오시던 중에 나한테 전화가 온 거에요. 지금 기차를 탔는데 악보를 서울역에 두고 온 것 같다고.. 전 바이올린을 하다 보니 악보가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 분도 당황하고 저도 순간적으로 당황했었죠. 여차저차 인터넷에서 피아노 악보를 다운 받아서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음악회를 시작했던 적이 있었어요. (웃음)”
 
병원을 환자들이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곳으로

- 앞으로 악단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아무래도 악단이 처음 만들어진 동기가 환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서였다보니 당연히 앞으로도 그런 쪽으로 쭉 나아가야 겠죠.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환자의 병실에 직접 찾아가서 공연을 해주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 같네요. 그런데 이 모든 것 에 앞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의료진으로써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가 의학은 과학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요즘은 어느 병원이든지 컴퓨터가 있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어서 의사가 환자를 잘 바라보지를 못해요.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할 때 행여 실수를 할까봐 모니터만 보죠. 환자의 눈을 쳐다보는 시간은 기껏해야 30초 정도 될까요. 그건 분명 한국 의료 실정이 미국과 같은 시간제가 아니다 보니 발생한 문제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의사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봐요. 요즘은 인터넷만 찾아봐도 의학적 지식이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라는 직업이 필요 없어지진 않거든요. 의사는 그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도 하지만 그 지식에 의한 효과를 최대한으로 올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 시너지효과를 내는 가교역할로 음악을 선택한 거죠. 우리 악단이 지향하는 바도 그런 맥락에 속해요. 좀 더 환자와 의사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수 있게끔 이끌어 주고 치료 효과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그런 악단, 그런 음악이 병원에 있다면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이라는 곳이 좀 더 오고 싶은 장소가 되지 않을까요?”

- 마지막으로 학업으로 힘들어 하는 의대생에게 음악 몇 곡 추천해주세요!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이 있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재즈로 몇 곡 추천하자면 Wynton Marsalls의 ‘The very thought of you’, 트럼펫티스트 Chris Botti의 ‘In the wee small hours’(feat. Sting) 정도? 그리고 클래식 중에선 음악의 아버지 바하의 ‘파르티타(Partita)’를 빼놓을 수 없네요.”

이선민 기자/을지
<god0763@e-mednews.com>